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 '광해'를 보셨습니까? 이 영화는 임진왜란 후 왕이 된 광해군의 이야기입니다. 역모와 암살위협에 시달리던 광해군이 잠시 쓰러진 사이에 외모를 쏙 빼닮은 닮은 백성 한 명이 왕을 연기한다는 스토리입니다.
왕은 매우 막중한 자리입니다. 국가의 모든 정책결정과 형벌에 대한 권한을 쥐고 있습니다. 평상시의 행동이라면 외모만 똑같은 사람이 대신해도 크게 어색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정책판단에 이르러서는 다릅니다. 외모는 그냥 노력없이 타고나는 것이지만 올바른 정책 결정을 할 머리는 수많은 공부와 경험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평범한 백성이 정책결정까지 똑같이 할 수 있다면 왕이 필요없겠지요.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어느 시대에나 비슷하지만 조선시대에도 수많은 법과 규제가 있었습니다. 영화 속에서 크게 문제가 된 조세제도인 '대동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전의 공납제도가 분명히 만들 때는 어떤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고 효과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폐해가 더 크게 나타나면서 폐지요구가 생긴 것입니다. 영화 속의 가짜 광해는 처음에 이런 문제를 모른척 하지만 나중에는 크게 깨닫고 용감하게 '대동법' 실시를 지시합니다.
오백년 이상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수많은 제도와 규제 가운데 실효성이 의심되거나 폐지해야 하는 제도는 없는 걸까요?
지난해부터 동반성장위원회에서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사업 영역 보호를 위해 중소기업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업종을 지정하는 제도입니다. 이 업종에는 대기업의 사업제한을 권고하고 있는데 지난해 제조업에서 총 82개의 품목이 지정되었습니다.
현재는 제조업뿐만 아니라 서비스업까지 확대되었습니다. 대기업의 사업진출을 금지하고 사업을 강제로 이양시키고 나아가 정부가 직접 적합업종을 지정할 수 있는 법률 개정안이 나와 있습니다.
만일 지금을 조선시대라고 치고 읽는 분이 '광해' 가 되었다는 상상을 해보지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폐지해달라는 상소가 올라왔을 때 과연 어떻게 결정하시겠습니까?
1. 두부로 성장한 중소기업, 두부는 이제 그만?
사실 어떤 제도든 양면성이 있습니다. 순작용만 있을 수도 없고, 부작용만 있을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적용하는 대상과 그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합니다. 영화 광해에서 제기된 대동법의 문제도 단순히 실시하면 그게 백성을 위하는 길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시대 국가의 현물수요와 공급의 문제가 얽혀있었습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역시 순작용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순작용을 넘어 부작용이 더욱 심한 양상을 보인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표적 사례를 보면 중소기업에서 성장한 중견기업이 도리어 피해를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기업 풀무원은 30년간 두부사업을 해오면서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기업으로 진입하자 주력사업인 두부사업에서 일부 철수하고 확장을 자제하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만일 조선시대였으면 억울하다고 왕에게 상소가 올라왔을 지도 모릅니다.
2. 대기업이 없으면 중소기업이 왕?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 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공포의 대상인 호랑이가 없다고 해서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여우가 왕이 되어 모두를 괴롭힙니다.
대기업 규제시, 그 혜택이 중소기업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오히려 독점적 위치에 있는 1등 중소기업이 시장을 차지하고는 독점의 해악을 끼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세한 중소기업들이 적합업종 지정을 오히려 반대했던 내비게이션 시장이 바로 그런 예입니다. 내비게이션 시장은 중소기업 두 회사가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두 회사를 제외한 나머지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OEM협력을 통해 사업 경쟁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되어 대기업이 사업에 손을 떼면, 이들 중소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겠지요.
3. 대기업 종업원과 소비자의 피해는?
왕은 모든 백성을 공평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만백성의 어버이로 불릴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이해관계에 있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말고도 그에 관련된 모든 국민에 끼칠 영향도 생각해야 합니다.
대기업이 사업에 제한을 받으면 그에 딸린 많은 협력업체는 물론 직원까지 영향을 받습니다. 대기업과 협력관계에 있는 OEM업체가 제품을 팔 길이 없어 망한다면 많은 실직자가 발생합니다. 이들의 문제도 모른척 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국민경제를 원활하게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 지켜야 하는 요소 가운데 소비자의 선택권이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국가가 개입해서 인위적으로 경쟁을 제한하게 되면 소비자는 제품 선택권을 빼앗기게 되는 셈입니다. 따라서 A/S 등 서비스 수준의 하락 및 제품의 품질저하, 독점에 따른 가격상승을 막을 방법이 없어집니다. 국민 생활의 질이 저하되는 셈입니다.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이런 문제점들이 신하들의 논의를 통해 논의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광해' 라면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요?
나름대로 순작용이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부작용이 있어 상소가 올라 온 제도입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대해 깊은 생각과 함께 '광해' 가 되어 백성을 위한 결정을 한번쯤 내려 보시길 바랍니다.
자유광장 글 더보기
'경제스토리 > 자유광장은 지금!'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걸그룹이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만난다면? (0) | 2012.11.26 |
---|---|
단일화 후보 안철수 사퇴, 대선구도 확정되나? (2) | 2012.11.23 |
동물의 왕국으로 본 국내 기업생태계의 현실은? (1) | 2012.11.23 |
우리 기업생태계의 불편한 진실은? (0) | 2012.1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