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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스퀘어/요즘뜨는이야기

[한국의 컬덕트 ④] 아이폰보다 앞선 혁신의 결정체 LG 프라다폰

컬덕트 (Culducts : Culture + Product) : 한국은 IT 강국이지만 정작 우리가 기억하는 국산 제품은 많지 않습니다. 재조명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죠. 그래서 한국 제품들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의미에서 ‘한국의 컬덕트’를 연재합니다. 컬덕트는 시대를 바꿀 정도로 영향력을 준 제품은 물론, 비록 판매에서 실패했더라도 일부 마니아에게 열광적 지지를 얻었던 제품도 포함됩니다.

 

때는 2007년. 휴대폰 디자인에 있어 많은 업체들은 한계에 부딪혔고,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 냈습니다. 우선 삼성전자는 2006년 명품 패션업체인 베르사체와 함께 명품 콜라보레이션 휴대폰을 만들었습니다. 금빛으로 빛나는 화려한 디자인과 전면에 붙은 거울이 인상적인 폴더폰이었죠. 휴대폰에 명품 패션 브랜드의 유전자가 들어간 화려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죠. 노키아 역시 발리라는 명품 휴대폰을 디자인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명품 브랜드만 입힌 평범한 휴대폰에 불과했습니다. 명품과의 콜라보레이션은 일시적 유행처럼 느껴지던 시기였습니다.

 

프라다와 LG의 만남

 

 

그런데 한국의 LG에서 기획된 제품은 좀 달랐습니다. 프라다(Prada)라는 명품 업체와 콜라보레이션을 했지만 기존의 단순한 디자인 협업이 아니라 프라다에 하드웨어 디자인은 물론 소프트웨어 디자인까지 맡기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 휴대폰이었습니다. 프라다폰을 처음 기획한 LG전자 마창민 상무는 밀라노 프라다 본사에 직접 방문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습니다. 명품 브랜드에 걸맞는 디자인과 LG의 기술력을 조화시키기 위한 최고의 조건이었죠. 그 당시 프라다의 자코모 오비지 부사장은 "지금까지 프라다를 찾아온 휴대폰 회사가 여러 곳 있었지만, 대부분 프라다의 브랜드만 빌려 달라고 해서 돌려보냈다”며, “반면 LG는 처음부터 새로운 휴대폰을 프라다와 공동으로 개발하고 싶다고 제안해 받아들였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프라다가 내세운 조건은 독특했습니다. 바로 '터치스크린'이었죠. 지금은 스마트폰이 일반화되어 터치스크린 없는 휴대폰은 상상이 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터치스크린을 적용한 휴대폰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최초의 풀터치스크린 휴대폰이 탄생하다


프라다라는 브랜드는 단순함과 심플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브랜드였습니다. 그래서 휴대폰의 버튼을 최소화하기 위해 터치스크린을 제안했죠. LG는 어려운 기술적 제약이 있었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최초의 풀터치 스크린을 기획하게 됩니다. 아이콘도 독특했습니다. 일반 휴대폰의 아이콘이 형형색색에 통일성도 없었던 것에 비해 프라다가 직접 디자인한 모노톤의 깔끔한 아이콘이 제안됩니다.

 

  


지금에 와서는 이런 특징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당시로서는 혁신이었습니다. 키패드도 존재하지 않는 미니멀한 디자인이었고, UX디자인도 그 동안의 어떤 휴대폰과 비교해도 지지않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블랙 앤 화이트 디자인에 대한 일관적인 콘셉트는 제품 디자인과 UX디자인, 심지어 패키지 디자인까지 이어졌습니다. 전체적인 디자인 총괄은 프라다의 수석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가 맡았습니다. 기존에 없었던 진정한 의미의 명품 휴대폰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놀라운 결과물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2007년 2월 출시한 프라다폰은 90만 원에 가까운 가격임에도 전 세계 150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빅히트했고, LG가 세계적 휴대폰 제조사로 발돋움하는 일등공신이 됩니다. LG전자는 프라다폰의 인기에 힘입어 모토로라, 소니에릭슨을 제치고 세계 휴대폰 업계 3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프라다폰 때문이 아니라, 프라다폰으로 얻은 LG전자의 브랜드 상승효과가 더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LG는 저렴한 폰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터치스크린 기술을 가진 고급스러운 휴대폰 기업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아이폰보다 빨랐던 혁신


프라다폰이 탄생한 2007년 6월, 애플은 아이폰을 출시합니다. 미니멀한 디자인과 풀터치 스크린, 그리고, 아름다운 아이콘 디자인 등은 단번에 휴대폰의 역사를 바꾸게 됩니다. 그러나 디자인만 본다면 아이폰보다 프라다폰이 먼저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물론 아이폰은 일반 휴대폰이 아니라 스마트폰이었고, 놀라운 소프트웨어 노하우가 있었기에 프라다폰과는 차이가 컸습니다. 우리나라 업체들이 좀 더 빨리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에 눈 떴다면 아이폰보다 먼저 새로운 혁신을 선보였을 가능성도 있었을 겁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쨌던 그 당시 미국의 유명한 테크 전문지인 엔가젯은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애플 아이폰과 LG 프라다폰은 마치 헤어진 쌍둥이처럼 닮았다." - Engadget 2007
 

프라다 2도 놀라웠다

 


프라다폰 2도 지금 생각하면 대단한 혁신이었습니다. 2009년 출시한 프라다 2는 슬라이드를 열면 쿼티 키보드가 나타나는 디자인으로 179만 원이라는 엄청난 가격으로 출시되어 큰 화제가 됐습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프라다링크'라는 스마트 시계였습니다. 프라다 2와 블루투스로 연결하는 프라다링크는 메시지 확인, 통화 내역 저장, 알람 기능 등을 제공하는 멋진 디자인의 손목시계였습니다. 심박센서를 제외한다면 현재 출시되고 있는 스마트시계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었고, 디자인은 오히려 훨씬 나았습니다. 특히 생활방수 지원과 배터리도 일주일 정도 가는 등, 오히려 지금의 스마트워치보다 편리한 점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비싼 가격과 스마트폰 시대에 일반 피처폰이라는 이유로 큰 화제를 낳지는 못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후 프라다폰은 스마트폰인 프라다 3.0을 마지막으로 후속작 소식이 끊겼습니다.

 

하드웨어의 혁신과 함께 필요한 서비스 혁신


만약 프라다폰이 아이폰처럼 소프트웨어적인 완벽함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봅니다. 아마 지금의 아이폰과 비슷한 수준의 높은 브랜드 가치를 가지게 됐을 겁니다. 우리나라 제품들은 하드웨어적인 혁신은 빠른 편이지만 아쉽게도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늦게 깨달은 것 같습니다.

 

 

제 예상으로는 네 번째 프라다폰은 아마 나오기 힘들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 시대, 이제 대중은 휴대폰을 고를 때 디자인보다는 기능과 서비스를 더 중요시 합니다. 프라다 3.0이 비교적 평범한 가격이었으나 실패를 맛본 것도 그 때문인 듯합니다. 그러나 전 세계 최초의 상용화된 풀터치 스크린 휴대폰이었던 프라다폰은 한국이 만든 세계적 컬덕트제품으로 IT 역사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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