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2일, 명지대학교 국제한국학연구소에서 제 74회 박정희 시대 정기학술 포럼이 열렸습니다. ‘박정희 시대와 중동건설’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포럼은 안용환 명지대 한국학연구소 연구 교수의 발표와 지정토론으로 이루어졌는데요.
발표를 맡은 명지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안용환 교수는 70년대 초 박정희 정부시절 삼원공역주의 대표이사를 지냈고 현대건설과의 계약으로 쿠웨이트 SAS(주택건설현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자소서가 당시 중동건설현장에서 일하셨던 분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보고,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중동진출이 가능했던 경제 정책과 관련한 의견을 들어보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1973년 오일쇼크이후 우리 기업들은 중동에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부도위기 국가였던 대한민국은 중동으로의 활로를 모색합니다. 첫 시작은 현대건설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였습니다. 현대를 시작으로 중동진출이 이어졌고, 마침내 중동특수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70년대부터 중동에 진출한 우리기업들은 100억 달러, 당시 국가예산의 25%정도라 할 수 있는 금액을 수주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또한 중동건설의 호황으로 벌어들인 오일머니는 중화학공업 성장에도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이렇게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중동진출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시간이 명지대학교에서 마련되었습니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시 우리 기업이 중동에 진출할 때, 중동현장 현대건설에서 근무했던 안용환 박사입니다. 안 박사는 우리 기업이 중동진출을 하는데 겪은 에피소드와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었는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안용환 박사와 자소서의 인터뷰 내용>
자소서 (이하 자) 그 당시 우리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안용환 박사 (이하 안) 박정희의 엔지니어 리더십, 박정희 경제정책의 엔지니어 모델 그리고 유능한 인재를 적재적소에 썼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자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그 당시 중동특수를 노린 것처럼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안 예전 우리나라는 토목, 건축 등을 통해 성장했지만, 오늘날에는 플랜트를 수출하는 방법과 견적기술 국제화를 통해 성장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아직은 견적기술은 선진국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공사현장기술은 선진국 수준이지만 견적기술은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이 따라주면 앞으로 중동건설이든 해외건설이든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오늘날에도 정주영식 불도저 경영이 통할까요?
안 그 당시에는 정주영 입찰방식이 통하였지만, 지금은 전산처리와 과학화된 견적이기에 통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 이번 행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안 상당히 의의가 깊습니다. 중동건설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박정희 집권초기부터 한일협정, 월남전, 서독파견광부 그리고 중동건설까지 종합적으로 연구해야 합니다. 한 세트를 이루어야 중동건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행사가 상당히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았던 우리 기업의 중동진출, 이러한 도전정신은 오늘날의 한국경제의 큰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어 굉장히 뜻깊은 것 같은데요. 중동에 진출했던 우리 기업들의 노력을 볼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지금까지 명지대학교에서 자유광장 소통공감 서포터즈 5기 고은호, 손준수였습니다. :)
* 본 게시물은 자유광장 서포터즈 학생들의 제작물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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