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데이터=근거=힘
우리는 회사에 다니면서 보고서 작성, 건의서 제출, 보도자료 배포, 토론·인터뷰 준비 등 다양한 업무를 진행합니다. 모두 전혀 달라보이는 다양한 업무들입니다. 그런데 이 업무들에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입니다.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예산을 확보하기기 위해 우리는 발주사, 정부, 협력업체를 대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향을 끊임없이 설득합니다. 설득의 대상은 비단 회사 외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잘 될 것인지를 회사 동료 그리고 상사와 공유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그 사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설득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열정? 신념? 마케팅 기법? 깔끔한 디자인? 혹은 신입사원의 패기? 모두 맞는 얘기입니다만, 이 모든 것들에 앞서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무기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주제인 ‘데이터’입니다.
데이터를 통해 배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키를 어느 방향으로 틀어야 하는지를 냉철하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 입장에서 데이터는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됩니다. 근거는 ‘이래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공허한 주장의 반복과 달리 내가 하는 말의 권위를 세워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데이터는 곧 ‘힘’을 뜻합니다. ‘따뜻한 가슴’이 ‘차가운 머리’와 만났을 때 비로소 위력을 발휘하는 것처럼요.
2. 데이터는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데이터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데이터를 여러 유형으로 나눠 볼 필요가 있습니다.
① 사실에 기반한 숫자
우리가 ‘데이터’란 말을 들을 때 흔히 떠올리는 GDP, 수출, 고용 등의 통계자료입니다. 자주 인용되는 것들인 만큼 무슨 자료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면 일하는 시간이 단축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직접 찾아보지 않으면 옆에서 아무리 일러줘도 금방 잊어버립니다. 다만, 대표적인 사이트 4곳만 기억하면 됩니다. 국내자료는 국가통계포털(kosis.kr),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bok.or.kr), 해외자료는 IMF(www.imf.org/external/data.htm), OECD(www.oecd.org/statistics/).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찾기 어려운 데이터를 공들여 찾았을 때 해당 페이지를 즐겨찾기 해놓으면 이후 과거의 나에게 고마워할 상황이 찾아옵니다.
때로는 직접 자료를 생산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상장기업 전체의 금융위기 이후 매출액증가율, 영업이익률 등을 계산하여 ‘작년 우리기업의 매출이 역성장했다’는 식의 결과를 발표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석을 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거시통계가 아닌, 미시적 차원의 기업 재무데이터가 필요합니다. NICE평가정보의 ‘KISVALUE’나 상장회사협의회에서 제공하는 ‘KOCOinfo’에서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한 번에 받아볼 수 있습니다.
② 마음에 기반한 숫자
설문 결과를 정리한 수치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한국은행 소비자심리지수(CSI)가 있으며, 우리 회사도 매달 매출액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다음 달 경기에 대한 전망을 물어 기업경기실사지수(BSI)를 발표합니다. 좀 더 범위를 넓혀서, ‘구체적인 주제’에 대한 설문 결과도 유용한 데이터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방세법 개정 관련 조사’를 통해 ‘응답기업의 50%가 지난해 말 지방세법이 개정된 사실을 몰랐다’는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데이터를 사용할 때는 유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어떤 조건’하에서 설문이 진행되었는지를 꼭 명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문한 시점이 언제인지, 누구를 대상으로 했는지, 얼마나 응답을 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③ 숫자와 숫자의 관계
전문가의 계량분석 결과, 예컨대 ‘성장률이 1% 떨어지면 법인세수가 4,500억 원 가량 감소한다’는 식의 분석결과가 이에 해당합니다. 특정 정책의 효과를 논할 때 매우 유용합니다. 구글에서 원하는 키워드로 검색하여 적당한 검색결과가 눈에 들어오면 그 자료를 발표한 곳(홈페이지)으로 들어가 원 데이터를 다운받습니다. (처음부터 직접 연구소 사이트를 탐방해도 됩니다.) 이때, 기사만 보지 말고 꼭 원자료를 함께 보길 권합니다. 보고서 원문에는 기사에 없는 다른 정보들이 있을 수 있고, 제3자가 원문을 옮기는 과정에서 원래의 의미가 곡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분석이 없을 경우에는 전문가에게 직접 분석을 의뢰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 본인이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의뢰해야 합니다. 예컨대 ‘투자가 1% 늘어날 때 취업자가 몇만 명 증가하는지’가 궁금할 경우에, 그냥 “투자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주세요”라고 부탁하면 정작 원하는 수치 대신 화려한 문장들만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④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것
개인적으로 데이터가 꼭 숫자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주장을 할 때, 이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모범사례가 있다면 수치를 제시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불황기에 기업이 선제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부채비율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그냥 말로만 하는 것보다, ‘A사가 외환위기 당시 3조 원의 투자를 해서 당장은 부채비율이 100%대에서 300%대로 높아졌지만, 이후 투자의 효과가 나타나 2000년 1%이던 영업이익률이 2010년 10%로 뛰었다’고 말한다면 설득력이 한층 높아질 것입니다.
3. 데이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끝으로 데이터 사용시 주의할 점을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절대로 틀리면 안 됩니다.
제시한 자료가 잘못되었을 경우, 근거를 아예 제시하지 않았을 때보다 신뢰도가 더 떨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 ‘데이터 자체’에 대한 정보를 꼭 언급해야 합니다.
자료를 다른 곳에서 인용했는지 아니면 직접 생산했는지, 그리고 자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을 밝혀야 합니다. 분석 대상이 상장기업인지, 비상장기업도 포함되었는지, 개별재무제표로 분석했는지, 연결재무제표로 분석했는지 등을 밝혀야 보는 사람들이 자료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셋째, 해석을 잘해야 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주장입니다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대기업 고용이 10년간('99~'09년) 49만 명이나 감소했다는 주장이 꽤 널리 퍼졌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종업원의 수가 300인 미만이면 대기업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중소기업 근로자로 분류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넷째,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는 아무리 좋은 자료가 있어도 눈에 쏙 들어오게 전달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이것을 못 보고 지나치게 됩니다. 제목을 멋있게 뽑는다던가, 데이터를 하나의 표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등의 방법을 쓰면 좋습니다.
진짜 마지막입니다. 사실 이게 이 글의 핵심인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 싶으면 곧장 선배들한테 물어보세요. 십중팔구 여러분이 하는 고민을 선배들은 이미 했습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정말 모르겠다 답을 알고 싶다 하면, 바로 선배를 찾아가세요!
이 글을 보고 있는 제 후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궁금하다면 망설이지 말고 전화기를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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