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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애덤스미스 연구소장 초청 정부 팽창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간담회

 
황인학|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한국경제연구원 은 지난 6월 1일, 영국 애덤스미스연구소(Adam Smith Institute)의 이먼 버틀러(Eamonn Butler) 소장을 초청하여 ‘정부 팽창의 문제점과 대응방안’을 주제로 간담회를 가졌다. 시장은 정부나 정치보다 더 합리적이고 민주적이고 효율적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팽창압력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다. 내년의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與野)의 구분 없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부지출의 증가, 정부 역할(규제)의 확대를 수반하는 정책안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에서 ‘포퓰리즘(populism)’은 물론이고 정부 팽창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버틀러 소장의 경고를 되새겨봄직하다. 이에 버틀러 소장의 강연 및 토론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한다.
+ 정치, 정부보다 시장이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다
최근에 ICT 혁신기술에 기초한 미디어가 늘면서 모든 사안, 만사(萬事)가 정치화(politicisation)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이 때문에 정부 팽창압력이 다방면에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의사결정은 시장의 의사결정보다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흔히 정치는 다수결의 민주주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뜻을 반영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정치적 선택은 ‘배타적(exclusive)’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각자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지만 정치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도 공공의 선택이기 때문에 강제당하며, 소수의 옳은 의견이 다수의 틀린 의견에 구축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둘째, 정치에서는 개인의 한 표가 최종 결과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히 낮다. 유권자도 이를 알고 투표에 부의된 안건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등의 성가신 일을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정치는 시장보다도 훨씬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셋째, 정치적 선택에서 유권자는 최악(最惡)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최선(最善)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즉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채택될 것 같지 않으면 여기에 투표하지 않고, 가장 싫어하는 안이 채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맘에는 들지 않지만 덜 나쁜 쪽에 투표를 한다.
 
넷째, 시장 선택에서는 비용과 책임을 당사자가 부담하지만 정치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떠넘길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빚을 내더라도 오늘 풍족하게 쓰고 그 부담은 후세의 납세자에게 전가하는 정책이 늘어나고 있다.
 
다섯째, 선거 공약에서 보듯이 정치는 교육, 의료, 조세, 국방에 이르는 정책 묶음을 한꺼번에 선택해야 한다. 시장에서는 원하는 것을 하나씩 골라서 바구니에 담지만 정치에서는 각자가 원하는 최선의 정책조합을 얻을 가능성이 없다.
+ 공직자는 공익만을 생각하는 천사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제도적 흠결 외에도 정치인과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 즉 사람의 문제도 있다. 우리는 정부의 시장개입, 규제 도입을 촉구할 때 공직자는 사심이 없이 오직 공공의 이익에 봉사할 것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공직자는 ‘천사’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돌보는 우리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공직자가 챙기는 것은 ‘정치적 소득(political income)’이다. 이 소득은 특혜 제공의 대가로 받는 돈일 수도 있고, 이념적 가치일 수도 있고 국민의 혈세로 지인과 지역구 주민을 도와 줌으로써 얻는 존경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규제가 많을수록, 정부가 클수록 공직자가 ‘정치적 소득(political income)’을 쉽게 챙길 기회도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의사결정 과정의 제도적인 흠결, 공직자의 정치소득 추구 유인 때문에 정치적 선택은 비효율, 불합리를 내포하고 있다. 개인이 원하는 것과는 다른 선택이 채택되고, 게다가 공공의 선택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이를 거부할 자유도 허용되지 않는다. 반면에 시장에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우리의 돈으로 선택을 하고 우리가 원하는 상품의 조합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시장은 정치보다 훨씬 민주적이며,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리고 애덤 스미스 이후 많은 경제학자들이 ‘정부 규모의 축소’와 ‘시장 역할의 확대’를 줄기차게 강조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 최종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소비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치의 시장개입과 정부 예산 팽창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정치 권리의 신장과 교육수준의 향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복잡한 정책 현안을 토론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여기에다 24시간 뉴스 보도 채널의 등장, 인터넷과 SNS의 이용이 늘면서 온 국민의 정치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현상에 대한 실시간 뉴스와 논평 수요가 폭증하자 매체와 정치인, 매체와 압력단체(pressure group) 사이의 공생구조도 나타난다. 매체는 특종을 위해 정치인을 찾고, 정치인은 (본인 부고를 빼고는 언론에서 거론되기를 좋아하는) 속성상 당연히 매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요즈음 매체는 심지어 뉴스 채널까지 예능을 지향하는 듯이 시청자에게 새롭고, 재미있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제공하려고 애를 쓴다. 각종 압력단체는 매체의 이러한 욕망을 채우는 데 협조하고, 그 대신 돈 안 들이고 대중에게 자신을 알리는 효과를 얻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만사(萬事)는 정치화하고 논쟁은 가열되면서 끝에는 거의 예외 없이 문제해결을 위한 정치적 개입,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익집단과 시민단체는 언제나 항상 정부 개입의 확대, 정부 팽창을 주장한다. 프리드먼(M. Friedman)이 『자본주의와 자유(1962)』에서 말했듯이 압력단체는 정부와 정치권에 비대칭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압력단체의 이익은 집중되어 있고 일반 대중의 이익은 분산되어 있으며, 그래서 이들의 로비는 강력하고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철강회사들이 자기 제품을 비싸게 팔기 위해 외국산 철강의 수입을 금지하거나 높은 관세를 매기도록 로비하는 경우를 보라. 이에 따라 자동차나 기계제품의 가격도 덩달아 오르지만 최종 소비자들은 가격상승의 원인을 잘 알지 못한다. 또 안다고 해도 경쟁제한 규제를 철폐하기 위해 본인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기에는 실익이 없다고 판단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가격규제와 가격인하 압력, 특정 생산자 단체를 위한 진입규제 신설 및 강화, 산업보호를 위한 외국산 수입 제한 등 압력단체들의 정부개입 촉구는 끝이 없다. 공무원으로서는 이러한 요청에 응하면서 부처 확대와 감독 권한 확대라는 반대급부를 얻으니 나쁠 게 없다. 정부의 시장개입 확대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점-시장 효율성의 하락, 규제비용과 불확실성의 증가, 납세자들의 추가 부담 등은 토론 과정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다. 특히 어떤 규제이든지 최종 부담자는 소비자이기 마련이지만 그 어디에서도 소비자를 대변하는 소리는 찾아보기 힘들다.
+ 규제 권력은 스스로의 확대 재생산을 통해 시장을 왜곡하고 발전을 저해한다
정부 역할을 줄이고 시장을 확대하려는 시도는 저항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정부 담당 부처 공무원, 이해관계에 있는 기업과 단체, 노조, 정치인 등이 기득권 세력으로 버티고 있기 때문에 정부 축소는 쉽지 않다. 이와 관련 대처 총리가 1983년부터 추진한 공기업 민영화 정책은 교훈적이다.
 
대처는 석유, 자동차, 조선, 버스, 기차, 가스, 수도, 전화, 전기, 심지어 임대주택까지 모든 것을 정부가 독점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니 이를 민영화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민영화 추진은 곧 저항에 부딪쳤고, 대처 정부는 경제적 효율성의 명분 외에 정치적인 전략이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압력집단들이 정부 확대를 위해 노력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를 축소하려면 반대 방향으로의 정치공학이 필요하다.
 
대처는 먼저 이익집단이 누군지 확인하고 하나씩 대응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반대가 약하면 무시하고, 그렇지 않으면 양보안을 갖고 협상하거나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들과 힘을 합해 밀어붙였다. 예를 들어 국영전화회사를 매각하려 했을 때 노조가 극렬하게 반대하자 대처는 노동자들에게 민영화된 기업의 주식을 무상으로 나눠주겠다고 제안을 해서 노조의 반대를 무력화시켰다. 그 이후 주식 교부는 민영화의 교과서적인 정책이 되었다. 이처럼 서로가 윈-윈 하는 정책을 만들 수만 있다면 국영에서 민영으로, 정부에서 시장으로의 전환은 훨씬 쉬울 것이다.
 
이미 커진 정부를 축소하는 것만큼이나 정부가 확대되지 않도록 억제하는 일도 중요하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ICT 기술발달과 매체의 증가로 모든 이슈가 모든 이의 토론 대상이 되며 정치화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면서 정부팽창 압력이 높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책이나 규제가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 어떤 부작용을 초래할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 대신에 부자나 아니면 미래 세대가 비용을 대겠지 믿고 지금 당장의 시혜성 정책을 선호하고, 정치권과 정부는 주기적인 선거 때문에도 시장 개입에 더 적극성을 보인다.
 
이에 정부 권력을 제한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는 자유주의 사상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어떻게 정부팽창을 억제하나? 다방면에서 정부팽창 압력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에 대응할 방법은 무엇인가? ‘법의 지배(rule of law)’ 원칙 확립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즉 국회에서 제정되는 모든 법률은 정치인과 공무원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똑같이 적용되게끔 확실히 해서 누구도 특혜를 받거나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또는 198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뷰캐넌(J. Buchanan)의 제안처럼 정부 규모를 헌법에 명시적으로 제한하는 방법은 어떤가?
 
그러나 이 모든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힘을 갖고 있으면 그 힘은 권력이 되어 언제든 남용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기득권 세력의 연합체인 동시에 정치적 소득을 얻고자 하는 공직자에 의해 운영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최선의 방법은 가능한 한 많은 시장활동을 정부의 권한 밖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리스와 포르투갈 등 재정위기를 맞은 PIIGS 국가의 사례를 교훈삼아 정부의 한계를 인정하고, 시장 주도의 경제를 확대해야 하는 것이다. 규제 권력은 한 번 부여되면 스스로 확대 재생산의 경로를 따르게 되고, 그 결과 시장을 왜곡하고 발전을 저해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inhak@keri.org)

* 출처 : 월간전경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