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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지주회사 제도의 역사와 교훈

 
김현종|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지주회사 제도 관련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2년이 넘도록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안이 국회 소위원회에서 수정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이미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기업집단을 곤란하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심사숙고하던 기업집단에게도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기업집단에 있어 체제의 전환은 무엇보다도 큰 비용을 소요해야 하는 중대사로서 해당 기업집단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시간만 낭비하고 있을 뿐인 결정권자들의 공방은 기업집단의 중대사를 저버리고 있을 뿐 아니라 전환 의지를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더구나 과거 변화무쌍했던 지주회사에 대한 정책을 고려할 때 또 다시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안타깝게 여겨진다.
+ 금지 이전부터 지주회사는 선호되지 못한 기업집단 체제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부터 지주회사를 금지하는 제도를 채택했었다. 지주회사를 금지했던 이유에는 일본의 영향이 컸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동안 육본과 재벌 간 관계가 긴밀했고 패전 이후 재벌 해체의 역사를 경험했다. 그런데 재벌 해체 이전 일본 대규모 기업집단의 체제가 바로 지주회사 체제였다. 이러한 역사의 경험으로 인해 일본의 공정거래법은 전후 지주회사를 금지하는 법을 도입했으며, 공정거래법 입법 당시부터 일본 경쟁법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던 우리나라는 법의 개정 시 이를 수용했던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렇게 지주회사가 금지됐지만 당시 어떤 대규모 기업집단도 이 규정으로 인해 기업지배구조상의 문제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주회사 금지 조항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위법행위로 판단되었던 사항을 보면 동일 업종 사업자들 간 담합 목적으로 지주회사가 설립되었던 사례 정도가 중요 사건이었다. 즉 우리나라 기업집단은 지주회사를 금지해서 지주회사 체제로 가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금지하기 이전부터 지주회사 체제를 채택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 기업집단은 일본의 2차 세계대전 이전의 기업집단처럼 지주회사 체제를 따르지 않았던 것일까? 이에 대한 논의는 아직 학자들에 의해 깊이 있는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필자는 한국과 같이 역동적인 경제성장 경험을 갖고 있는 국가에서 지주회사 체제는 기업집단에게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급속히 성장하는 경제상황에서 다양한 사업 분야의 우수기업을 인수하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것이 기업집단에게 있어서는 매우 중요하다. 고도 성장기에는 정부부문의 우수한 공기업이 민영화되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런 기회에 대비하여 충분한 출자여력을 마련하는 것이 기업집단의 경쟁력이 되기도 했다.
 
따라서 기업집단들로서는 자금여력 있는 계열사들이 시장에 갑자기 쏟아져 나온 우수 기업들을 인수토록 하는 체제가 유리했다고 보인다. 새로운 계열사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기존 계열사를 일단 매각하고 그 매각대금으로 매물 기업을 인수해야 하는 지주회사 체제는 상대적으로 장시간이 소요됐기에 기업집단들에 의해 회피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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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주회사 허용 이후의 문제와 과제
금지되던 지주회사 체제는 외환위기에 이르러서 허용됐다. 구조조정 문제가 심각했던 당시 기업집단의 복잡하게 얽힌 출자구조로 인해 계열사의 매각 등 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주회사가 허용됐다. 물론 이러한 정책 변화에는 일본의 영향도 있었다. 일본은 이미 지주회사 금지와 관련된 조항을 삭제하고 일반집중과 관련된 전혀 다른 규정을 도입하고 있었다. 입법 당시부터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던 우리나라의 지주회사 제도는 이러한 변화를 수용한 것이기도 했다.
 
지주회사 허용 이후 국내 4대 기업집단 중 하나인 LG그룹이 맨 먼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진전도 나타났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주회사 제도는 여전히 기업집단들이 체제를 전환하는 유인을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 기업집단은 지주회사를 금지하기 이전부터 지주회사 체제를 선호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러한 체제로서 성장해 오면서 출자구조가 보다 더 복잡해졌다. 이러한 기업집단들로서는 경로의존성으로 인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막대한 전환비용을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체제로 인식되지 못한다면 전환에 주저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현재 가장 논란이 큰 쟁점은 일반 지주회사에 대한 금융계열사 소유허용에 대한 것인데, 이로 인해 이미 전환한 기업집단으로서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 차별 없는 지주회사 제도 정착 필요
참여정부 시절 2004년부터 ‘시장개혁 3개년 계획’이라는 정책이 도입된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 모범 지배구조로 강조됐던 기업집단이 미국의 GE(General Electronics)였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항은 지주회사 형태를 갖고 있는 GE도 금융계열사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력부문뿐 아니라 가전, 정보통신, 방송 등 다양한 사업 분야를 가지고 있는 GE는 소비자에게 자사제품 구매를 도와줄 수 있는 GECapital을 보유하고 있다. 즉 GE도 금융계열사를 보유하여 계열사 간 시너지효과를 증진시키고 있다. 이는 비단 GE에 국한되는 사실이 아니며 지주회사 형태를 가지고 있는 포드(Ford)나 소니(SONY) 등 지주회사 형태를 가진 외국의 기업집단도 금융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업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금지했던 지주회사 제도를 허용하고 전환을 권유하는 정책으로 선회한 이유는 보다 출자구조가 단순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 기업집단에 차별적인 지주회사 제도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여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유도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