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경제위기, 그리고 내 집의 운명은?
- 박진용 뉴시스 부국장 겸 경제부장
“2~3년 뒤 위기가 올 것에 대비해 자본을 축적해 놓으려 합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심각했다. “집값이 지금 소형 평형을 중심으로 크게 오르는데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될까요” 라고 물었더니 목소리는 작아지고 유쾌하던 표정이 금세 진지해졌다. 사실 집값이 과거처럼 올라 돈벌이 수단이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향후 부동산 시장이 폭락할지 여부에 대해선 견해가 갈린다.
위기론을 신봉하는 그의 논리는 이랬다.
“지금 집값이 오르는 건 정상입니다. 현 정부 들어 택지 공급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공급이 줄었으니 당연히 뛰는 것이지요. 여기에 지난해 DTI(총부채상환비율),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를 완화, 기름을 부은 것이지요. 중요한 건 한국경제 전반이 가라앉고 있다는 겁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앞으로 우리 경제에 좋은 일이 별로 없어요. 그러니 집값이 뛴다고 상승효과가 제대로 나겠어요. 바닥이 주저앉고 있는데… 집값 오름세는 머지않아 천장을 치겠지요. 그게 저는 2018년쯤으로 봅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다시 한 번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의 견해를 더 듣기 전에 부연설명을 좀 하자. 지금 국내 아파트값은 강남권을 기준으로 보면 2007년 최고조에 달했을 때에 비해 대략 20~30% 정도 빠진 상태다. 한마디로 당시에 비해 75% 정도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이는 미국 등 선진국이 거의 40% 수준까지 폭락했다가 바닥을 다진 뒤 회복된 것과는 크게 다르다. 때문에 어떤 위기가 닥치면 아직 거품이 덜 빠진 집값이 현재의 75% 수준에서 40% 수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견해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가계부채는 1,100조 원을 넘어섰고, 이 가운데 400조 원의 빚을 지고 있는 ‘한계가구(금융순자산이 마이너스면서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DSR)이 40%를 넘는 가구)’가 150만 가구에 달한다. 한계가구보다 더 리스크가 큰, 자산보다 빚이 더 많아 파산 위험이 상당한 ‘위험 가구’도 이미 110만을 넘어섰다. 이런 상태에서 금리 인상이든, 글로벌 차원의 경제 위기든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탑이 무너지듯 차례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의 주장을 더 들어보자.
“왜 2018년이냐구요? 위기 5년 주기설, 10년 주기설이 있는데. 두 주기설이 겹치는 때가 2018년 경이고 그때는 위기가 더 크게 오는 패턴이 있지요. 지난 20년을 보세요. 1997년 98년 외환위기, 2002년 2003년 카드대란, 2007,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2, 2013년 유럽 재정위기, 이번에는 2017, 2018년이라고 봅니다. 근데 내년이 총선이고 2017년 12월이 대선입니다. 그때까지 위기가 불거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틀어막을 테니까요. 그러면서 시장은 부풀대로 부풀 것으로 봅니다.”
그의 위기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18년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지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소비도 왕성하면서 주택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45세부터 49세까지의 연령대가 크게 감소하는, 다시 말해 인구 구조상의 변화가 마무리되는 시점입니다. 이런 것들이 결합돼 2018년경에는 어떤 식으로든 주택시장이 크게 조정을 받을 것으로 봅니다. 그때는 빚을 지고 집을 산 사람은 물론이고, 전세를 살고 있는 분들도 어려워질 수 있어요. 심지어 건설회사에서 요즘 2018년까지 월세 살다가 2018년이 지나면 (집값 폭락 후) 집을 사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어요.”
그의 말을 길게 인용한 건, 다소 비약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부동산시장 붕괴론의 핵심 논리를 나름대로 요약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의 예언이 옳든 그르든, 전문가 집단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논리에 공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인구 감소 시대에 집값이 더 오르기 어려운 만큼 가구당 부의 80%가량을 차지하는 부동산 중심의 자산 포트폴리오 구성을 금융자산 위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과 맞물려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닌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이 없을 수 없다. 부동산 정책을 포함해 경제를 이끌고 가고 있는 정책 당국자들의 이야기부터 차례로 들어보자.
먼저 최경환 부총리. 경제를 총괄하는 사령탑인 그는 2018년 부동산 시장 폭락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을까? 지난 6월 언론사 경제부장단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통계로 잡히지 않는 주택 수요는 상당해 집값 폭락은 없을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2018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주택 수요가 감소하기 때문에 집값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주택에 대한 숨어있는 수요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반지하에 살고 있고, 전·월세로 거주하는 사람들이 상당합니다. 좁고 낡은 집에 사는 사람은 더 넓고 깨끗한 집으로 이사 가려는 욕구가 큽니다. 이런 주택 대기수요가 상당합니다.
또 지금은 자가 주택은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한 채 두면서 시골 등 교외 지역에 또 다른 주택을 갖고 싶어 합니다. 이 때문에 한 개인이 한 채만의 주택을 갖는 게 아니고 다주택을 선호하게 됩니다.”
그는 여기에 더해 가계부채가 임계점에 달해 한계가구든 위험 가구든 빚을 갚지 못하는 계층이 어느 시점에 대량 발생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를 폈다.
“가계부채 1,100조라고 하는데, 한국은행도 정확한 통계를 갖고 있지 않지만, 여기에서 전세금이 대략 400조 안팎으로 추정되고 이 중 은행에서 빚낸 것이 200~300조 될 겁니다. 전세금은 어떤 경우에도 우선 돌려받을 수 있으니 이 숫자를 1,100조에서 빼야 합니다.”
한마디로 가계부채가 아직 1,000조 원이 안된다는 주장이고 여기에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주택 수요나 가계부채에 대한 이런 논리는 미진한 구석이 적지 않아 보인다. 사실 주택시장은 금리가 올라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가계들의 금융 부담이 크게 증가하거나, 주택가격이 대폭 하락하거나, 아니면 두 상황이 동시에 발생하면 큰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려 “주택시장 붕괴는 없다”는 낙관론을 더 보충해보자.
“돈을 빌려 주택을 산 사람들을 보세요. 대부분 있는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통계를 들여다보면 가계부채의 70%가 빚을 갚을 능력이 양호한 소득 상위 4-5분위에 몰려 있어요. 또 전체적으로 금융자산이 가계부채보다 2배 이상 많고, 부동산 등 실물까지 합한 총자산은 총부채의 5배 이상이어서 담보력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가계부채 때문에 주택가격이 어느 시점에 폭락한다는 건 너무 나간 이야기라는 말이다. 주택시장 자체도 변했다는 게 금융당국자의 견해다.
“2007년에 비해 집값이 75% 안팎으로 빠진 것 맞습니다. 근데 이것이 미국처럼 40%까지 폭락할 것이냐는 건 의문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7년이 지났습니다. 시장은 지난 7년 동안 엄청나게 급속도로 수요변화에 적응해 왔습니다. 주택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변했고, 공급자인 업체들도 소형 평형 위주로 분양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한국은행 고위관계자의 말은 이랬다.
“집값이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는 게 최선의 상태였는데, 지금은 조금 오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계속 오르지는 않겠지요. 근데 반대로 주택가격이 폭락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밟게 되는 겁니다. 디플레이션 상태에 들어간다고 봐야지요. 그 상황은 정책 당국이 어떤 경우에도 막지 않겠어요? 사실 중산층 대부분이 집을 사거나 전세를 구하느라, 은행 빚을 지고 있어요. 그런데 집값이 폭락하면 이들이 견딜 수 없는 상황이 옵니다. 이런 것을 좌시할 정부가 있을까요?”
금융당국자와는 포인트가 좀 다르지만 그런 상황을 당국이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2018년 위기론을 반박하는 경제부총리, 금융당국 및 한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잇달아 들어 봤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는 견해는 중산층이 무너지고, 잃어버린 20년으로 빠져드는데 정부가 집값 폭락 상황을 그냥 내버려 두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경제위기가 우리나라만 단독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최근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된 점을 볼 때 위기가 닥쳐온다면 글로벌 차원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전이되는 형태일 공산이 적지 않다. 가령 최근 우리의 주식시장을 휘청이게 했던 중국 주식시장의 폭락처럼 국내의 잠복한 위기 상황이 글로벌 차원의 외부 충격과 결합돼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정책당국의 의지가 얼마나 시장에 먹힐 수 있을까? 집값 하락을 떠받친다고 원하는 대로 떠받쳐질까? 이미 추풍낙엽처럼 많은 가정이 쓰러진 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은 뒤에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사후 대책이나 내놓지 않을까? 솔직히 그게 걱정스럽다.
생각만 해도 으스스한 ‘2018년 위기론’을 믿고 싶지는 않지만, 은행 빚을 잔뜩 안고 있는 수도권 신도시의 내 아파트도 처분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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