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220만 명이 일하는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 월마트
“이봐 샘, 인구 5만 명 이하 소도시에서는 할인점이 오래 버틸 수 없다고 내가 몇 번 말해야 그만둘 텐가?”
미국 최초의 할인점 벤 프랭클린(Ben Franklin)의 프랜차이즈 매장 책임자인 샘 월튼의 제안은 이번에도 경영진에게 거절당했습니다. 교외에 사는 사람들이 유통비 때문에 물건을 비싸게 구매한다는 사실을 알고 샘이 제안한 것인데, 5만 명 이하의 소도시에는 매출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겁니다.
그러나 샘은 생각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44세가 되던 1962년, 회사를 그만두고 아칸소 주의 조그만 도시인 로저스에 자기만의 첫 상점을 열었습니다. 상점 간판의 이름은 월마트(Wal-Mart). 그곳은, 지금 전 세계에 9,000곳이 넘는 매장에서 220만 명이 일하는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가 된 월마트의 첫 점포였습니다.
월마트의 성공비결은 간단합니다. 넉넉한 주차공간과 사람들이 다니기 편리한 위치에 자리 잡고, 훌륭한 고객서비스에 무엇보다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제공하자 소비자가 몰려들었고, 판매량이 늘어나니까 점점 더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Every Day Low Price 매일 저렴한 가격"이라는 월마트의 모토에서 알 수 있듯 월마트는 차별적 우위로 ‘초저가 전략’을 썼습니다.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어 진입장벽이 낮은 초저가전략은 성공하기도 어려운데, ‘원가 절감(Low Price)'과 ‘판매량 극대화(High Volume)를 통한 월마트만의 저가격 노하우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샘 월튼의 비행기 운전’이었습니다.
샘 월튼은 20대부터 당시 대중화되었던 비행기 운전을 취미로 삼았다고 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인간 세상은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한 지도였습니다. 그는 월마트의 입지를 정할 때 비행기를 타고 철길과 지방도로가 만나는 곳 중에서 큰 도시에서 20~30분이면 올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비용이 가장 저렴한 유통수단인 철도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물건을 구매할 때도 열차 한량을 기준으로 대량구매를 해서 가격 협상력으로 높여 구매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의 할인점들이 월마트를 따라잡을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74세의 나이에 암으로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부지런히 직접 발로 뛰면서 상품 공급자를 만나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가격에 팔라고 설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샘 월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월마트 창업주 샘 월튼, 출처 : 위키피디아
또한, 철저한 비용 절감 역시 지금의 월마트로 성공한 또 다른 축인데요, 월마트의 중역들은 출장을 갈 때도 이코노미석을 탄다고 합니다. 한국 월마트가 있던 본사도 창고 같은 건물에 기다란 형광등 불빛에 1970년대에나 쓰던 철제 책상과 가구들이 놓여 있는 사무실을 썼고, 그 한구석을 칸막이로 막아놓고는 사장실로 쓰더라는 후문은 유통업계에는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단 한 푼이라도 싸게 소비자에게 공급하기 위해 노력한 샘 월튼, 그는 박리다매(薄利多賣) 초저가 전략을 성공한 산 증인입니다.
한국 소비자를 철처하게 분석한 고객 중심의 경영, 이마트
이렇게 대단한 월마트가 유독 1위를 하지 못한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한국입니다. 월마트는 1998년 7월 한국시장에 진출한 지 8년 만에 토종 브랜드 이마트에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당시 월마트는 한국시장에서 이마트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4%밖에 안 되었고요, 철수 직전 해에는 99억 원의 적자를 냈다고 하는데요, 결국 월마트는 이마트에 인수되며 2006년 한국시장에서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세계 최대의 할인점 월마트의 한국진출 실패에 대해 수많은 이유가 있을 텐데요, 반대로 월마트를 인수한 이마트의 성공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마트가 국내에서 세계적인 유통 공룡 월마트를 물리친 비결은 바로 한국인 소비자를 철저하게 분석한 고객중심의 경영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외국은 ‘물건값이 싸다’고 하면 조금은 멀고 불편해도 싸기 때문에 기꺼이 용납합니다. 그래서 월마트의 ‘싼 가격’은 해외에서 제대로 먹혔습니다. 하지만 까다롭고 디테일한 한국 소비자들에게 싼 가격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다른 장점들이 더 버무려져야 고객의 칭찬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창고형 마트라 하더라도 디자인이나 서비스, 편의시설 등이 백화점 수준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골고루 갖춰져 있어야 ‘그 점포 괜찮더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마트의 정용진 부회장(당시 부사장)은 이러한 한국 소비자의 특성을 제대로 간파했습니다. 그는 이마트를 우리나라 사람의 체형에 맞는 매장 형태와 집기를 갖춤으로써, 매장이 쇼핑하기 편하고, 친근감이 가도록 설계함과 동시에 판매장소를 과감하게 휴게 공간화했습니다. 또한, 수유실의 운영 등 편의시설을 대폭 강화함으로써 이마트를 ‘한국인이 선호할만한 매장’으로 차별화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매장의 후방을 창고가 아닌 판매를 위한 대기장소 개념으로 설계하여 협력업체에서 납품된 상품을 판매 로스(Loss)나 결품 없이 신속히 진열할 수 있도록 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협력업체도 배려했습니다.
2007년 11월 이마트의 즉석밥 자체 개발 상품인 '왕후의 밥', 출처 : 위키피디아
정용진 부회장, 월마트를 넘어서 이케아와 정면승부!
정용진 부회장은 한국 소비자를 어떻게 제대로 파악한 걸까요? 그의 경영철학은 다름 아닌 ‘고객제일’입니다. 그가 1990년대 후반 이마트를 시작할 때 일본의 대형마트 이토요카도를 종일 걸으며 상품진열, 재고관리, 소비 행동 등을 철저하게 연구했다는 이야기는 업계에 잘 알려졌습니다. 정 부회장은 이마트가 변신이 필요할 때마다 전 세계를 돌며 자국에서 내로라하는 할인점을 샅샅이 훑었는데요, 그때마다 그는 이마트에 없는 장점을 그대로 빌린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장점으로 손꼽히는 이유를 찾아 이마트의 현지화에도 어울리도록 ‘촉(觸)’을 벼렸습니다.
이마트의 이번 상대는 세계적인 가구 공룡 이케아(IKEA). 최근 이마트는 일산 킨텍스점에 생활용품 전문매장 '더 라이프'를 열고 이케아와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케아가 단순한 가구전문업체가 아니라 가구부터 커튼과 벽지, 침구, 카펫, 부엌용품, 인테리어 소품을 이용해 집 안을 보기 좋게 꾸미는 모든 것을 취급하는 홈퍼니싱 기업임을 알기에, 이마트는 '더 라이프'에 대형 푸드코트인 '피코크 키친'과 대형가전 매장 '일렉트로 마트' 등 전문점을 모두 모아 ‘이마트타운’을 만들어 다양하고 수준 높은 가치를 제공하는 새로운 원스톱 쇼핑공간을 제공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팔려고 하지 마라. 그러면 팔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비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한 말인데요, 기업의 진심이 담긴 작은 배려는 싼 가격보다 힘이 셉니다. 이것을 아는 기업이 이번 싸움에서 승리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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