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어쩜 이렇게 더운지, 아침에도 낮에도 저녁에도 ‘아이고, 더워.’를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면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떠나 자연과 함께 딩굴거리는 게 제격이지만, 뭐 삶이 그렇게 여유 넘치는 게 아니다 보니, 뭔가 대체재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여름에 즐길 수 있을만한 작품을 추천해보려고 합니다.
여름에 적절한 공연
여름 극장가에서 유난히 많이 보이는 건, ‘납량물’입니다. 영화관 온도가 여름과 겨울이 딱히 다를 건 없습니다만, 적어도 마음이 스산해 지는 건 쓰릴러나 공포물이 제격이지요. 그래서 무섭고 으스스한 장르의 작품이 극장에 많이 올라가고, 또 사람들도 많이 찾게 됩니다. 공연도 마찬가집니다. 영화만큼은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여름엔 방학 특수도 있고 하니, 남녀노소 함께 즐길 수 있는 밝고 경쾌한 작품이 많이 올라오곤 합니다.
물론 작은 극장에서는 공포물도 종종 상연되고요. 날씨가 덥고 불쾌지수도 늘고 하니 가급적 밝고 명랑한 공연을 보는 것이 기분전환에는 훨씬 더 좋은 것 같아요. 고민을 깊이 해야 하는 작품은 좀 힘들기도 하고요. (역시 날이 더워지면 생각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쓰릴미>포스터 (Ⓒ 뮤지컬 헤븐)
쿨한 남자들이 펼치는 쓰릴한 뮤지컬, <쓰릴미>
초연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는 작품이지요. <쓰릴미>입니다. 여기 출연한 배우들은 어김없이 스타반열에 올라가는 것 같더군요. 사실 쉽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죠. 유괴에 살인, 동성애 ... 이 작품은 실제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명문 대학에 다니던 엘리트 둘이 어린 아이를 유괴하여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경악하게 됩니다. 그들이 살인을 한 건, 자신들의 우월함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으니까요. 결국 그 둘은 종신형을 받게 되었는데요. <쓰릴미>는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여기에 몇 가지 픽션과 가정이 추가되면서 이 작품은 매우 묘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게 아마도 많은 이들에게 길게 사랑받고 있는 이유일 겁니다. 회전문(반복하여 같은 작품을 관람하는 현상)의 대표선수 격의 작품이니까요.
남자 배우 둘이 무대에 올라가고 반주는 오롯이 피아노 하나로 이루어집니다. 무척 세련된 음악과 절제된 동선, 그리고 이 두 남자가 벌이는 감정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매력적인 작품이지요. 동성애를 묘사한 작품으로도 논란이 되었습니다만, 그게 중심에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표현 방식도 매우 세련됐고요. 현재 공연되고 있는 소극장 뮤지컬 가운데 가장 댄디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여성 관객이 99%를 차지하는 여성 편향의 작품이니, 가급적 여성분들끼리 보러 가시기를 추천합니다. 하하.
<스칼렛 핌퍼넬> 포스터 (Ⓒ CJ E&M)
<시카고> 포스터 (Ⓒ 신시컴퍼니)
눈요기가 많은 큰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시카고>
여름 끝자락과 함께 막을 내릴 막바지 작품 둘 투척합니다. 하나는 9월 첫 주, 다른 하나는 8월과 함께 막이 내립니다. 먼저 <시카고>는 첨언이 필요 없을 작품 같군요. 워낙 우리나라에서 공연도 많이 되었고요. 영화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궁금할 때쯤 공연이 올라와서 사실은 이번에 공연이 내려온다 해도 사실 많이 아쉽지는 않은 작품입니다.
그러니, 이글 읽고 ‘아이고, 놓친건가, 아까워.’까지는 생각지 않으셔도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또 올라올 거니까요. =) 하지만, 역시 여름과 이만큼 잘 어울리는 작품이 없다는 생각이에요. 일단 몸매가 시원한, (복장도 시원한) 멋진 댄서들이 출연하고요. 내용 역시 막힘없이 시원하죠. 가족들이 같이 볼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만, 데이트용이나 어른들 모임용으로 꽤 괜찮은 공연입니다.
또 한 작품은 이번 우리나라 초연인데, 꽤 반응이 좋은 대극장 작품이죠. <스칼렛 핌퍼넬>입니다. 내용이 사뿐하고 즐겁고요. 청소년 정도까지 충분히 소화 가능한 나름 액션 판타지 멜로물(?) 정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번에 반응이 좋긴 했습니다만, 다시 올라올지의 여부는 미지수이니, 기회되면 보시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사운드 및 뷰를 자랑하는 엘지아트센터에서 하고 있어요.
프랭크 와일드 혼이라는, 우리나라에서 <지킬 앤 하이드>, <몬테크리스토> 등으로 유명한 작곡가의 작품입니다. 음악은 보장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이야기죠. 다음 달 <보니 앤 클라이드>란 그의 신작이 공개될 예정인데, 그건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는 중이에요. 개인적으로 <스칼렛 핌퍼넬>은 한지상과 김선영의 조합이 좋습니다. (평가는 냉정하게)
<블랙 메리 포핀스> 포스터 (Ⓒ 아시아 브릿지 컨텐츠)
현재의 비극은 과거의 그늘에서 나온다, <블랙 메리 포핀스>, <우먼 인 블랙>
<블랙 메리 포핀스>는 탄탄한 창작 뮤지컬입니다. 이번에 앵콜로 다시 올라왔어요. 뮤지컬 시상식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던 흥미로운 작품이지요. 형제의 비극, 그리고 그로 인한 치유를 다루고 있습니다. 결론은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만,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 수준의 창작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안무도 좋고, 작품을 이끌어가는 힘이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에요.
<우먼 인 블랙>은 연극입니다. 납량 특집으로 여름에 자주 올라오는 작품이에요. 동명의 영화를 알고 계시는 분이 많으실 텐데, 예, 맞습니다. 그 작품의 원작 연극이죠. 중간중간 음산한 분위기가 일품이고, 게다가 정말 깜짝 깜짝 놀래키는 효과가 대단합니다.
현재 영화배우로 잘 알려진 김의성 씨가 열연하고 계세요. 초연부터 함께하고 계시는 홍성덕 씨의 연기도 너무 좋습니다. 이 작품은 아서 킵스 역이 매우 중요한데요. 엄청나게 많은 역을 연기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개인적으로 매우 추천하고픈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어쨌거나 꼭 여름에 봐야할 작품이거든요.
<하이스쿨 뮤지컬> 포스터 (Ⓒ CJ E&M)
방학, 오빠를 좋아하는 아이돌 팬녀들에게 보내는 선물 <하이스쿨 뮤지컬>, <화랑>
사실 저도 <응답하라! 1997>에서 볼 수 있던 팬녀 출신의 블로거인데요. 지금은 어언 나이를 먹어 이렇게 뮤지컬 마니아가 되었답니다. 참 세월이 무상하군요. (머엉-) 뭐, 그 힘이 다 지금 성인으로 살아가는데 다른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몰입하여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니까요. 그런 제 과거의 모습을 닮은 친구들을 위해 작품 두편을 추려봤습니다. 바로 <하이스쿨 뮤지컬>, 창작 뮤지컬 <화랑>입니다.
<하이스쿨 뮤지컬>은 제목에서 보여지듯, 하이틴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고등학생용 뮤지컬입니다. 물론 홍보는 어른들도 볼 수 있다고들 하는데, 그보다는 청소년들에게 더 맞고요. 아이돌을 좋아하는 젊은 누나들도 좋아할만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원작 영화가 있어요. 그게 꽤나 인기가 높았는데, 뮤지컬은 원작의 인물과 사건들을 교묘하게 엮어서 뮤지컬로 만들었습니다. 미리 영화를 보시고 가도 좋겠네요. 음악이 무척 좋아서, 뮤지컬 반응도 꽤 좋은 듯 합니다. 작품의 성격답게 아이돌 멤버들을 전면에 포진시켰지요.
<화랑>은 아는 이들만 아는(?) 창작 뮤지컬입니다. 사실 눈에 띄는 유명 배우가 나온 작품은 아니지만, 마니아들에게 입소문이 나서 꾸준히 무대에 올라가고 있어요. <마리아, 마리아>라는 진지하고 성스러운 작품을 연출한 성천모 씨가 만들었는데, 이게 미묘한 매력이 있답니다. 아기자기한 디테일도 그렇고, 팬녀들의 마니악한 취향을 잘 살린 안무도 그렇고요. 넘버도 꽤 좋은 편이라, 사실 별 기대없이 갔다가 ‘응?’하고 온 분들도 많아요. 다만, 미리 밝힌대로 취향을 촘 타는 작품들이니 각오하고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가며: 불타는 여름, 이제는 가을로 향하는 나날
입추도, 말복도 지나고 이제 처서(處暑)입니다. 더위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이 다가온다는 날이죠. 모기 입도 비뚤어지는 서늘한 시기라는데, 그렇게 보면 그리 뜨거웠던 여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운 여름, 부디 안녕히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한여름의 공연장은, 더위를 잊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공연장은 영상매체와는 달리 배우와 함께 호흡하는 ‘실존’이 강조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숨결을 느끼고 그로인해 즐거워지는 건, 무더운 날에도 변함없이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감정이겠죠.
얼마 전 있었던 서울뮤지컬페스티벌에서, 대학생들의 야외무대를 즐겁게 바라보는 관객들을 신기하게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하하호호 웃는 모습을 보면서 좋은 작품, 그리고 열심을 갖고 무대에서는 배우의 땀방울이 사람들을 얼마나 즐겁게 해줄 수 있는가를 새삼 느꼈더랬죠. 그 기분을, 더 많은 이들이 같이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글을 시작으로, 공연과 무대, 그리고 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게 된 풀잎피리입니다. 가급적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솔직하게 써보고자 합니다. 언제나 직접 내가 감각한 것들이 가장 위력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느낌을 공유하고 또 나눠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또 뵐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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