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대체로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잘 안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문제란 점은 다 안다. 하지만 어떤 부문에 충격이 오고, 무엇을 준비할지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루하루 터지는 사건들이 더 충격적인 탓일까, 미래를 대비하는데 서툰 탓일까.
우리는 좋든 싫든 저출산·고령화로 급변해가는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 이민 가지 않는 한 겪으며 적응해가는 수밖에 없다. 그래선지 언론들부터 걱정은 참 많이 한다. 뉴스검색포털 카인즈에서 ‘저출산·고령화’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1990년대 10년간 192건이던 기사수가 2000년 이후 무려 2만2819건(2015년 7월 8일 기준)으로 늘었다. 이 중 3분의 2는 2010년 이후 5년간 쏟아진 기사다. 하지만 염려만 넘쳐났지 구체적인 준비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사회 곳곳에서 기득권이란 괴물과 밥그릇이란 현실이 가로막고 있는 탓이다.
저출산은 2000년대의 세계적인 숙제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설렘도 잠시, 2000년 1.47명이던 합계 출산율이 불과 5년 뒤 1.08명까지 떨어졌다. 이른바 2005년 ‘1.08명 쇼크’다. 그 뒤에도 출산율은 1.1~1.3명을 맴도는 세계 최저수준이다. 곳곳에서 ‘애들이 줄었어요’란 비명소리가 들린다. 산부인과, 산후조리원, 어린이집, 유치원, 유아용품, 입시학원 등이 차례로 경사면에서 미끄러져 내리고 있다. 2001년 11만 원에 육박했던 메가스터디 주가가 3만 원대로 주저앉은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저출산 충격은 그 윗선으로 번지고 있다. 먼저 인구구조의 주요 고려대상인 만18세 인구 변화를 보자. 만18세는 고3 나이인 동시에 군 병력자원의 기준연령이다. 만18세 인구는 1980년 92.3만 명에 달했지만 올해는 65.2만 명에 불과하다. ‘월드컵둥이’ 2002년생이 만 18세가 되는 2020년이면 50만 명에 간신히 턱걸이한다. 2021년부터 40만 명대, 2050년 이후엔 30만 명대로 쪼그라든다.
대학들부터 난리다. 대입 정원은 현재 54만 명이다. 진학률이 70% 선을 유지해도 5년 뒤 정원을 35만 명밖에 못 채운다. 대대적인 정원 감축, 통폐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부실 대학의 교수 교직원들은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초중고도 마찬가지다. 학생 수가 줄면서 교육부가 내년 교원 정원을 2,300명 감축하겠다고 하자 교원단체들은 거꾸로 매년 3,000명을 증원해야 한다고 반발한다.
더 큰 문제는 군이다. 징집대상인 만18세 남자는 1980년 47.9만 명에서 올해 32.3만 명으로 줄었다. 2020년엔 25.9만 명으로 뚝 떨어진다. 관심병사까지 전원 입대시켜도 21개월(육군 기준) 복무 기간이면 45만 명을 유지하기도 벅차다. 현재 63만 명 병력에서 약 20만 명을 줄여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2022년까지 50만 명으로 감축한다던 계획을 2030년으로 미뤘다. 장성 감축계획은 진즉에 연기했다. 어쩌자는 것인지.
반면 고령화 속도는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2026년 초고령사회가 되면 5,000만 인구 중 1,000만 명(20%)이 지하철이 공짜인 소위 ‘지공’의 나이(만65세 이상)가 된다. 이대로 혜택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령자 기준을 만70세로 올리는 것을 화두로 던진 대한노인회도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인구는 늘어난다는 전제 아래 설계된 20세기의 교육, 연금, 군, 행정, 부동산 등 모든 제도와 사회구조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버티고 미루고 싸운다고 풀릴 문제가 결코 아니다. 시장은 인구구조 변화에 자연스레 적응해 간다. 적응하지 않으면 도태되니까. 반면 콘크리트 같은 공공부문은 어쩔 건가. 강제 수술이 아니고선 달라질 리 만무하다.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는데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까.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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