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미국의 제조업 공장들이 하나둘씩 해외로 이전하기 시작하면서 경제 성장의 핵심 엔진이 사라져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도넛 모양으로 변하는 것을 ‘도넛경제’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역시 경제 성장의 원동력인 제조업에서 낮은 임금과 보다 나은 여건을 쫓아 활발한 해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이와 같은 제조업 공동화 현상으로 인해 우리 경제의 도넛화에 대한 우려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뻥 뚫린 구멍을 메꿀 수 있는 건, 외국인 투자의 활성화죠. 하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습니다. 특히, 올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배출권거래제는 외국인 투자 활성화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요. 이는 기업들에 과도한 부담을 지우며 투자환경 조성에 악영향을 미쳐 외국인 투자 기업을 내쫓고 있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배출권거래제 시행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투자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사례1. 간접배출 규제로 인한 글로벌 R&D 프로젝트 유치 차질
A사는 최근 유럽 본사로부터 9천억 원대 규모의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 유치를 추진했습니다. 신제품 개발을 위해서는 신규 시험장비 도입에 따른 전력사용량 급증이 불가피한데요. 유럽의 경우 사업장의 전기 사용을 온실가스 배출과 엮어서 규제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간접배출이라는 명목으로 전기 사용량이 많은 경우 배출권을 추가 구매해야 했고, 이런 간접배출 규제로 인해 해당 국내 법인은 R&D 프로젝트 유치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배출권거래제가 글로벌 기업의 한국법인 R&D 프로젝트 유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는데요. 이러한 어려움은 해당 기업과 협력사의 성장 기회까지 빼앗은 결과가 되었습니다. 다른 지역과 비슷한 기술 수준이라면 비용이 소요되는 한국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례2. 배출권 비용 부담으로 인한 신규 설비투자 보류
최근 대규모 생산라인 신·증설을 추진해오던 B사는 2천억 원 규모의 설비투자 계획을 보류했고, 이로 인해 150명의 고용계획도 철회하였습니다. 최근 완공된 공장들이 생산량 증가에 비례해 배출권 비용 부담도 함께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등 운영 리스크가 고조되자 더 이상의 추가 신·증설은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인데요. 만성적자에 허덕이다 최근 원자재 가격 하락 추세에 힘입어 경영실적이 다소 개선된 C사 역시 배출권 비용의 부담 때문에 20억 원 규모의 신규설비 투자계획을 보류했습니다.
일부 기업은 배출권 비용 부담으로 인해 수익성을 맞추기가 어려워 신규 설비투자 계획을 보류하거나 축소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배출권 비용 등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의 신규 설비투자 의지가 꺾이며 더이상 공격적인 투자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사례3. 원가 절감을 위한 생산량 감축
생산 공정 효율화를 통해 품질 향상과 원가 절감을 꾸준히 진행해온 D사는 연간 생산능력을 약 50% 향상시키고 글로벌 본사에 증산을 요청했지만, 배출권거래제에 따른 원가상승이 불가피해 원가경쟁 우위에 있는 다른 나라 공장에 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습니다. 또, 정부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연간 27일간 설비의 가동을 중단해야 했던 E사는 한국 생산물량 중 일부를 중국 공장으로 이관하기도 했습니다.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할 수단을 찾기 힘든 기업들은 증산하지 못하고 당장 생산량을 감축해야만 하는 실정인데요. 배출권거래제에 따른 원가경쟁에서 뒤처지며 대규모의 생산물량을 포기하거나 매출감소를 지켜봐야만 하는 등 기업들은 또 다른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투자 활성화 위한 규제 개선이 시급
사례에서 보듯, 정부가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배출권거래제로 인해 투자 환경 조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현재 작업 중에 있는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이전과 동일하게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제시된다면 외국자본 이탈, 일자리 감소 등이 불가피해 정부의 신중한 접근과 현명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도넛경제’와 대비되는 개념은 ‘피자경제’입니다. 가운데가 볼록하게 부풀어 오르면서 주변까지 고르게 익는 오븐 속 피자처럼 제조업의 국내 투자 여건을 잘 조성해 내수 위축을 막고 성장 추진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잘 익은 피자처럼 우리 경제를 통통하게 살찌울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은 외국인 투자의 활성화입니다. 집 나간 외국인 투자 자본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투자 환경 개선이 시급한데요. 정부와 기업이 함께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 본 포스팅은 전경련 산업정책팀 한형빈 조사역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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