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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스퀘어/요즘뜨는이야기

'비긴 어게인' 음악의 진정성을 노래하다

 

비긴 어게인, 존카니, 원스, 키이라

 

 

독일 중서부 지방에 로렐라이(Lorelei)라고 하는 언덕이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로렐라이는 언덕 위에 있는 요정의 노래에 푹 빠진 뱃사공이 그만 암초에 걸리고 말아 침몰했다는 전설로 유명합니다. 원래는 시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민요로 만들어져 우리나라에까지 번안곡이 불리고 있죠.


비긴 어게인을 보던 제가 딱 저 뱃사공의 입장이었습니다. 사실 북미 박스 오피스 소식에서 소개할 때 말했던 것처럼 이 영화는 존 카니의 전작인 원스와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음악을 매개체로 상처를 간직한 두 남녀가 서로 교감하고 치유한다는 것이 비긴 어게인과 원스의 공통점이지요. 이런 상황이라면 감독은 하나의 딜레마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한번 성공했던 영화를 그대로 이어받자니 완성도는 기할 수 있을지언정 자기복제에 불과하다는 비판에 발목을 잡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존 카니도 이 사실을 분명 인지하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타입의 영화를 만드는 대신, 무대를 옮기고 인물에 변화를 주면서 전작과 다른 톤을 부여한 것이 비긴 어게인입니다. 

 
원스의 성공으로 존 카니는 단숨에 아일랜드를 벗어나 할리우드로 진출했습니다. 덕분에 이번에는 배경지가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 미국의 뉴욕으로 바뀌었습니다. 캐릭터 구성도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로 꼽히는 뉴욕에 걸맞게 가져갔습니다. 한 명은 막 록스타로 군림한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은 여자고, 다른 한 명은 잘 나가는 레코드 레이블의 대표였다가 졸지에 해고된 남자입니다. 이 둘이 만나 음악으로 자신의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비긴 어게인의 기본 내용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뻔해도 이리 뻔할 수 없지만 존 카니는 용하게도 이것을 극복했습니다. 할리우드로 건너간 데다가 마크 러팔로와 키이라 나이틀리를 주연으로 기용했다는 것도 자칫 화려하기만 한 영화로 흘러가게 하는 함정일 수 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비긴 어게인의 시작이자 끝이며 전부는 음악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비긴 어게인, 존카니, 원스, 키이라

 

블로그에서 간간이 "같지만 똑같지는 않은 영화야말로 진짜 좋은 영화"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이제 어디선가 늘 봤던 것 같고 익숙한 것이 천지인 세상에서 약간의 변화로 돌파구를 찾는다는 건 그만큼 영리하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그걸 위한 궁리와 노력은 했다는 거지요. 비긴 어게인의 존 카니가 그런 감독입니다. '원스의 우려먹기'라는 약간의 선입견은 도입부에서 이미 상당히 누그러집니다. 저는 두 사람이 만난 바 장면에서 남자의 시점에서 캐릭터를 설정하고, 다시 어느 지점에서 여자로 시점을 옮겨 사연을 풀어놓는 구성방식이 재미있더군요. 이건 방금 말했다시피 뻔한 이야기를 조금은 다르게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궁금증을 갖게 하면서 캐릭터와 이야기를 따라가게 하니 자연스레 호기심과 몰입을 더할 수 있습니다. 


제가 결정적으로 비긴 어게인에 빠진 건 두 사람이 야외 녹음을 한다는 것에서였습니다. 처음엔 터무니없는 헛소리거나 농담일 줄 알았으나 가만히 들으니 아주 신선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진짜 이런 컨셉으로 앨범이 하나 나오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까지 생겼습니다. 소음과 기계음을 인위적으로 응용해 가미하는 인더스트리얼 장르도 있으니 <비긴 어게인>처럼 일상적인 사운드를 그대로 녹음하는 음악이라고 해서 안 될 건 없을 것 같지 않나요? 하지만 정작 지금 막 듣기 시작한 사운드트랙도 영화에서처럼 그런 사운드를 담고 있는 것 같진 않아서 아쉽네요.
 
존 카니가 이걸 실제로 염두에 두고 그랬던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음악을 영화에서나마 시도한 덕분에 비긴 어게인은 한층 풍성해졌습니다. 꽉 막힌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로 나가면서 자연스레 배경이 수시로 바뀌고, 서로 다른 공간에서 펼치는 연주는 마치 몇 편의 단편영화가 하나의 장편영화를 이루는 것과 같은 작용을 했습니다. 존 카니의 시도로 인해 이 영화는 우리가 으레 동경하는 뉴욕의 이미지처럼 화려한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유와 개성이 넘치는 영화로 보여졌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비긴 어게인은 음악만큼이나 뉴욕이라는 도시의 공간이 가진 매력이 상당한 공을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마크 러팔로와 키이라 나이틀리가 소품으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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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을 보면서 존 카니는 제게 있어 리차드 커티스와 같은 사람처럼 다가왔습니다. 러브 액츄얼리에 이어 어바웃 타임을 보고 나서도 저는 리차드 커티스가 그 스스로 매우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리도 행복으로 충만한 영화를 관객에게 선사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했기 때문이죠. 존 카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의 영화를 보면 음악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가득한지 절로 알 수 있는 사람이 비단 저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일례로 그레타가 출장에서 돌아온 데이브의 외도를 알아차리는 순간, 마지막 무대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던 데이브를 보면서 눈물을 떨구고 자리를 떠나던 그레타를 섬세한 감각으로 연출했던 건 작은 감탄사를 토하게 했습니다.

 

냉정하게 따지고 들자면 비긴 어게인에는 허점이 적지 않습니다. 원스는 현실 속의 피폐와 고단에 빠진, 다시 말해서 바로 우리와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소박하게 들려주면서 음악의 진가를 전달합니다. 반면 비긴 어게인은 할리우드로 건너가서 찍은 영화답게 화려하고도 낙천주의 일변도로 점철돼 다분히 비현실적이며 공감하기 힘든 탓에 '우리'가 아닌 '그들'의 영화로 완성됐습니다. 댄과 그레타는 각기 절망에 빠질 법한 상황에 처한 캐릭터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고비와 난관 없이 음악을 척척 완성하고 레코드 레이블의 귀까지 사로잡습니다. 그래서 비긴 어게인을 두고 '판타지'라고 일축할 수 있을 텐데도 이렇게까지 관객을 사로잡은 요인은 바로 존 카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극 중에서 댄과 음반계약을 두고 나누던 대화 중 그레타는 '진정성(authenticity)'을 언급했습니다. 이 말에 대해 댄은 "먼저 보여줄 수 있어야 진정성도 드러낼 수 있다"는 의미의 말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것은 비긴 어게인을 작업하면서 존 카니가 가졌을 마음가짐을 대변하는 것만 같습니다. 뻔하고 전형적인 할리우드 드라마일 수도 있으나 비긴 어게인에는 음악과 영화를 사랑하는 그의 애정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존 카니의 진정성이야말로 이 영화를 빛내고 관객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게 한 최고의 멜로디였습니다. 저로서는 십중팔구 질색할 성격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비긴 어게인을 보면서 그의 연주에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테면 이랬습니다. "아, 뭐야!? 이렇게 대책 없이 낙천적인 영화라니 진짜 실망스럽...... 어!?, 방금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지? 몰라, 그게 뭐가 중요해! 재밌는데!!!"

 

★★★★

 

덧 1) 애덤 르바인도 연기를 꽤 하더군요. 마지막 무대에서의 노래는 그의 진가를 맘껏 발휘하는 것이어서 더 좋았습니다.

 

덧 2) 존 카니의 세 번째 영화가 벌써부터 궁금하네요. 음악영화로 성공한 커리어를 과연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덧 3) 이어폰 분배기였나요? 저는 그걸로 각각 음악을 듣는 게 싫습니다. 같은 집에 있지만 서로 다른 방에 들어가 있는 것만 같다고 할까요? 이건 비긴 어게인의 결말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레타는 음악을 단돈 1불로 공개하면서 분배기를 댄에게 돌려주고 떠났습니다. 데이브의 무대를 보며 그에게서 완전히 떠나기로 했던 것처럼... 전 이 결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 결정하는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라니, 멋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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