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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이신우 칼럼] 파탄 난 도덕 외교

이신우 칼럼, 파탄 난 도덕 외교


파탄 난 도덕 외교

- 이신우 서울경제 논설실장


  올해는 한민족이 일제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되는 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뜻깊은 해로 기념코자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올해만큼이나 한국의 대일(對日) 외교가 국내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적도 드물 것이다. 어느 정책 분야보다 유연해야 할 외교가 도덕 원칙에 치우친 나머지 유연성과 탄력성을 잃어버렸다는 지적이다.


이신우 칼럼, 광복 70년 한일 외교의 현주소


  이런 비판적 시각의 배경에는 일본의 과거사 문제 사과와 위안부 우선 해결이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가 자리 잡고 있다. 하긴 이 두 가지가 대일 외교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런 탓에 일본의 아베 정권 출범 이후로 양국 간 정상회담은커녕 의미 있는 협력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이신우 칼럼, 한국이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에 손을 내밀었다고 해석한 일본언론


  그토록 완강했던 박 정부의 대일 외교가 틈새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6월 22일 한일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서였다. 서울에서 열린 일본 정부 주최 행사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올해는 두 나라가 미래를 향해 갈 역사적 기회”라며 과거사를 떠나 미래를 위한 협력의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일본 언론이 이런 행간의 의미를 놓칠 리 없었다. 의미 부여도 노골적이었다. 한국이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을 탈피하기 위해 지금 일본에 손을 내민 것이라는 식의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때마침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 아베 일본 총리와 악수하는 장면이 외신을 타는 한편, 미국의 오바마 정권이 아베의 외교노선에 손을 들어주는 모양새가 된 것 자체가 미국 내의 ‘한국 피로감’ 때문이라는 외교가의 분석이 제기되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경제의 침체가 가속화하는 시점이었으니 일본 매스컴의 해석이 그렇게 틀린 것도 아니었다.


이신우 칼럼, 한일 외교 방향 전환은 중국을 겨냥한 것


  하지만 일본 쪽의 분석은 지나치게 일면적이었다. 일본이 여전히 한국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좌이기도 하다. 박근혜 외교의 이번 방향 전환은 한국의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어려움 탈피를 위해서가 아니라 중국의 갑작스런 ‘배신’에서 오는 쇼크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자신의 뒷배로 알고 있었던 중국이 한국을 넘어 일본에 손을 내미는 모습을 목격한 순간, 한국민은 뒤통수를 맞았다는 두려움을 맛봐야 했다. 한국을 향해 먼저 '대일(對日) 역사 연대'를 하자는 중국이 아니던가.

  그런 중국 지도부가 국제회의 참석이라는 명분으로 일본과 두 차례나 약식(略式) 정상회담을 가졌다. 오는 9월쯤에는 아베 총리가 중국을 공식 방문해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까지 보도되는 판이다. 한국이 부랴부랴 일본에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도 바로 이런 배경에서였다.


이신우 칼럼, 우리 언론의 책임은 없었을까?


  중국은 아베 정권을 비판하면서도 필요에 따라 언제든 일본과 손을 잡을 수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이때부터 이 정부 외교팀이 원칙과 현실의 융합 없이 오락가락하면서 국제 관계에서 우리 내부의 정서와 감정을 더 앞세운 게 문제였다고 국내 언론이 일제히 비판의 화살을 날리게 된다.

  하지만 사태가 이렇게 된 것에 우리 언론의 책임은 없었을까. ‘없었을까’의 의문형이 아니라 사실상 책임의 당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신우 칼럼, 국가 안보조차 국민 정서에 의해 농락당하는 현실


  한국 언론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日, 과거사 반성 없이 동북아 평화 요원하다’ ‘일본의 과거사 책임 재확인한 한-중-일 회의’ ‘美, 과거사 누가 악용하는지 제대로 보라’ ‘위안부 본질 호도하는 아베의 인신매매 발언’ ‘아베, 일본군 위안부 앞에서도 무릎 꿇어라’ ‘위안부 빠진 친서로 정상회담하자는 이야기인가’ ‘위안부 문제 더 이상 발뺌하지 말라’며 한국 외교의 발목을 잡아왔다.

  솔직히 말해서 현대 대중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을 비롯한 여론을 무시한 채 정부가 독단적으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외교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되겠는가. 정부가 비판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대일 외교관계를 여론 추수형으로 이끌어 왔다는 잘못일 뿐이다.

  박 정부에서만이 아니다. 2012년 한일 정보보호협정 이명박 정부는 서명식을 불과 50분 남겨놓고 일본에 협정 체결 연기를 통보했다. 전례가 없는 외교 결례이자 망신살이었다. 정부가 이처럼 허둥지둥 체결 연기를 선택한 것은 국내 언론의 불같은 비난 때문이었다. 마치 적국과의 내통이라도 되는 양 정부를 몰아붙였다. 국가 안보조차 대일 국민 정서에 의해 농락당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신우 칼럼, 대가를 치르고 있는 여론 추수형 대일 외교


  아니나 다를까, 여론 추수형 대일 외교는 이미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8월 15일 담화에서 침략 대상인 중국을 배려하면서도 한국이 얽힌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사과 문구를 빼버렸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에 대해 “한국에 대해 냉담한 문체였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중국만 제대로 처리하면 한국은 덤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냉정하고도 교활한 판단에 따른 것이다.

  미국 등 우방을 움직이거나, 정서적 동지로 여겼던 중국의 지지를 끌어내지도 못하면서 과거사 프레임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하는 대일 외교에 근본적 성찰이 시급하다. 그런 점에서 도덕지상주의 외교를 강요해온 데 대한 언론의 깊은 반성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


이신우 서울경제 논설실장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