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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박진용 칼럼] 우간다, 빅데이터, 그리고 금융개혁

박진용 칼럼- 우간다, 빅데이터, 그리고 금융개혁


우간다, 빅데이터, 그리고 금융개혁

- 박진용 뉴시스 부국장 겸 경제부장


1. 우간다 수준이라니…

  “어떻게 아프리카 우간다와 비교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금융과 관련해 국제 비교 순위를 보니 우리가 80위, 우간다 81위, 우리 앞에는 말라위가 있더군요. 이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니 역시 우간다처럼 아프리카예요."


세계 금융 순위 80위, 세계적 수준의 금융 서비스에도 외부에서 저평가되는 이유는?


  "사실 우리 금융 서비스 수준은 세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을 가도 우리처럼 쉽고 저렴하게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우간다를 운운하는 건) 자조적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금융도 달라져야 하고 더 편해져야 합니다. 단순한 금융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게 아니라 국민의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증식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금융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뛰고 있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외부 강연 때마다 즐겨 하는 말이다. 틀린 구석이 별로 없어 보인다. 한국 금융이 아프리카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가당치 않은 평가를 내리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최근 임 위원장을 특별 강사로 초청, 금융권 인사들을 대상으로 포럼을 개최하면서 그런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됐다.



2. 질문도 못 하는 관치의 폐해

  포럼이 그야말로 형식적인 데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리 금융권의 유력 인사들로부터 질문을 받기로 했다. 인터넷 전문은행 선정, 빅데이터의 기반이 될 통합신용정보집중기관 신설 등 앞으로 금융권의 판도를 좌우할 현안들이 산적한 탓일까. 은행 보험 카드 등 각 분야를 막론하고 금융계 인사들은 할 말이 아주 많은 듯했다.


규제기관의 눈치만 보는 수동적 태도의 금융권


  하지만 포럼에서 임 위원장에게 직접 질문을 해달라는 요청에는 거의 대부분이 손사래를 쳤다. 괜히 규제기관의 수장에게 질문했다가 심기라도 건드리면 좋을 게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지만 공연히 튀었다가 밉보일 경우 뒷감당이 어렵다는, 극도의 보신주의적, 수동적 태도였다. 한마디로 어처구니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어느 관료의 노골적(?) 주장처럼 지난 60여 년간 다스림만을 받아서일까. 자율성이나 도전정신은 흐릿하고, 규제기관이 하라는 대로 해온 바로 그 행태, ‘우간다 수준이라는 게 바로 이것이구나’ 깨닫게 됐다면 비약일까.

  이런 경험은 그동안 긍정적으로 평가해 왔던, 금융당국이 세계 최초로 추진한다는 핀테크 관련 오픈 플랫폼이나 통합신용정보집중기관 신설도 새롭게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3. 핀테크는 무엇이고 빅데이터는 무엇인가

금융회사-IT기업 간의 대화 부족, 각종 규제로 밀려난 우리나라 핀테크 산업


  사실 핀테크 분야에서 미국 등 앞선 국가를 따라잡도록 관련 업계를 적극 밀어주는 당국의 노력은 평가받아 마땅하다.

  지금 IT업체의 금융 진출 내지는 금융의 IT화, 이른바 핀테크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IT 기술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서비스를 말하는데, 현금과 신용카드를 쓰던 사용자들이 상품검색부터 결제까지 모든 것을 스마트폰 하나로 손쉽게 해결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구글과 애플도 모바일 결제 등 금융업에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IT 강국이라는 한국은 미국은 물론 중국에 비해서도 한참 뒤처져 있다는 게 중론이다. 한때 대통령까지 나섰던 ‘천송이 코트’ 논란에서 보듯 각종 규제로 온라인 결제시스템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정부도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 지난해 전자결제 시 공인인증서 사용 의무를 폐지한 데 이어 올 들어 인터넷 전문은행 등의 육성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IT 인프라 등 풍부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느려 터지기만 하다. 금융회사와 IT기업 간 소통이 부족하고, 경직된 규제 및 정보보안에 대한 우려 등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올 들어 은산 분리(은행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다소 완화하는 한편 금융권 공동 핀테크 오픈 플랫폼 구축에 나서는 것도 중국 등 경쟁국에 비해 밀리는 현실을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내년에 간편 지급 결제와 함께 은행 창구에 직접 가지 않고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는 비대면 인식 채택 등을 통해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핀테크 문제를 해결할 오픈 플랫폼, 빅데이터 활성화가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특히 금융권 공동 오픈 플랫폼 구축은 혁신적 방법으로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당국이 고안해 낸 것인데, 금융회사와 기업이 서비스 개발 및 활용 과정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통로로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작업이다. 그만큼 관련 업계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공동 오픈 플랫폼은 은행마다 언어나 양식이 다른 프로그램을 금융권 공통으로 쓰는 형태로 통일해 개발한다면 핀테크 사업자들이 금융기관들을 일일이 찾아가는 수고를 덜 수 있고, 다양한 핀테크 서비스 출시도 가능해진다. 금융회사도 새로운 수익 기회 창출을 노릴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핀테크 사업이 꽃을 피우려면 빅데이터 활성화는 필수적이다. 그렇다면 빅데이터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큰 데이터’이다. 그냥 큰 것이 아니라 기존 데이터에 비해 너무 어마어마해서 일반적 방법으로는 수집하거나 분석하기 어려운 데이터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최근 10여 년간 정보통신기술이 금융을 포함해 모든 산업에 보편화하면서, 빅데이터는 경쟁력과 혁신의 새로운 보고로 떠오르고 있다.

  단적으로 빅데이터를 자체 생산해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를 하고 있는 검색엔진 구글은 “우리가 무엇에 관심 있는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우리가 무엇을 사고 있는지”, 페이스북은 “우리가 누구와 친한지”를 훤히 꿰뚫어 보고 있다고 한다. “빅데이터가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21세기 원유”라고 일컬어지고, 이를 축적·분석 활용하는 기업만이 차세대의 승자가 될 것이라고 보는 이유다.

  한 마디로 핀테크가 자동차라면 빅데이터는 원유다. 원유 없이 자동차가 굴러갈 수 없듯이, 빅데이터의 활성화 없이 인터넷뱅킹 등 핀테크 산업이 꽃피우기 어렵다. 또 원유가 자동차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듯, 빅데이터의 활용영역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금융권의 빅데이터 활용은 초기 단계이고, 아직 수익모델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 이미 자동차보험 요율 산정에서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미국 등과 달리 빅데이터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핀테크 기업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례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정보 보안 문제에 부딪힌 빅데이터 활성화


  사실 빅데이터 활성화는 말처럼 간단한 문제도 아니다. 빅데이터의 진정한 가치는 커다란 데이터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가 여기에서 얼마나 의미 있는 경제적, 사회적 가치를 추출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

  빅데이터 비즈니스 환경이 조성되기 위한 충분한 양의 데이터를 어떻게 획득하고, 이렇게 모은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하고 분석해 실질적 비즈니스와 사회적 가치를 뽑아낼 수 있으며, 나아가 이런 데이터를 서비스화해서 다양한 방식의 유통을 통해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숨겨진 가치들을 창출해 내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빅데이터 수집과 활용은 개인정보와 기밀정보의 유출, 부정확한 데이터를 오용하거나 부적절하게 이용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터지면 그동안의 모든 논의가 수포로 돌아가고 “보안! 보안!” 만을 외치며 과거로 후퇴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정보 보호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다양한 효용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고, 활용에 치우치다 보면 민감한 개인정보를 건드려 사회적 반작용을 불러오게 된다. 활용과 보호의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때문에 금융당국도 이 점을 의식해 앞으로 신용정보 보호법을 개정, 적어도 누구의 정보인지 알 수 없게 가공 처리된 비식별정보는 개인신용보호 체계에서 떼어내 당사자의 동의 없이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빅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저장공간, 통합신용정보집중기관 내년부터 운영 예정


  그런데 비식별정보를 활용하려면, 그런 정보를 모아야 놓아야 한다. 다시 말해 빅데이터를 위한 저수지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통합신용정보집중기관이다. 문제는 세계 어느 나라도 신용정보를 한곳에 집중해 가지고 있는 나라가 없다는 점이다. 은행, 금융투자업계, 보험, 카드 등의 정보를 한곳에 모으는 것은 한국이 세계 최초가 되는 셈이다. 최초라는 게 획기적일 수도 있지만, 꼭 좋은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

  일단 긍정적 측면에서 보면 신용정보집중기관을 통해 대출 과정에서 종합적 신용 리스크 평가 제고가 가능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각종 연체 채권이나, 증권 미수금 이런 정보들을 모아 나중에 대출할 때 활용하면 모든 금융회사의 신용평가 기준이 높아질 수 있고, 리스크 관리도 잘할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보험 사기 문제에 대한 파악도 쉬워질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빅데이터 활용의 바탕이 될 통합신용정보집중기관을 내년부터 본격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개인과 기업 신용정보에 대한 종합적, 체계적 이용 관리의 기틀이 마련되고, 빅데이터 지원 기반이 형성될 것이라는 게 당국의 기대다.



4. 통 큰 자율성 부여가 필요한 때

하지만 업계와 금융당국의 소통과 협조가 잘 이뤄질지 의문


  전반적으로 보면 핀테크와 빅데이터에 대한 금융당국의 큰 방향은 옳은 것 같다. 핀테크와 빅데이터는 ‘따로’가 아닌 ‘함께’ 가는 게 맞다. 새로운 스마트 금융의 중요성을 볼 때 당국이 이를 선도적으로 이끌고 가려는 열정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선 불안감이 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총론 측면에선 옳아 보이지만 디테일한 분야로 들어가면 상황이 매우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가령 데이터는 분석의 목적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 또 특정한 목적의식에 입각해 분석한 뒤 이를 여러 차례 가공해야 필요한 정보들을 얻어낼 수 있다. 이 경우 시장이 요구하는 구체적 비즈니스에 필요한 정보들을 당국 주도로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다는 신용정보집중기관이 어떻게 지원해 줄 수 있느냐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아카사카라는 음식점이 있다. 이게 일식집일까? 퓨전일식집일까? 정답은 둘 다다. 카드사 별로 업종 분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데이터를 어떻게 만들어 해당 업계에 전달해 도움을 줄 것인가, 또 이를 어떻게 표준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중요할뿐더러 간단한 것도 아니다. 업계에 필요한 정보 하나를 얻으려면 표준화와 가공이라는 수많은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때마다 업계가 금융당국에 정보를 요청해서 받고, 다시 요청해서 받는다? 과연 지금 같은 풍토에서 이게 얼마나 잘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업계가 구체적 신용정보를 요구하면 그에 맞춰 신용정보집중기관이 이를 제공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이 원만할까? 더욱이 해당 업체가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 정보제공을 요구할 경우 또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까? 지금과 같은 풍토에서 民(민)이 官(관)에게 그런 정보를 과감히 요구할 수 있을까?


IT와 금융계의 빅뱅, 규제보단 책임과 자율성 부여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IT와 금융의 빅뱅은 어쩌면 1897년 한성은행 설립 이후 110년 넘게 이어져 온 전통적 금융업이 환골탈태하는 대사건일 수 있다. 이때 신용정보집중기관이든, 오픈 플랫폼이든 민간에 맡겨 “어디 맘대로 해보세요.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 책임지세요”라는 통 큰 자율성을 부여해 주면 어떨까.

  시장에서 일어나는 구체적 현안까지 “감 내놓아라, 밤 내놓아라,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고 한다면 세계 최초로 오픈 플랫폼을 만들고, 신용정보를 한곳에 모아 놓더라도, 금융당국 수장에게 질문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관행 앞에 완전 무력해지지 않을까. 지금은 세계 최초로 무엇을 만드는 것보다 발상의 전환이 더 필요한 시점인지 모르겠다.


박진용 뉴시스 부국장 겸 경제부장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