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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요우커, 카지노, 그리고 ‘영리’ 병원

요우커, 카지노, 그리고 ‘영리’ 병원

- 한국일보 박진용 논설위원

 

 요즘 서울 명동이나 남대문, 광화문 등 시내 주요 지역이 중국인 관광객, 이른바 요우커(遊客)의 물결로 뒤덮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하철이든 거리든 너무 많아 걷기가 불편할 정도이고 때론 시끄럽게 떠들고, 때론 8차선 대로를 무단 횡단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강남의 성형외과 밀집지역에선 중국식으로 성형외과를 뜻하는 ‘整形外科(정형외과)’로 간판을 내건 곳이 적지 않고, 수술 및 시술 후 병원에서 제공한 리무진을 타고 관광에 나선 중국인 일행을 보는 것도 낯설지 않다. 얼굴에 붕대를 칭칭 감은 채 병실에서 나와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 중국 여성들의 모습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한마디로 요우커 밀물이요, 홍수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요우커는 모두 432만 명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35.5%를 차지했고, 올 들어 증가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특히 지난 7월 한 달에만 70만 명(전체의 51%)을 돌파, 외국 관광객 2명 가운데 1명은 요우커였다. 2018년까지 연평균 17.2%씩 증가해 960만 명, 2020년까지 1,488만 명이 방문할 것이라는 추산도 나온다.

 

 이들이 지난해 국내에서 6조 원을 뿌린 덕분에 일자리 24만 개가 생겨난 것으로 분석됐다. 삼성 현대차 등 47개 대기업이 지난해 새로 만들어 낸 일자리의 약 4배에 달하는 규모다. 2020년엔 쇼핑 매출규모가 30조5,000억 원대로 지난해의 3.5배로 늘어난다니 이런 화수분도 따로 없다.

 

 요우커 방한의 열풍은 중국 내 한류 바람과 근거리 해외여행 붐, 반일 감정 등이 복합적으로 빚어낸 산물이라고 봐야 한다. 통상 한 나라 국민의 관광행태는 자국 내 관광을 시작으로 근거리 해외관광에 이어 중장기적으로 원거리 및 고급 여행 순으로 진화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지금 요우커들이 방한 러시를 이룬다고 해서 자만할 일이 아니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적으로 친연성이 높은 장점을 살려 요우커를 사로잡을 우리만의 관광 인프라구축을 서두를 때다. 한번 찾아온 요우커를 또 오게 하고, 더 많은 요우커를 불러들이기 위한 결정적 ‘킬러 콘텐츠’와 다채로운 프로그램 발굴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없다면 국가 간 외교분쟁이나 사소한 사건으로 인한 이미지악화, 혹은 여행 트렌드의 변화로 한 철의 ‘메뚜기떼’처럼 몰려왔다가 쉽게 훌쩍 떠나 버릴 수도 있는 게 외국인 관광이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7대 유망 서비스산업 투자활성화 대책에 관광 및 보건의료 분야를 포함시킨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물론 당장 실효성이 있을 법한 영역도 이 분야인 게 현실이다. 대책에서 제시된, 2017년까지 원스톱으로 허용하겠다는 영종도 및 제주도 등 4개 복합 리조트 사업도, 외국 영리법인 설립을 통해 2017년까지 150만 명의 해외 환자를 유치하겠다는 구상도 결국 앞으로 얼마나 많은 요우커를 끌어들이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카지노부터 살펴보자. 사실 카지노산업은 생각만큼 돈이 많이 벌리는 게 아니다. 마카오와 싱가포르에 이어 일본까지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는, 카지노가 포함된 신개념 복합리조트 산업이 최근 성장 가능성이 높은 건 사실이고, 화장품과 카지노에 돈을 많이 쓰는 중국인 관광객의 특성을 감안할 때 복합리조트 건립을 마냥 늦출 이유는 없다. 하지만 현재 국내엔 외국인 전용 카지노 16개와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강원랜드가 있는 데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상당수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선 카지노를 많이 허가해 줘봐야 외국인에 이어 내국인까지 입장을 허용해 달라고 추가 요구할 게 뻔하다며 부정적이다. 또 카지노 사업은 도박 중독자 양산은 물론 각종 매춘, 마약, 폭력 범죄 등을 수반해 사회적 폐해가 심각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외 관광객 유치 및 일자리 증대 효과도 불투명하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한마디로 미래 가치를 가진 양질의 비즈니스가 아니다는 지적이다. 전적으로 옳다고 볼 순 없지만 귀담아들어야 할 부분도 있는 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선 보건ㆍ의료 분야에 더 눈길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특히 의료 목적으로 방한하는 중국인이 미국인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선 건 이미 2012년이고, 이런 증가세는 더욱 가파르게 이어지고 있다.  의료관광은 수술 및 시술 차원을 넘어 관광산업 및 의료산업 전반에 긍정적 동력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차세대 먹거리 산업으로 유망하다는 말이다. 사실 외국인 환자 유치에는 물류비도 들지 않고, 관세도 필요 없다. 한 사람을 유치하면 자동차 한 대 수출과 맞먹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제주도와 경제자유구역 내에 투자개방형 외국병원 설립을 지원하고, 올해 하반기 국제의료 특별법(가칭)을 제정해 해외환자를 유치하며, 의료기관의 해외진출을 촉진하는 내용의 보건ㆍ의료분야 대책을 정부가 내놓은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이 것이 제대로 실행된다면 해외환자가 2013년 연인원 65만 명에서 2017년 150만 명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게 정부 추산이다.

 

의료관광, 중국인, 요우커(출처:경인일보)

 

 

 물론 시술 및 수술 대상자를 상대로 예후를 체크하기 위해 다시 주기적으로 방한해야 하는 사람이 더 늘 수 있고, 이들의 건강상태를 원격으로 진찰해주는 원격의료 내지는 원격모니터링 시스템과 결합해 운용한다면 경쟁력 있는 또 하나의 의료산업이 될 수 있다. 관련 IT 장비 및 기기 시장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현재 정부는 해외 관광객이 아닌, 국내의 산간벽지와 섬마을 등 원거리 환자와 장애인을 위해 원격의료의 기초가 되는 원격모니터링 시범 서비스부터 이달 중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나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는 정부의 이번 보건ㆍ 의료분야 대책을 의료 영리화로 가기 위한 포석으로 보면서 궁극적으로 국민의료보험제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원격의료 시범서비스도 대형병원만 살찌우고 동네의원을 고사시키는 조치라며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현재의 의료보험체계를 흔들지 않는다는 확고한 전제 위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의료서비스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면 규제를 푸는 건 옳다고 본다. 특히 영리목적의 투자개방형 병원이든, 원격의료든 우리가 지닌 장점들을 융합해 중국인의 고급 의료수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특화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들을 상대로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스스로 밀쳐내서도 안 되고, 시기를 놓쳐서도 안 된다. 우리는 선진국 못지 않은 의학기술과 장비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 않은가.

 

 중국은 최근 병원에 대한 외국인 투자제한을 풀 모양이다. 이미 지난해 상하이자유무역구(FTZ)에 외국인이 100% 단독 투자하는 병원설립을 허용한 데 이어 이번에는 현재 70%인 외국인 투자한도를 확대하는 내용의 ‘2014년 보건의료 개혁방안’을 확정했다고 한다. 이 것이 실행에 옮겨지면 외국인이 자유무역구 뿐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독자적인 병원사업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어쩌면 앞으로 중국 의료관광객이 굳이 서울을 찾을 필요가 없게 될지 모를 일이다.

 

중국, 의료관광, 요우커

 

 14억 중국인을 우리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는 건 미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의료 분야라고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해외여행에 나선 중국인은 무려 9,700만 명이었고, 올해는 1억1,0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란다. 이들의 10%만 유치해도 국내 산업 전반에 엄청난 힘이 된다.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구매력(PPP) 기준으로 이미 1만 달러를 돌파했다고 한다. 스포츠와 오락, 미용과 건강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시기에 접어든 셈이다. 전병서 중국금융경제연구소장은 <한국의 신국부론>에서 “2억 명에 달하는 중국 노인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으면 앞으로 한국인 전체가 30년은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과장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