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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파리바게뜨, 미스터피자, 그리고 내수 살리기

파리바게뜨, 미스터피자, 그리고 내수 살리기

-한국일보 박진용 논설위원-

 

요즘 유통업계의 최대 화제는 파리바게뜨가 아닐까 싶습니다. SPC그룹이 최근 바게트의 본고장인 파리 중심가에 자사의 체인점 파리바게뜨를 성공적으로 오픈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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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바게뜨 프랑스 파리 1호 매장 샤틀레점 (출처:SPC 그룹 공식 홈페이지)

 

바게트(Baguette)는 와인, 치즈와 더불어 프랑스 식문화를 대표합니다. 길고 딱딱한 모양새와는 달리 바삭바삭하면서도 담백하고 감칠맛이 납니다. 1920년대부터 서민 대중에도 보급되면서 길쭉한 생김새 때문에 프랑스어로 지팡이라는 뜻의 바게트로 불렸다고 합니다. 19세기 오스트리아 빈에서 스팀 오븐의 등장과 함께 개발돼 파리로 전해졌다는 게 정설입니다.

 

2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바게트가 국내에 소개된 건 1970년대 초 일본에 유학한 제과기술자들이었지만, 대중에 알려진 건 1988년입니다. SPC그룹(당시 샤니)이 그 해 서울 광화문에 정통 프랑스풍 베이커리를 표방하며 1호점을 냈습니다. 설탕과 버터, 우유 등을 많이 넣어 달달한 미국 스타일에서 밀가루와 효모, 소금 등으로만 만들었습니다. 담백한 식감을 자랑하는 바게트는 한국인의 입맛을 금세 사로잡았습니다. 이로부터 무려 26년, 그리고 2004년 중국 상하이를 시작으로 미국 뉴욕, 싱가포르 등에 진출한 것을 기준으로 하면 10년의 준비 끝에 파리 입성에 성공했다고 하니 여간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45년 서울 을지로의 상미당에서 출발해 70여 년간 쌓아온 제빵 기술을 토대로 매년 500억 원씩 연구개발(R&D)에 쏟아 부어온 덕분이라는 게 SPC 측 설명입니다. 

 

그런데 파리바게뜨의 파리 진출보다 필자의 관심을 더 끄는 대목은 이 브랜드가 세계 최대 소비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에서 보여주는 활약상입니다. 바링허우(80後ㆍ1980년대 이후 출생한 신세대) 사이에서 맛있는 프리미엄 빵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상하이와 베이징뿐 아니라 텐진, 항저우, 난징 등의 주요 상권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비빔밥이나 불고기, 아니면 요즘 뜨는 치맥(치킨+맥주) 정도를 한국 음식으로 알고 있다가 파리바게뜨도 프랑스가 아닌 한국 브랜드임을 알고는 놀라는 중국인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커피는 스타벅스, 베이커리는 파리바게뜨’로 인식될 정도랍니다. 2012년 매장 100개를 돌파한 데 이어 2015년 동북 3성까지 진출해 500개로 늘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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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피자 중국 상하이 1호점 오픈 현장 (출처:한국일보)

 

바게트뿐이 아닙니다. 서양의 대표 음식 가운데 하나인 피자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피자 랭킹 1위인 미스터피자도 온갖 산해진미가 넘치는 중국 대륙에서 기름기를 쫙 뺀 한국식 피자로 선전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1990년 서울 신촌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낸 뒤 18년 만인 2008년 피자헛, 도미노피자 등 외국계 체인점을 따돌리고 정상에 등극했습니다. 수타(手打) 반죽(도우)에 손으로 직접 만든 토핑을 얹어 석쇠로만 구워내 담백한 맛으로 승부를 건 덕분입니다. 2000년 베이징에도 진출해 10여 년간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지난해부터 상하이 난징 등으로 매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5월에는 “사장이 되고 싶은 젊은이는 누구든지 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 60여 명을 신입 직원으로 뽑았습니다. 회사 측은 프랜차이즈 시스템과 운영 노하우를 교육해 중국을 비롯한 해외 매장에 매니저로 보낸 뒤 현지에서 가맹점을 내고 싶다면 자금 대출 등 지원을 해줄 방침입니다. 현재 40개 매장을 열었고, 올해 안에 100개로 늘릴 계획이라고 합니다.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높은 요즘 바게트나 피자 이야기는 너무 소소해서 한가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습니다. 사실 최근 경제 주체들이 느끼는 위기감이 예사롭지 않은 것 같습니다. 26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 행진에도 불구하고 저성장과 저물가, 내수부진의 구조적 고착화 가능성을 들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전철을 되풀이할 우려가 크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는 게 단적인 사례입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며 재정 금융 등의 모든 수단을 총동원, 내수 살리기에 방점을 둔 새 경제정책방향을 들고 나온 것도 이 같은 맥락입니다. 또 삼성전자와 현대ㆍ기아차, LG화학 등 간판 대기업들마저 원화강세에 따른 환율쇼크로 이익이 급락하고, 중국 업체들의 맹렬한 추격으로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형국이어서 불안감은 커지고 있습니다. 한편에선 “우리 경제가 제조업만으로 버틸 수 있겠느냐”며 의료, 교육, 관광, 금융 등 고급 서비스업 육성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이런 주장들의 공통분모를 짚어보면 우리 경제의 최대 과제가 ‘내수 살리기’와 ‘구조개혁’이라는 점으로 요약됩니다. 이를 통해 구조적 저성장을 극복해 보자는 게 목표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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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전경련 CEO 하계포럼에 참석한 최경환 경제부총리

 

그렇다면 먼저 내수 문제를 들여다봅시다. 최경환 팀은 우선 경기부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국가채무 증가를 감수하고라도 재정지출을 늘리고, 한국은행의 협조를 얻어 금리도 내릴 기세입니다. 또 부동산 경기를 띄우기 위해 이미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도 완화했습니다. 기업 돈이 가계로 흘러가도록 배당과 임금인상을 유도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해 가계 소득을 높여 소비를 늘리는 정책도 내놓았습니다. 여러 논란과 반론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렇게 하면 단기적으로는 경기를 살리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당장 주식시장이 오르고 부동산 시장이 꿈틀대는 게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정책들이 기업 투자 및 생산 증가로 연결돼 일자리가 늘어나고 다시 가계 소득을 끌어올리는 선순환의 고리 형성으로 이어져야, 지속 가능해진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오히려 적지 않은 후유증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경기 회복에 중점을 둔 단기적 내수 부양책과 더불어 중장기적 관점에서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구조개혁이 강력히 추진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소비 관련 산업입니다. 이 글의 서두에 바게트와 피자 이야기를 길게 끄집어낸 진짜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수가 활성화하지 않으면 기업의 99%, 일자리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과 동네 자영업자들이 힘들어진다는 건 자명합니다. 그렇지만 인구 5,000만 명이 내수로 먹고사는 데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내수를 살리려면 역으로 내수 의존성이 높은, 중소기업들이 많이 종사하는 소비 관련 업종에 대해 수출로 활로를 터주는 역발상이 긴요하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소비재와 관련 서비스업 전반을 인구 13억의 중국에 수출해 현지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한국의 수출 산업은 지난 50년간 우리를 먹여 살린 효자 산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뜯어보면 전자와 자동차, 석유화학 등 IT와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그중에서도 소비재보다는 자본재가 월등히 많습니다. 이런 편중된 구조를 조금 바꿔 소비재도 수출 산업으로 확대시켜야 합니다.

 

때마침 중국도 수출 주도형에서 내수 확대형으로 산업구조를 탈바꿈시키고 있습니다. 1인당 1만 달러 이상인 인구가 이미 2억 6,0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내수기반도 탄탄해지고 있습니다. 주택에 이어 자동차와 가전제품은 기본이고, 건강과 식품 안전, 미용 등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바잉(Buying)파워가 큰 중국 중산층을 집중 공략해야 할 시점입니다. 더욱이 중국 소비자들은 한국제품의 품질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와 K팝이 불을 지핀 한류 열풍도 현지에서 한국 제품에 대한 인기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파리바게뜨’가 올 들어 중국 시장에서 폭발적 성장을 하고 있는 건 단순히 빵이 맛있어서만이 아닙니다. 별에서 온 그대의 여주인공을 맡았던 전지현을 앞세운 한류 마케팅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식이나 이탈리아식이 아닌, 한국식 피자인 미스터피자에 대한 현지의 호평도 한국문화와 음식에 대한 호감이 곁들여 있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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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저장성 원저우 주민들이 '별에서 온 그대'의 주인공 김수현(오른쪽) 을 보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출처:한국일보)

 

물론 중국 내수시장 공략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많은 우리 기업들이 노크했지만 오리온이나 아모레퍼시픽 등 소수의 기업을 제외하고 현지에서 승승장구하는 업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욱 철저한 현지화로 무장해 공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국 소비자에게 무엇을, 어떻게 팔 것인가를 연구하고, 이들을 겨냥한 상품과 서비스 개발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소비재 관련 산업도 중후 장대형 산업 못지 않게 수출 산업으로 키워 국내 일자리도 창출하고, 산업구조의 다양화도 꾀해야 합니다. 그게 내수 살리기의 첩경이고, 내수의 지속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IT와 바이오 등 첨단 산업만이 신성장 동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먹는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전통 음식은 물론이고 한국화된 모든 소비 관련 업종들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습니다. 중견 업체인 샘표식품이 현재 중국인들이 자국 음식에 우리식 간장이나 연두를 넣어 먹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류 세계화 프로젝트를 현지에서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점은 매우 시사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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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내 이마트 매장 전경 (출처:연합뉴스)

 

더욱이 올해 말에 체결될 예정인 한•중 FTA를 생각하면 중국은 이제 우리의 내수시장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부와 재계가 힘을 합쳐 중국의 내수 붐(BOOM), 이른바 특수에 올라타야 합니다. 첫번째 특수가 1992년 양국 수교와 함께 우리의 신발, 완구 업체 등을 중심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을 임가공 기지로 활용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특수가 2001년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의 세계 무역기구(WTO)가입과 함께 자본재(부품과 반제품) 수출의 전진기지로 삼은 것이었다면 이제 세 번째 다가올 특수는 소비 대국 중국에 맞춰져야 합니다. 이것이 국내시장에서의 내수 활성화와 산업 구조개혁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절묘한 카드가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