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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컬덕트 ⑥] 세계 최초 MP3플레이어 디지털캐스트 F-20

컬덕트 (Culducts : Culture + Product) : 한국의 IT강국이지만 정작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산 제품은 많지 않습니다. 재조명하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국 제품들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의미에서 ‘한국의 컬덕트’를 연재합니다. 컬덕트는 시대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을 준 제품은 물론, 비록 판매에서 실패를 했더라도 일부 마니아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냈던 제품들도 포함됩니다.


1998년 3월, 독일에서 열린 IT 박람회(CeBIT)에서는 조그마한 한국 부스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아닌 ‘디지털캐스트’라는 회사가 차린 작은 부스였습니다. 그들은 지나가는 관람객에게 전단지를 나눠줬고, 그 전단지에는 ‘세계 최초의 MP3플레이어 F-10’이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부스에는 그 당시 인기 있던 워크맨처럼 생긴 작은 기계가 전시되어 있었죠. 관람객들은 물었습니다.

 

디지털캐스트, mp3플레이어, 세계최초 mp3


“MP3 플레이어가 도대체 뭔가요?” 그 당시 부스를 지키던, MP3 플레이어를 개발한 황정하 사장과 심영철 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디지털 음원을 재생하는 오디오입니다. 테이프를 갈아 끼울 필요도 없고, 아무리 음악을 들어도 동일한 음질을 제공하죠.” 토머스 에디슨이 축음기를 만든 이후, 120년 만에 가장 큰 혁신이 한국의 작은 회사에서 시작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MP3 플레이어가 발명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이제 극히 드뭅니다. 애플의 아이팟, 소니의 워크맨이 그럴듯한 탄생 비화와 여러 에피소드로 멋지게 포장된 반면, 21세기 음악 소비방식을 바꾼 한국의 MP3 플레이어의 탄생 설화는 답답하고 화까지 날 정도입니다. 한국인들에게도 이렇게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는데 말이죠.

 

f20, mp3


MP3 플레이어의 시작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최초의 MP3플레이어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디지털캐스트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황정하 사장과 심영철 씨입니다. 그들은 세계적인 MP3 파일 공유 사이트인 ‘냅스터’가 탄생하기 2년 전에 이미 MP3 파일의 잠재력을 눈치채고 MP3를 재생해 낼 수 있는 플레이어를 기획하게 됩니다. 하지만 자금력이 부족했던 디지털캐스트는 새한그룹이라는 회사에 투자를 받았고 대신에 공동 특허권을 나눠 갖게 됩니다. 자금이 확보된 디지털캐스트는 드디어 1998년 3월 독일에서 열린 IT 전시회에서 "F-10"(양산화 되면서 F-20으로 모델명 교체)이라는 이름의 MP3 플레이어를 공개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시작부터 운명은 평탄치 않았습니다.

 

F-20이 공개되기 불과 5달 전에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IMF 선언을 했고 기업들은 줄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투자회사인 새한그룹도 어려움에 빠졌고, 마케팅 지원이 전무한 상태에서 가격은 워크맨의 두 배가 넘는 250$로 책정됩니다. 그리고 전세계를 통틀어 겨우 1~2만 대 정도가 팔리는 데 그치게 됩니다. 게다가 새한그룹은 디지털캐스트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브랜드 역시 디지털캐스트를 배제하고 새한이라는 이름으로 나가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아직까지도 많은 곳에서는 세계 최초의 MP3플레이어를 새한이 만든 ‘mpman’브랜드로 알고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작은 회사를 인정하지 않았던 중견기업의 횡포였죠.


디지털캐스트는 브랜드도 뺏기고, MP3 플레이어가 실패하면서 월급까지 밀려 폐업을 고민하고 있을 때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됩니다.

 

"미국에 있는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라는 회사인데 만나보고 싶습니다."

 

리오, 다이아몬드사, 스티브잡스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 회사는 재미교포 사업가인 이종문 씨가 세운 연간 7억 달러(9천 억 규모)의 매출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그래픽카드 업체였습니다. 다이아몬드사는 한국을 방문해서 디지털캐스트를 설득했고, 다이아몬드사에 투자를 받고 자신들이 가진 특허권을 모두 넘기게 됩니다. 한국이 만든 MP3 플레이어의 특허권이 모두 미국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다이아몬드사와 디지털캐스트는 리오(Rio)라는 MP3 플레이어 브랜드를 만들어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하게 됩니다. 애플의 스티브잡스가 리오 MP3플레이어를 보고 아이팟을 개발한 것은 유명한 일이지요. 결과적으로 아이팟은 한국 제품에서 모티브를 얻은 셈입니다.


한국 MP3 플레이어 특허권이 미국으로 모두 넘어간 과정에는 너무나 많은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디지털캐스트가 MP3 플레이어의 아이디어를 내고 제작했지만 새한그룹은 디지털캐스트를 헌신짝처럼 버린 것이죠. 디지털캐스트가 다시 투자자를 찾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험 없는 젊은이들이 이상한 제품을 팔려고 한다. 그렇게 좋은 제품이라면 왜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만들지 않겠느냐?"며 우리를 사기꾼 보듯이 했다.

-심영철 MP3 플레이어 개발자, PC사랑 2005년 10월

 

그러나 MP3 플레이어는 곧 세계적 호황을 맞고 레인콤(현 아이리버), 현원, 거원시스템(현 코원), 디지털웨이, 삼성전자 등이 가세하면서 2003년에만 750만 대를 생산하며 연평균 53%의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시장으로 발전했습니다. 한국은 디지털캐스트 덕분에 세계 1위의 MP3 플레이어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한 셈이죠.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작은 회사인 디지털캐스트의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소송을 벌이며 특허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중소기업들은 우후죽순으로 MP3플레이어 시장에 뛰어 들었습니다. 2004년쯤에는 정말 모든 업체들이 MP3플레이어를 만들 정도였습니다. 진입장벽이 없으니 마구잡이로 저가 제품을 찍어내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도는 낮아졌고, 2005년 애플이 ‘아이팟 나노’를 출시하며 한국의 MP3 플레이어 업체들은 줄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특허권 관리가 잘 되었고, 한국의 대기업이나 투자자들이 디지털캐스트를 인정하고 존중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아마도 한국은 애플에 대항하는 멋진 전자회사를 가지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나라에는 MP3 플레이어를 처음 개발했던 디지털캐스트도, 새한그룹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특허권은 미국의 시그마텔이 모두 사들였습니다. MP3 플레이어의 대명사도 애플의 아이팟 정도로 기억합니다. 한국의 디지털캐스트, MP3플레이어 종주국, 원천기술 보유, 세계 1위의 MP3 생산국이라는 타이틀도 모두 잊혀져 갑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거짓이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MP3플레이어의 역사를 부정했기에 우리나라에게 MP3 플레이어의 미래는 사라진 것이지요. 지금의 한국은 이를 기억하고 반성하고 있을까요? 부디 안타까운 역사가 두 번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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