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법이란 녀석을 가만 들여다봤더니 참 어렵네요. 한 문장 한 문장을 찬찬히 뜯어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럴 수도 있지 않을까, 저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요. 원래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은 정정당당히 경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올림픽을 보면, 선수는 룰을 따라야하고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와도 승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룰이 정확하지 않고 모호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2월 14일부터 시행되는 계열사간 거래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 법의 이름처럼 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기 위한 선물이 되면 좋겠는데, 걱정이 먼저 떠오릅니다. 문제가 뭐냐구요? 바로 공정위가 시행령을 통해 정한 세부 사항입니다. 여기에는 금지행위의 유형 및 기준, 적용제외사유 등이 담겨 있는데, 정상적인 계열사간 거래도 규제대상으로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면... 규제 대상의 기준이, 왠지 모호하게 잡혀 있거든요.
한번 살펴볼까요? 이번에 개정된 공정거래법 및 시행령에서는 계열사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거나, 좋은 기회가 되는 사업, 그리고 규모가 큰 거래를 금지하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얼핏보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게 '법과 시행령'에 포함된 내용이라는 거죠.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상당한' '밀접한'등의 단어입니다. 어디까지가 정상범위인지, 어디부터가 상당하고 밀접한 것인지 애매합니다.
먼저, 개정안은 유리한 조건의 거래라는 부분에서 시장가격과 상당히 차이가 나는 금액으로는 계열사와 거래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가 상당히 유리한 조건"일까요? 모르죠. 물론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시행령에서는 "정상 거래 가격과 가격 차이가 7% 미만인 경우, 처벌대상에서 제외"한다고 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7%가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기존에 존재하던 '부당지원행위 금지규정' 상 10% 에 비해 강화된 규제입니다.
애초 법 개정의 계열사 간 거래를 규제하는 것이 목적이니 그 정도 규제는 당연한 거 아니냐고요? 물론 10%, 7% 라는 수치만 보면 그렇죠. 하지만 규제를 적용할 수 있는 요건이 좀 다릅니다. 기존 '부당지원행위 금지규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공정위가 거래의 부당성과 가격차이의 현저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거래의 부당성이란 계열사간 거래로 다른 사업자가 피해를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단순히 가격 차이만 난다고 문제를 삼는 것이 아니라 시장 전체의 질서를 교란시켰을 때, '부당지원행위 금지규정이 발동됩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는 부당성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계열사간 거래가 시장가격과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만으로 기업을 처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계열사 거래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더라도 기업이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사실 기존의 10% 안전장치를 그대로 유지해도 규제가 강화된 셈이죠.
한마디로, 공정위가 규제를 쉽게 할 수 있다면 규제 대상의 범위는 좀 더 신중하게 선정해야 하지 않냐는 겁니다.
둘째, 사업기회의 제공을 금지한다는 규정도 있는데 어떤 행위가 정상적인 거래이고 어떤 행위가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의가 전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기업이 계열사와의 합작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독자적 사업을 수행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사업은 리스크가 매우 높아 기업이 직접 수행하기 어려워 다른 계열사에 사업을 위임하여 수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업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하지만 개정법안에 의하면 사업 전문화를 위해 사업부를 분사하여 이익을 내는 이런 경우 역시 정상적인 경영 활동임에도 불구, 사업기회 제공으로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초기에 리스크를 부담하고 사업을 추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큰 수익을 낸다고 하더라도 추후 공정위에서 이를 사업기회의 제공이라 해석하고 처벌을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사업 리스크는 기업이 다 떠안으면서, 성공하고 나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좀... 이상하죠?
마찬가지로 상당한 규모의 거래라는 것도 그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불분명할 뿐 아니라, 정상적인 거래도 단지 규모가 큰 대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계열사간 거래를 처벌할 수 있어, 기업의 거래 상대방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이 있습니다. 공정위가 원하는 합리적인 선정과정을 강제하는 것으로 매우 부당한 처사입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매번 경쟁입찰을 실시하는 등 '거래상대방 선정 과정'을 가져야 하는데,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정형화된 거래 등 담당자의 재량으로 처리할 수 있는 세세한 부분에까지 불필요한 절차가 추가될 우려가 있어 기업의 효율적 운영을 방해합니다.
A기업이 계열사를 통해 특허를 출원하고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술을 접목한 사업은 시의성이 중요하며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빠른 일처리가 필요하지만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의하면 A기업이 계열사와 일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매년 연초 경쟁 PT를 진행해야 합니다. 정보유출 방지, 산업의 특성 등은 고려하지 않은 이런 규제는 기업의 효율적인 프로세스 마저 침해하는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이번 달 14일부터 시행되는 공정거래법은 개정과정에서부터 계열사 간 거래를 경쟁법으로 규율하는 것은 시장의 자유를 침해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규제라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공정거래법이 지키고자 하는 것이 시장 질서인데 반해, 이번 개정안은 시장 경쟁의 자율을 침범할 수 있는 요소가 많기 때문입니다.
룰이 공정하지 않다면, 결국 선수는 경기에 등을 돌리게 됩니다.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무리하게 적용되고 집행될 경우 우리 기업들은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고시 및 지침 등 세부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필히 경제계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보장 해야합니다.
기업이 바로서야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모호한 규제는 기업을 죽이는 덫이 될 우려가 큽니다. 공정거래법 개정과 적용에도 이러한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고 보다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가요?
* 본 포스팅은 전경련 박종학 선임조사역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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