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율보다 중한 것
- 홍수용 동아일보 논설위원
법인세를 높여서 이른바 ‘헬조선’ 문제를 해결하자는 발상은 그럴듯하지만 비논리적이다. 헬조선이라는 말로 표출된 한국 사회에 대한 분노는 기득권층의 과도한 지대 추구(Rent seeking) 때문에 생긴 문제다. 대기업에서 세금을 많이 거둬서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방식은 오류를 초래하기 쉽다. 문제의 원인에 일 대 일로 대응하지 않는 엉뚱한 방안을 해법이라고 우기며 논쟁하는 상황은 사회적 자원을 낭비하는 소모전일 수밖에 없다.
● 결론 나지 않을 논쟁
지금 야당은 법인세 인상을 통한 ‘부자 증세’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정부와 새누리당은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이유로 법인세 인상 주장에 반대하고 있다.
법인세율을 내리면 기업투자가 늘어난다는 논리를 뒷받침할 자료는 많다. 반대로 비과세 감면이 대기업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설명할 자료도 그만큼 많다.
먼저 증세론의 근거를 보면 이렇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 등의 자료를 인용한 보도를 보면 2012년을 기준으로 할 때 법인세 감면액의 70%를 넘는 금액이 대기업으로 돌아갔다. 대기업에 세금 혜택이 집중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런데 최근 조세재정연구원이 낸 자료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14년 기준 상위 0.5%에 속하는 기업이 낸 법인세가 전체 법인세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0%에 육박한다는 것이다. 주요 기업이 이미 법인세를 많이 내고 있다는 의미다.
자, 어느 쪽의 말이 옳은가? 둘 중 틀린 말이 있는가? 모두 옳고 모두 틀리지 않은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런 논쟁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결론이 날 리 없다. 이런 소모전을 할 만큼 우리는 한가한가.
● ‘승자 독식 구조’의 해법
경제 민주화 논의가 정치권에서 확산되면서 세법을 중심으로 양극화 해소 방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어느 것도 현 사회의 구조적 분노를 진정시키기에는 미흡하다. 동전의 양면을 보지 않고 한쪽 면만 보고 있어서다.
농경사회에서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격차는 지금보다 더 컸다.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억압하면서 부당한 지대를 누려도 인권 의식이 희박했던 시기에는 문제 될 게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공정한 분배를 원한다. 심지어 과거에는 선진국에서만 양극화 문제가 이슈화됐지만, 지금은 경제 발전 정도와 상관없이 양극화 해소에 대한 갈망은 지구 공통적인 현상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구조를 개혁하라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이런 모순 구조를 개혁하려면 상위 1% 계층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를 참고하면 상위 1%에 속하는 부자들 중 상당수는 헤지펀드 매니저, 은행가, 변호사, 교수, 의사 등 이른바 전문가 그룹이다. 금융위기 당시 금융 전문가 집단의 도덕적 해이와 불법 실태가 드러났지만 여전히 이들의 기득권은 공고한 상태다.
한국의 경우 상위 1% 계층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 단 노동소득은 점점 줄고 기업소득의 비중이 점점 늘고 있는 점이 분명한 만큼 법인세 과세를 강화해서 근로자 소득을 보전해주자는 논리가 나오는 것이다.
법인세 인상은 두루뭉술한 처방일 뿐이다. 배당, 연금 같은 이전 지출과 사회보험 같은 부가 혜택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정확한 분배 구조를 모르는 상태에서 내놓은 코끼리 다리 만지는 불완전 대책이다.
지금 할 일은 분노의 대상이 되는 기득권 집단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다. 기득권의 지대를 정상화하는 후속 대책이 그 다음 순서다. 문제에 대한 진단을 제대로 하지 않고 양극화 대책을 구호로만 외치는 것은 더 극한 대립만 초래할 뿐이다.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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