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해외 투자와 청년 '고용 절벽'
- 김기천 조선일보 논설위원
얼마 전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북쪽에 있는 타이응우옌성의 삼성전자 옌빙 공장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작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옌빙 공장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 S6와 S6 엣지를 생산하는 핵심 공장입니다. 축구장 10개 크기의 생산동에 대형 CNC(컴퓨터 수치제어) 절삭 기계가 수 천대 설치돼 휴대폰 메탈 케이스를 만들어내는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옌빙 공장에서 더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5만8,000여 명의 근로자들입니다.
스마트폰 생산 공정 중 인쇄회로기판(PBA) 조립라인 등은 다양한 제품 사양에 맞춰 작업 내용도 달라지기 때문에 공정을 자동화하기 어렵습니다. 자동화 기기나 로봇보다 숙련된 근로자들의 세심한 수작업이 더 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휴대폰 공장은 자동화 설비에 엄청난 투자를 하면서 동시에 많은 인력을 고용해야 합니다.
베트남이 삼성 휴대폰의 메카로 떠오르게 된 것은 바로 그 ‘인력’ 덕분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손이 작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양손에 쥐고 식사하는 문화를 갖고 있어 손재주가 좋고 섬세한 작업을 잘한다고 합니다. 2모작, 3모작 농사를 지으며 새벽부터 논에 나가 일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 부지런하고 근면합니다. 평균 시력이 3.0이라고 할 정도로 눈이 좋아 휴대폰 표면에 나 있는 미세한 긁힘 자국이나 작은 얼룩 등을 잘 찾아내기도 합니다. 이래저래 휴대폰 제조 공정에 적합한 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장점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노동력이 풍부하다는 사실입니다. 인구 9,000만 명이 넘는 베트남은 국민 평균 연령이 29세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젊은 나라입니다. 베트남식 개혁 개방 정책인 도이모이 정책 이후 경제가 급성장하고 있지만, 아직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 기반이 미약해 고졸 인력의 절반 정도가 고향에서 농사를 지어야 할 정도로 일자리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삼성전자의 휴대폰 공장은 베트남 젊은이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장의 하나입니다. 베트남에서 농사를 지어서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은 한 달에 70~100달러 정도입니다. 반면 삼성전자에 입사한 고졸 여직원은 초과근무수당을 포함해, 한 달에 350달러 정도의 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 기준으로는 최저 임금 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이지만 베트남에선 단번에 중산층으로 올라설 수 있는 소득입니다.
삼성전자는 옌빙 공장 준공 이후 매주 600명 정도씩 근로자를 선발하다가 지난 5월엔 채용 인원을 매주 2,500명까지 늘리기도 했습니다. 이를 위해 270명의 직원이 100개 팀으로 나뉘어 베트남 중-북부 지역의 33개 성에 파견돼 수백 개 고등학교를 찾아다녔습니다. 모집 공고만 내면 지원자들이 알아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 삼성 직원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선발 인원을 데려와야 하는 어려움은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1년여 만에 6만 명에 이르는 인력을 모집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베트남보다 인구가 10배 이상 많은 중국에서도 이제는 이런 대규모 채용을 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가 한 자녀 정책을 오랫동안 시행한 결과 20살 안팎의 젊은이들이 대부분 ‘소황제’ ‘소황녀’로 자라나 어렵고 힘든 공장 일을 기피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삼성 관계자는 “구미 공장에선 1년에 1,000명 뽑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대기업들의 해외 투자와 관련해 국내 고용이 줄어든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옌빙 공장의 사례를 보면 기업 입장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임금을 비롯한 생산 비용과 해외 시장 확보 같은 다른 요인도 있지만,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베트남이든 어디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기업들이 해외 투자를 하지 않으면 국내 고용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기업만 경쟁력을 잃고 망가질 뿐입니다.
한국도 요즘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합니다. 특히 내년부터 60세 정년이 의무화되는 것과 관련해 앞으로 3~4년간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크게 줄여 청년 ‘고용 절벽’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도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옌빙 공장처럼 한꺼번에 고용을 수만 명 늘릴 수 있는 기업 투자는 이제 더이상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삼성전자가 75억 달러를 들여 중국 시안에 건설한 반도체 공장의 경우 현지 채용 인원이 2,600여 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기업들이 국내에서 대규모 투자에 나선다 해도 고용 창출 효과는 과거보다 훨씬 작을 것입니다.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서비스 산업 육성을 위한 파격적인 규제 완화를 비롯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비상한 조치가 있어야 합니다.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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