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셜스퀘어/요즘뜨는이야기

오디션 프로그램과 함께 진화하는 콘서트 문화

서담


얼마 전 방송국에 종사하는 선배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제한된 거 같다는 안타까움을 표하더군요. 물론, 예전보다 음악을 할 기회나 전파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니까요. 여기에서 ‘가수’는, (조용필 씨가 이전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단순히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된다는 건 아닐 겁니다. 노래를 부르는 일로 많은 이들의 사랑과 찬사를 받고, 또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 즉 노래를 업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겠죠. 그게 아니라면, ‘음악 하는 것’은 단순히 취미일 뿐입니다.

 

슈스케, 오디션프로그램(출처:CJ E&M)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수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말입니다. 실제 지금 음원차트 순위에 있는 많은 인기 가수는 세 그룹 정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미 활동한 지 오래된 기성 가수, 기획사에서 배출한 아이돌, 그리고 오디션 출신 가수들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후자인 오디션 출신 가수들의 맹활약이 점점 더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실제 SBS <K팝스타>의 경우,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획사들이 참여하고 있죠.   
 

진화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저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편입니다. 물론 <슈퍼스타K>도 시즌별로 챙겨봤죠. 그리고 생방송 현장에도 종종 가봤더랬습니다. 가서 느낄 수 있는 감흥은 분명 다르니까요. (이점이 제가 공연장을 즐기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꽤 신기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노래 오디션’에 한정된 느낌이었던 오디션 대상이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댄싱9>이나 힙합을 대상으로 한 <쇼미더머니>가 바로 대표적인 예겠죠. 그리고 최근에는 트로트 오디션까지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저는 <마스터셰프 코리아> 역시 오디션 프로그램의 일부로 넣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일종의 ‘요리 경연대회’니 말이죠.)

 

이번에는 그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자 합니다.

 

갓설진과 <댄싱9> 붐, 그리고 바스락과 <쇼미더머니>


<댄싱9>과 <쇼미더머니>는 여느 오디션과는 확연히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기에 참가하는 이들이 ‘오디션’을 받을 대상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해당 분야에 오래 종사(?)했을 뿐 아니라 나름 인정받고 있는 베테랑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댄싱9, 김설진(출처:CJ E&M)

 

‘갓설진’이라는 애칭으로 사랑을 받았던 갓설진은 이미 벨기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현역 무용수입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 그 무용팀이 내한 공연까지 연 바 있었죠. 그리고 이미 무용 마니아들에게는 잘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인물이 왜 오디션에 나왔는가? 에 대해 우리는 몇 가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은 이건 비단 김설진 씨에만 해당되는 건 아니죠. 같은 시즌에 출연한 최수진 씨는 물론이거니와 전 시즌 우승자인 하휘동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하휘동 씨는 세계대회 우승 경력도 있는 걸요.

 

그러나 이 오디션을 통해 그들이 자존심을 구기고, 재평가를 받기 위해 수그린 것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의 ‘관심’, 해당 분야에 대한 ‘재환기’의 기회를 거머쥐게 되었거든요. 사실 공연 블로거로서 저 역시 무용 공연을 자주 볼 기회가 생깁니다만, 역시나 현대 무용은 참 어려운 분야거든요. 그래서 사실 범접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런데, <댄싱9> 공연을 보면서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김설진 씨의 인기를 타고, 그의 유튜브 동영상을 앞다퉈 찾아보고 이를 곱씹기 시작했고요. 다른 출연자들의 공연이나 동영상 등을 관심 있게 바라보기 시작했지요. 어쩌면 문화계에서도 상당히 소외되던 ‘무용’, 그중에서도 ‘현대무용’이 말입니다.

 

바스코, 바비(출처:CJ E&M)

 

그건, 이미 힙합계에서 중진급에 해당되었던 36세 바스코가 출연한 <쇼미더머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록을 접목하여 부른 노래에 힙합 가수나 팬들이 열띤 비난(?)을 했던 건, 그래서 바스락이라는 빈정어린 별명을 붙였던 건, 단지 힙합에 록을 섞었다의 문제라기보다 이미 힙합계에 중진급에 해당하는 그가 그런 변칙을 사용했다는 것 때문이겠죠. 그러나 흥미로운 건, 바스코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죠. ‘내가 바로 힙합이다.’ 사실 이게 오디션에 나온, 평가받는 입장의 사람이 할 반응입니까. 이미 이건 오디션에서 한 단계 나아간 상황이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힙합, 그 경원한 장르에 대하여


사실 저와 힙합은 평생 만나지 못할 장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제가 최근 힙합을 꽤 많이 듣고 있어요. 그건 바로 <쇼미더머니> 덕분입니다. 이미 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끝난 지 한참인데도 이번 시즌 우승자인 바비를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 새로 방송이 되었고요. 현재 인터파크 등의 공연 예매 사이트에 가보면, 힙합 공연 티켓이 심심치 않게 팔리고 있습니다.

 

쇼미더머니(출처:CJ E&M)

 

그리고 저 역시 이 <쇼미더머니> 콘서트에 참석했더랬습니다.

 

이 공연은 블루스퀘어에서 열렸죠. 그 큰 공연장에서 말입니다. 1층은 모두 스탠딩, 2-3층은 좌석이었는데, 정말 공연장을 빼곡하게 채웠더군요. 무려 3시간 반 동안 저와 함께 간 제 동생은 ‘이 나이’에 힙합 공연장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아니, 참여했다는 것이 더 적절할 시간이었죠. 힙합 공연장은 관중도 계속 날 뛰어야 하는 곳이니 말입니다. 하하. 그런데 우리가 이걸 ‘자진해서’ 갔다라는 겁니다.

 

출연한 이들도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공연장에서 힙합 공연을 하게 되다니- 라고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쇼미더머니>라는, 이런 독특한 형태의 오디션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꽤 주목해볼 만 합니다.

 

변화하는 시즌, 그리고 참가자


<댄싱9>은 시즌2, <쇼미더머니>는 시즌3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유달리 더 열띤 반응이 있었던 것은 허투루 보면 안 될 부분입니다. 단순히 무용의 매력을 새롭게 알게 해서 힙합의 매력을 새삼 알리게 되어서가 아니란 이야기죠.

 

분명 본질에 접근한 측면도 있습니다만, 이 프로그램을 보는 그 자체가 매우 즐거웠다는 것입니다. 즉, 재미나고 쫄깃하게 잘 만든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미 전문가였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서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고, 그들이 이런 경쟁의 상황에서 보여주는 잠재력이 상당했다는 것이죠. 오디션 프로그램과 해당 분야 전문가가 결합하면서 놀라운 시너지를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곽진언, 슈스케, 김필, 장우람(출처:CJ E&M)

 

그것은 아마도 예년의 인기를 회복한 <슈퍼스타K> 시즌6도 예외는 아닐 겁니다. 이미 김필과 곽진언 등을 필두로 장우람, 임도혁을 우리가 ‘아마추어’라고 하기엔 좀 힘든 면이 있지요. 이미 언더에서 오래 활동한 경력도 있고요. (여기에서 진짜 오디션에 나온 느낌이 드는 출연자는 아직 10대 중·고등학생인 이준희, 송유빈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구성 출연진이 좋을 경우, 굳이 악마의 편집은 필요가 없죠.

 

나가며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영역이 가진 ‘숨겨진 매력’을 알리는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이죠. 그냥 그 분야에 아마추어들을 발굴하겠다는 시도를 넘어, 자신의 분야를 ‘오디션’하는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다양한 장르는 그 장르대로 매력이 있습니다. 다만 그걸 발견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요. 무용이나 힙합이 고급장르여서 힘든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충분한 기회만 있다면, 언제든 그 매력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죠.

 

어쩌면 그 ‘기회’를 현재 오디션 프로그램이 담당해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아마도 새로운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겨날 여지는 충분히 더 있겠죠. 물론 이 프로그램 자체를 얼마나 재미있게 만드느냐도 관건이고요.)

 

하지만 한가지 경계해야 할 건 분명 있습니다.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자극적인 조미료를 과하게 치는 것. (전 이게 얼마 전 침체기에 있었던 슈스케나 사라진 몇몇 오디션에서 벌어졌던 과오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르 자체의 본질적 재미를 놓치는 것같은 실수 말입니다. 그 점만 잘 고민한다면, 오디션 프로그램은 아마도 ‘이제 다 할 만큼 한 거 아닌가.’라는 우려를 분명 딛고 일어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너무 잡다한 분야로 넘어가거나, 더 자극적인 소재로 본질을 벗어나는 것을 조심한다면 말이죠.

 

어쨌거나 저 역시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기는 입장에서, 지금의 현상이 무척 반갑습니다. 이미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새롭게 저는 무용과 힙합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거든요. 어쩌면 이 프로그램이 방영될 당시보다 전 더 커다란 즐거움을 발견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