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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정필모 칼럼] '슈퍼 차이나'의 '슈퍼 리스크'

정필모 칼럼, 슈퍼 차이나의 슈퍼 리스크


'슈퍼 차이나'의 '슈퍼 리스크'

- 정필모 KBS 보도위원


  ‘스피드(Speed)’는 1994년 대히트를 쳤던 키아누 리브스(Keanu Reeves)와 산드라 블록(Sandra Bullock) 주연의 영화 제목이다. 달리는 속도가 50마일 아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터지는 폭탄이 설치된 버스, 거기에서 위기의 순간에 벌어지는 생존을 위한 숨 막히는 사투, 그리고 경찰이 가까스로 버스에 탑승해 승객을 구하는 액션이 이 영화를 흥행으로 이끈 주요 장면이다. 영화는 물론 픽션(fiction)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에서 비슷한 사건은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비록 물리적 사건은 아니라도, 경제에서 그런 가정은 가능할까?


13억 승객을 태운 중국이라는 버스 멈출 수 없어, 중국 경제를 영화 스피드에 비유


  이 영화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거의 잊혀가던 2010년 3월이었다. 미국의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The Christian Science Monitor)’는 ‘중국: 다가오는 슈퍼 거품의 대가(China : the coming costs of a superbubble)’라는 기사에서 중국 경제의 현실을 이 영화에 비유했다. 내용인즉, “13억 명의 승객을 태운 중국이라는 버스가 정지하면, 장착된 폭탄이 터지기 때문에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는 것”, 즉 세계 경제의 중심을 향해 가던 중국 경제의 멈출 줄 모르는 질주에 대한 경고였다.


급성장하던 중국 경제의 위기


  그로부터 5년, 중국 경제는 세계 경제 불안의 진원지로 떠올랐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과 6개월 전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그나마 세계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것은 중국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물론 전문가들조차 그때까지 높은 성장률과 풍부한 자금, 정부의 강력한 추진력, 기업들의 빠른 기술 적응력 등 중국 경제가 가진 역동성에 ‘찬사’를 쏟아내기 바빴다. 급기야 이른바 ‘슈퍼 차이나(Super China)’ 혹은 ‘팍스 시니카(Pax Sinica)’란 말까지 서슴없이 썼을 정도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슈퍼 리스크(Super Risk)’가 잉태되기 시작했다. 고성장과 과잉 자금은 거품과 부실을 키웠다. 시장을 무시하는 행정력 행사와 분별없는 기업 경영은 구조조정을 뒷전으로 밀려나게 만들었다. 비록 소수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언젠가 중국이 세계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경고는 마침내 현실화됐다. 어느덧 ‘슈퍼 차이나’가 ‘슈퍼 리스크’로 바뀌었다.


상하이종합주가지수 추이

<그림 1>


  중국 경제의 거품과 불안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주가다. 상하이종합주가지수는 2014년 10월 2,300선에서 2015년 6월 5,100선까지 치솟았다. 불과 7개월 사이에 100% 이상 상승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내리막에 들어선 주가는 폭락을 거듭한 결과 지수 3,000선 안팎까지 떨어졌다. 고점에서 40%가량 내려온 것이다. <그림 1>

  원인은 물론 중국 경제의 거품과 잠재적 부실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반시장적이고 분별없는 증시대책 또한 주가의 급등락을 부추긴 원인이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성장 드라이브 정책을 지속해왔다. 그것이 급증하는 인구를 먹여 살리고 고용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중국 공산당 정부가 60년 이상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개혁개방으로 고도성장을 이뤄낸 덕분이다. 고성장과 고용 증대를 통해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시킴으로써 경제적 안정은 물론 정치적 안정을 꾀할 수 있었다.


중국의 그림자 금융 잔액 추이

<그림2>


  그러나 지나친 고성장 추구정책은 곳곳에 거품과 부실을 키워왔다. 특히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이후 중국 정부의 대규모 경기부양정책은 물가 급등과 자산 거품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켰다. 이에 대응해 중국 정부는 2010년부터 은행의 대출을 제한하고, 지방정부의 채무를 철저히 관리하기 시작했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방정부에 대한 은행 융자와 부동산에 대한 대출을 엄격히 제한했다. 그러자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가 어려워진 중소기업과 부동산개발회사들의 자금 융통이 어려워졌다. 지방정부도 이미 벌여놓은 대규모 사업을 시행하기 위한 자금 조달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난 것이 그림자금융의 급증이다. 자금의 주요 공급자인 은행들은 대출자산을 유동화해 조달한 자금으로 신탁회사나 증권회사를 통한 우회대출을 늘렸다. 자금의 수요자인 지방정부와 중소기업, 부동산개발회사들은 다시 손쉽게 자금을 빌릴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그림자금융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FSB(금융안정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중국의 그림자금융 잔액은 2014년 말 현재 4조 4,960억 달러에 이른다. 불과 5년 사이 14배 이상 증가했다. 중국 당국이 은행 대출을 억제하기 시작한 2010년부터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림2>


중국 정부가 주식거래 관련 규제를 풀어 다시 주식이 폭등하고 투자도 늘었지만...


  그림자금융은 구조가 복잡해 규모나 손익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부도 위험을 감지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중국의 그림자금융 규모나 위험성도 실제보다 훨씬 축소됐을 것으로 본다. 중국 정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중국 금융당국이 2014년부터 기업공개를 통해 기업들이 자본 확충에 나서도록 독려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기업들이 그림자금융을 이용해 늘린 빚 부담을 주식 상장과 증자를 통해 줄이도록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식거래와 관련된 각종 규제를 풀어주었다. 그 결과 주식값이 폭등하고, 주식 투자 인구가 급증했다.


슈퍼 차이나 허상에 가려진 슈퍼 리스크


  하지만 기업의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주가는 오래가지 못한다. 세계 경제의 불황이 지속되면서 중국 기업들도 실적이 나빠졌다. 수출이 줄고 고용이 줄어드니 내수마저 위축되었다. 그것이 치솟던 주가의 덜미를 잡았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불안을 느낀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중국 당국은 대규모 주식 거래 정지 등 특단의 조치로 시장에 맞섰다. 동시에 전격적인 위안화 평가절하 조치를 통해 수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때마다 주가는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럴수록 고성장을 뒷받침해온 중국 정부의 밑천이 드러나고 있다. 고성장의 그늘에 숨겨진 거품과 잠재적 부실, 강력한 정책추진력 속에 감춰진 반시장적 행태, 그리고 시장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만한 시스템과 경험의 부족 등, 슈퍼 차이나의 허상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차이나 리스크가 한꺼번에 드러나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와 전문가들은 2008년 위기 이전까지 세계 경제를 낙관하다가 위기를 예측하는 데 실패한 경험이 있다. 이들이 중국 경제에 대해서도 그동안 지나치게 밝은 면만 보아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고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정필모 KBS 보도위원 겸 앵커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