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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한이의 경제외교 여행기] 韓-日 양국 경제계 대표선수들의 모임, 한·일 재계회의


가깝고도 먼 나라... 이런 수식어가 나오면 벌써 사람들은 어느 나라 얘기인지 눈치를 챕니다. 


맞습니다, 이번에는 일본 얘깁니다. 일본은 알다가도 모를 나라이고, 고맙다가도 미워지는 참 어려운 이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최근에는 위안부 문제에 더해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가 다시 부상하면서 양국은 한동안 냉각기를 가져 왔는데요. 북한 핵·미사일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긴밀한 협력도 절실한 상황입니다. 그야말로 외교의 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죠. 



이런 시기에 이번 10월, 도쿄에서 열릴 예정인 한·일재계회의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경색된 외교관계를 경제협력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는 기회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4년 7년 만에 재개된 한·일재계회의는 양국 경제인들이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3년 동안 그 끈을 놓지 않고 신뢰로 이어온 결과였는데요. 이번 회의에는 전경련의 허창수 회장, 경단련의 사카키 바라 회장 등 양국 경제계 중진들이 모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양국 경제가 함께 풀어가야 할 현안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첨단과학기술, 인재 양성, 한중일 FTA와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한 지혜를 모으는 거죠.


7년 만에 재개된 제24회 한·일재계회의 (2014. 12. 1)


그렇다면 전경련과 경단련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요?


이야기는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0년대 중반 악화되어 있었던 한일관계는 1980년대 제5공화국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는데요. 1983년 초 나카소네 총리 방한을 계기로 경제 분야의 협력활동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민간경제협력 확대 노력도 본격적으로 시작됐죠. 개발도상국의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에게는 일본은 매우 중요한 시장이자 기술 전수국이었습니다. 그만큼 경제협력도 필수적이었는데요. 전경련에서는 이 과제를 풀기 위해 여러 차례 특사를 파견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일본은 세계에서 두 번째 가는 경제 대국으로 자부심이 대단할 때였습니다. 한마디로 콧대가 하늘을 찔렀던 거죠.  일단 만나야 교류를 시작할 수 있을 텐데, 경단련의 임원 한 명 만나기도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당시 경단련 임원 초청의 임무를 띠고 일본에 특사로 파견되었던 전경련의 한 간부는, 한국은 물론 대만, 북한, 홍콩과의 경제협력이 일본 입장에서는 득이 될 것이 전혀 없다고 여기는 경단련 간부를 붙잡고 이렇게 설득했다고 합니다.


“나는 나머지 세 나라와 한국을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으면서도 긴밀히 협력해야 할 분야 또한 다양합니다. 이를테면 조선, 자동차, 철강, 전자, 반도체, 가전, 산전 등 모든 분야에서 말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협력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본경제계 시찰 중 이나야마 경단련 회장과 환담하는 정주영 회장 (1983.11.18)


진정성을 가지고 끈질기게 설득한 그의 진심이 결국 간부의 마음을 움직였고 얼마 후 하나무라 당시 경단련 부회장 일행이 한국에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정주영 당시 전경련 회장을 포함한 전경련 회원들은 이들을 진심으로 맞아주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전경련과 경단련 회장단의 상호교환 방문이 정례화됐는데요. 이미 일본과의 경제협력 채널로 한-일경제협회가 별도법인으로 설립되어 있었지만, 양국의 경제계 리더들이 공통의 관심사를 밀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별도의 장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대기업을 회원으로 하면서 동시에 자국 경제계를 대표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 전경련과 경단련 간에 회장단 교류가 추진되었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양 단체 회장단의 교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계기로 1985년 5월에는 전경련과 경단련 간에 더욱 긴밀하게 협력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협력의정서를 체결했습니다. 



전경련·경단련 합동회의 기념비 제막 (1993.10.14)



한·일재계회의는 양국 겅제계를 대표하는 경제모임인 만큼 1980년대에는 양국 간 무역불균형 개선, 기술이전 촉진 같은 이슈들이 다루어졌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친선의 의미보다 구체적인 협력에 더 비중을 두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신뢰로 지킨 한일경제인들의 협의체가 앞으로도 한-일 두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 더욱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