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캠퍼스토크/대학생경제읽기

의료 산업, 바람직한 성장 방향에 관하여

우리나라에서 의료활동을 하는 모든 병원에서는 건강 보험 해당이 되는 질환에 대해, 건강보험 기준에 따라 진료하고 정해진 수가에 따라 진료비를 청구하게 되어 있습니다. 2012년 기준으로 건강보험 보장률은 62.5%. 본인 부담률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이런 제도 때문에 작은 질병인데도 돈이 없어 고칠 수 없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의료 소비자 입장에서 봤을 때 건강보험은 정말 좋은 제도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는 법. 의료 공급자인 병원과 의사 입장에서 보면 의료 보험은 꼭 그렇게 좋은 제도만은 아닙니다. 건강보험료가 준조세 성격을 띠고 있어서 함부로 올릴 수 없는 만큼, 보험공단에서 병원에 지급하는 의료 수가(진료비)가 원가보다 낮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의료비용, 환자, 보험공단

 

의료 수가가 의료 원가보다 낮으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많습니다.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병원 적자입니다. 2012년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국립 서울대 병원, 연세의료원의 의료 서비스 당기 순이익은 각각 -287억, -66억입니다. 병원 적자가 계속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병원은 급여 항목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서 비급여 항목의 진료를 늘립니다. 비급여 항목은 보험공단에서 지정한 필수 의료 서비스가 아니라서 금액이 급여 항목보다 높습니다. 그리고 남은 병원의 적자는 부대사업으로 메워집니다. 대표적인 사업은 주차장, 장례식장, 음식점 사업 등입니다. 이 때문에 병원의 부대시설 이용료는 비싸집니다.

 

지난해 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제4차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의료 산업 선진화를 위해 병원이 자회사를 세우고 민간의 투자를 받아 의료 부대사업을 할 기회를 열어주고자 한 것입니다. 부대사업에는 의료기기, 의료호텔 등 기업이 충분히 참여할 만한 사업 항목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의료법인의 자회사가 도입된다면 병원은 자회사를 통해 적자를 보전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산업 자본이 49%까지 자회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기존 병원보다는 훨씬 효율적인 경영이 가능합니다.

 

이 법안에 대해선 정부와 기업, 의료계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먼저 병원 경영자와 의료 산업에 관심 있는 기업들은 의료 자회사를 통해 고급 의료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에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병원의 숨통을 틜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 호텔을 통해 외국인 환자도 유치하므로 의료 수출 효과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연세의료원은 지난 1월, 하나투어와 이미 의료 관광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의사들과 의료 서비스 수요자들은 이 법안이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합니다. 의료 자회사 법안이 통과되면 병원이 고급 의료 중심의 비급여 항목의 진료를 더욱 늘릴 것이라 예상합니다. 한정된 의료 자원이 급여 항목 중심의 공공 의료보험을 활용한 진료보다는 민간 의료보험에 투입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의료의 공공성이 크게 훼손될 것을 우려합니다. 이 때문에 지난 3월, 의사협회는 총파업을 진행했던 것입니다.

 

정부는 어떨까요?

 

정부는 낮은 의료 수가의 문제점을 예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만들어진 의료보험 체계를 개편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정부가 의료 수가를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의료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데, 앞서 말했듯 세금과 비슷한 성격을 갖는 이 보험료를 올린다면 그에 따른 조세 저항이 우려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는 의료 산업을 기업에 개방해 효율적인 성장을 촉진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로 인한 고용 창출 효과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해관계자, 의료민영화, 의료산업

 

저는 의료 산업의 일부를 민영화해 우리나라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관련 고용을 창출한다는 점에는 백번 동의합니다. 하지만 의료 자회사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현 법안이 통과된다면 병원과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장 이득이 되기 때문에 좋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공공성을 해친다는 비판 때문에 정부도 의료 민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없고 결국에는 의료 산업의 규제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애초부터 적자난 해소라는 명목의 의료 자회사 설립은 비판의 여지가 많습니다.

 

장기적으로 기업이 의료 산업에 참여하여 좋은 효과를 내려면 저는 역설적으로 공공병원의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OECD 평균 공공병원 비율은 약 75%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0% 밖에 되지 않습니다. 공공병원의 비율을 높여 현 법안 통과 시 역효과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기업의 투자 영역을 보다 확실히 지정함으로써 공공병원과 민간병원의 자유로운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러한 구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생각보다 클 것입니다. 일상적이고 필수적인 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공공 병원에 가서 공공의료보험을 활용한 치료를 받습니다.

 

한편 고급의 의료 수요가 필요한 사람들은 민간의료보험을 활용해 민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습니다. 의료 수가를 높이고 공공 의료 서비스의 품질을 강화한다면 공공 병원은 민간 병원과 경쟁할 수 있습니다.

 

의료산업, 의료민영화

 

민간 병원은 기업의 투자를 받아 의료 서비스와 제품을 자유롭게 개발하여 부유층의 의료 소비를 자극하고,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여 의료 서비스를 수출하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또한, 병원과 기업이 합작하여 만든 의료기기가 전 세계에 수출하는 새로운 제조 분야를 창출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의료 산업이 성장한다면 고용률 증가에도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의료민영화의 좋은 취지를 잘 살리기 위해서는 공공과 민간의 영역을 확실하게 구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박병성, 칼럼, 전경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