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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이용식 칼럼] '비경쟁적 정당체제'의 비극

자유광장 칼럼노트- '비경쟁적 정당체제'의 비극


'비경쟁적 정당체제'의 비극

- 이용식 문화일보 논설실장


  내일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면 야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까. 대통령 선거라면 집권할 수 있을 것인가. 불행히도 ‘아니오’다. 그럼 내년 4월 13일 실시될 제20대 국회의원 총선은? 그 다음해 12월 20일의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마찬가지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고, 여론은 변덕스럽기 때문에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이런 전망이 야당 내부에서 제기된다는 데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탈당 및 분당 움직임의 가장 큰 명분이 이것이다. 그리고 다수 국민이 동의하니 탈당의 동력이 생긴다.

  지금의 정치·여론 지형이 유지된다면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단독 과반 의석 확보나 집권은 어렵다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2012년 12월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51.6%, 문재인 후보는 48.0%를 득표했다. 그 8개월 앞 국회의원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52석, 민주통합당은 127석을 확보했다. 박근혜 정권의 임기 절반이 지난 현재 새누리당 의석은 160석, 새정치연합은 130석으로 더 벌어졌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야당 지지도는 박 대통령이나 여당에 한참 못 미친다.

  2012년 야당은 ‘질래야 질 수 없다’는 두 차례 선거에서 모두 졌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엔 온갖 인사 파문,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성완종 리스트에다 경제 상황 악화 등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야 격차는 오히려 더 커졌다. 같은 정당이 10년 집권하면 정치적 피로감 때문에라도 정권이 교체되는 것이 민주국가의 일반적 현상인데,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60년 야당사, 지지기반을 넓히려는 노력 없이 집권은 어려워


  왜 이런 희한한 일이 일어날까. 여론이, 민심이 이상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현재의 야당 사정을 보자. 누구나 실패한 뒤에는 그 원인을 살펴 패인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지지그룹이 가장 확고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DJ)도 1992년 대선 패배 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아예 영국으로 떠났다. 현재 야당은 이런 기본적인 것을 실천하지 않고 있다. 패배한 노선과 세력에 대한 청산 작업은 없고, 반대로 그 세력이 도로 주도권을 잡았다. 2012년 선거에서 3.6% 차이로 졌으니, 조금만 더 준비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큰 착각이다. 참신함으로 얻었던 그만큼도 얻기 힘들다.

  60년 야당사를 살펴보더라도 마찬가지다. 1960년 4·19 뒤 민주당 정권,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권 등 3번 집권했지만, 온전히 자력으로 성공한 경우는 없다. 첫 번째는 학생혁명으로, 나중엔 DJP연합으로, 또 한 번은 막판에 깨지긴 했지만,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효과에 힘입어 가까스로 집권할 수 있었다. 지지기반을 획기적으로 넓히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집권은 어렵다. 그런데 거꾸로 가고 있다. 스스로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펴면서도 불평만 할 뿐, ‘평평한 운동장’으로 바꿀 생각은 않는다. 이념의 축을 이동해야 하는데, 반대로 가고 있다. 오히려 여당이 축을 야당 쪽으로 옮기려 한다. 보수 정치세력이 지난 60년 동안 자유당, 민주공화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변모해왔고, 유승민 파문에서 보듯 계속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과도 대조적이다.


여야 불균형의 피해는 결국 국민의 몫


  이런 불균형은 야당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는다. 강력한 야당이 없으면 여당은 무기력하고 무책임하면서 권력을 누리는 ‘웰빙당’이 된다. 정부는 오만해진다. 야당은 집권보다 내부 기득권 지키기 및 선명성 투쟁에 매달리고, 그런 세력이 세를 얻는다. 국정을 둘러싼 소모적 대립은 심화되고, 국가적 비효율이 커진다. 여당은 그런 야당을 적당히 관리하면서 권력을 계속 유지하는 방안을 찾는다. 일종의 적대적 공생이다. 그 피해가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은 자명하다.



  이런 정치 지형을 ‘비경쟁적 정당체제’라고 한다. 시장과 마찬가지로 정치도 ‘경쟁적 정당체제’가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효율적으로 기능한다.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Giovanni Sartori)의 분류법이다. 일당제, 양당제, 다당제 등 단순히 정당의 숫자에 기초한 분류보다 훨씬 유용한 분석틀이다. 한국은 외형상 ‘경쟁적 체제’로 보이지만 야당의 집권 가능성이 현재의 수준에 머무른다면 내용상으로 ‘비경쟁 체제’일 수 있다. 야당이 사실상 궤멸하다시피 한 일본이 대표적 사례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는 비경쟁의 악순환이 시작되려 한다. 야당이 비판의 신뢰를 높이고, 책임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와 여당이 더 나은 정책으로 보완하는 선순환으로 돌려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좋은 야당’ 만들기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이용식 문화일보 논설실장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