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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정필모 칼럼] 경제를 평가할 때, 왜 지표보다 정책에 주목해야 하나?

정필모 칼럼- 경제를 평가할 때, 왜 지표보다 정책에 주목해야 하나?

경제를 평가할 때, 왜 지표보다 정책에 주목해야 하나?

- 정필모 KBS 보도위원(앵커)


  이제 대부분의 나라에서 경제가 선거의 최대 이슈로 등장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세계 경제가 ‘장기 불황(secular stagnation)’을 겪으면서 어느 나라나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경제정책의 방향이나 성패를 둘러싼 논쟁에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전략은 각 후보 진영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고민해야 할 일이 되었다.


정필모 칼럼- 미국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거슬러 올라가면 경제를 선거에서 단순하게 이슈화해서 재미를 본 사람은 미국의 빌 클린턴(Bill Clinton) 전 대통령이다. 클린턴은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구호로 이슈를 주도했다. 당시 상대 후보였던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는 현직 대통령이었다. 그는 걸프전(Gulf War)의 승리로 인기가 높았지만, 경기침체와 재정적자 해소라는 난제를 안고 있었다. 바로 이 약점을 파고든 것이 클린턴이었다. 그는 경제문제를 이슈화해 부시의 재선을 저지하고 승리를 거두었다.


정필모 칼럼-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그렇다면 당시 경기침체와 재정적자가 단지 부시 행정부의 정책 실패만의 책임이었을까? 실상을 들여다보면, 전임자였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정부의 탓이 크다. 레이건 행정부의 지나친 감세정책과 군비지출의 후유증이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비로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레이건 행정부는 재정수지와 경상수지 적자 누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재임 당시에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경제정책은 이처럼 단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후유증이 심각한 경우가 적지 않다.


정필모 칼럼- 대통령의 경제 성적은 지표가 아닌 정책으로

  이와 관련해 미국 하버드 대학의 그레고리 맨큐(N. Gregory Mankiw) 교수의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지난 1월 말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대통령의 경제 성적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지표가 아니라 정책을 살펴보라”고 강조했다. 맨큐 교수에 따르면, 사람들은 흔히 대통령의 재임 중 경제가 어떠했느냐를 보고 그를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같은 방식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첫째, 대통령의 정책 결정은 그의 임기가 끝난 후에도 장기간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둘째, 역대 대통령마다 전임자로부터 경제적 유산을 물려받는데, 거기에는 전임자의 정책 결정이 긴 음영으로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셋째, 대통령이라고 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비협조적인 의회의 반발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정책결정자들의 통제를 벗어난 세력에 의해 경제가 휘둘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필모 칼럼- 맨큐 교수가 말하는 미국 대통령 사례

  맨큐 교수는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잘못 평가받은 사례로 미국의 지미 카터(Jimmy Carter)와 빌 클린턴(Bill Clinton) 전 대통령을 꼽았다. 카터 전 대통령의 경우 상대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억울한 면이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카터 행정부 시절 물가가 급등하는 등 경제가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베트남 전쟁에서 전비를 많이 쓴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대통령 등 전임 대통령들의 방만한 재정운용과 Fed(연방준비제도)의 소극적 대처가 경제 악화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클린턴 전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클린턴 집권 시절 호황을 누리고 재정수지가 개선되었지만, 그것은 정부의 정책보다는 주로 닷컴(dot-com) 버블과 새로운 정보기술(IT)에 의한 생산성 향상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클린턴이 임기를 마치기 직전 닷컴 버블이 꺼지고, 나스닥지수는 반 토막이 났다. 그러나 경기침체는 클린턴이 물러나고 두 달이 지나서야 공식적으로 시작되었고, 그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맨큐 교수는 지적했다.


정필모 칼럼- 경제지표로 평가되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경제 업적

  그의 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경제 업적에 대한 평가 역시 재임 중 각종 경제지표에 의해 이뤄져 왔다. 하지만 미국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그것만으로 온전히 경제적 성과를 평가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전임자가 시행한 정책은 물론 재임 당시의 대내외 경제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최고 권력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재임 기간 중 경제가 좋아졌다는 평가를 받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다 보면 임기가 끝나기 전에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정책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하물며 평가가 나쁘면 언제든지 물러나야 하는 장관들은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장관들은 더더욱 짧은 시간 안에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짜내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럴 경우 경제는 단기적인 효과에 내기 위해 시행한 정책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후유증을 앓게 되고, 후임자는 큰 부담을 지게 되기 십상이다.


정필모 칼럼- 외환위기의 원인과 언론의 문제점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은 것도 그 직전 경제팀의 조급한 성과 내기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1996년 봄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은 어떻게든 경기를 부양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당시 경제팀은 부실기업을 대대적으로 정리해야 할 시기에 무리한 통화완화 및 재정확장 정책을 폈다. 그 결과 기업 부실이 금융 불안으로 번졌다. 게다가 1996년 말 OECD 가입과 함께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원화 가치를 지나치게 끌어올렸다. 이른바 ‘세계화’를 추진한다는 구실로 외환자유화도 적극 추진했다. 이는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를 불러왔다. 이 같은 문제들이 겹치면서 급기야 금융시장과 환율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정부는 1997년 3월 경제팀을 교체했으나 이미 위기를 막기에는 때가 늦어버렸다. 그 결과 1997년 말 급기야 외환보유고 고갈로 위기를 맞게 되고, 결국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국민들은 대부분 무리한 정책으로 위기의 단초를 제공한 선임 경제팀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로 인해 발생한 위기를 떠안은 후임 경제팀에 책임을 물었다. 그렇게 된 데는 언론의 잘못도 있다. 당시 언론이 선임 경제팀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했다면, 후임 경제팀이 책임을 모두 뒤집어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필모 칼럼- 경제는 뿌린대로 거둔다

  경제는 뿌린 대로 거둔다. 무리한 정책은 시차를 두고 대가를 치른다. 그로 인한 고통은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이 받는다. 그런데도 국내외 사례에서 보듯이, 당시의 집권자나 경제팀이 책임을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후임자들에게 책임이 전가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느 집권자와 장관이 자기 임기 이후까지 멀리 내다보고 정책을 고민하겠는가. 자신이 물러나고 나서 어떻게 되건 재임 중 단기 효과를 노린 정책을 짜내는 데만 골몰할 것이다. 이건 합리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의롭지도 못하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임기 중 지표가 아니라 정책을 살펴보고 정부의 경제 성적을 평가해야 한다는 맨큐 교수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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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