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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관광 산업 활성화, 지우개에 답이 있다

관광 산업 활성화, 지우개에 답이 있다

-이정재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 부회장이 언제부터 지우개를 들고 다녔는지는 알 수 없다. 내가 그의 지우개를 만난 건 1년 전쯤인데 1시간여의 점심 자리를 그는 지우개 예찬론으로 일관했다. 그때 그가 말한 지우개는 만능의 마법 같았다. 시들어가는 한국 경제를 살리는 마법. 나는 그의 지우개론에 크게 감명을 받았는데, 방향의 맞고 그름도 그랬지만 특히 몇 가지 중요한 경제 사안을 지우개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묶어낸 탁월한 조어능력 때문이었다. 그는 이후에도 곳곳에서 기회 닿을 때마다 '지우개론'을 펼쳤는데 박근혜 대통령과 규제완화 끝장 토론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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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따르면 지우개는 규제 완화를 푸는 마법의 열쇠요, 규제 완화는 돈 안 들이고 나라 경제를 살려내는 전능의 마법이었다. 그는 지우개의 마법이 필요한 대표 분야로 한국의 관광 산업을 꼽았다. 그의 말을 거칠게 옮겨보면 이랬다.

 

"대한민국은 자연의 값이 너무 싸다. 미국 국립공원에 가봐라. 요세미티에는 유황천 한가운데까지 길이 나 있다. 관광객이 가고 싶고, 보고 싶은 곳엔 알아서 안전한 길을 내놨다. 절경일수록 그렇다. 자연 파괴 아니냐고? 웃기는 소리다. 우리보다 훨씬 자연보호 잘한다. 아예 다른 곳에 갈 이유가 없게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절경 앞에 불판, 고기 굽는 시설, 전기까지 다 갖춰놨다. 스위스도 마찬가지다. 모든 산 정상까지 트램이 다닌다. 해발 3,000~4,000m짜리다.

 

우리는 어떤가. 절경 근처에도 못 간다. 엉뚱한 야영장에서 밥 짓고 고기 구워먹도록 해놨다. 덕분에 온 나라의 산과 강이 오염된다. 천왕봉 가본 사람 몇이나 되나. 케이블카 놓으려도 환경단체가 반대한다. 그래놓고 뒷길로 다닌다. 건장한 사람만 다닐 수 있다. 막아놓으니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몰래 가서 훼손한다. 그런 규제 풀어야 노인도 아이들도 절경에 돈 쓸 수 있다. 산과 강과 하늘만 잘 엮어도 관광 수요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다.

 

왜 한국의 절경을 건장한 청춘남녀 아니면 자연 훼손 불청객 손에 맡겨야 하나. 이 모든 것을 한칼에 해결하는 게 지우개다. 지우개로 규제를 싹 없애 버리면 된다."

 

구구절절이 맞는 말씀이다. 하기야 어디 산과 들, 강과 해변뿐이랴. 지역으로 갈수록 규제의 완강함은 더 굳어진다. 말단 공무원이 현장에서 힘쓰는 '풀뿌리 규제'는 어떤 권력도 당해낼 길이 없다. 한 증권사가 홍천에 지은 B 골프장 마지막 홀은 개장한 지 1년이 다 되도록 카트를 타고 한 홀을 빙 돌아가야 한다. 설계를 변경해 카트길을 새로 놓으면 되지만 관할 군청이 허가를 안 해주기 때문이다. 애초 카트 도로를 잘못 설계한 골프장 책임이란 것이다. 골프장 안에서의 카트 길 변경 같은 사소한 일까지 관할 관청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한 나라에서 무슨 서비스•관광 산업 경쟁력을 말하겠는가.

 

규제가 막고 있는 관광 산업의 걸림돌은 하나둘이 아니다. 한국에 대한 관광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주 고객은 물론 중국인이다. 올해만 500만 명, 2020년엔 1,000만 명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중산층 수준 인구 3억이 살고 있는 중국 관광객 유치에 아시아 각국은 이미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의 관광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하자는 협정은 몇 년 새 공회전 중이다. 중국 관광객 유치를 폭발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방안 중 하나인 '오픈 카지노'는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내국인 입장을 허용하는 오픈 카지노가 자칫 우리 국민을 도박 중독에 빠뜨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란 이유다.

 

미국, 샌즈그룹, 카지노, 잠실(사진출처:중앙일보)

 

세계 최대 복합리조트 운영업체인 미국 샌즈그룹은 최근 잠실에 약 10조 원 규모의 복합 카지노 리조트 건설을 제안했다. 호텔에만 6조 원 넘는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오픈 카지노'가 전제다. 샌즈 측은 박근혜 정권 초인 지난해 영종도에도 복합 리조트 건설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때는 오픈 카지노가 아니라 투자자금 조달 방안이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 카지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는 한 샌즈 그룹의 투자는 또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관광 산업, 크게 보면 한국 경제 활성화에 꼭 필요한 게 지우개란 총론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어디까지 지울 것이냐의 각론으로 들어가면 쉽게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사회 각계각층의 요구와 인식이 크게 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관광 산업 활성화 방안으로서의 지우개는 여전히 유효한 전능의 마법이다. 지우개가 필요한 규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지우개를 어떻게 얼마나 사용하느냐, 거기에 우리 관광 산업의 미래가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