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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자유광장은 지금!

<2012년 한국경제 주요변수 점검 1>세계경제 화약고 유로존

불투명한 글로벌 경제기상도 속에 새해 들어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불안합니다. 대외적으로는 유로존 국가들의 재정위기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대내적으로는 가계부채문제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핵개발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갈등으로 인한 국제유가의 급등 초래 가능성은 가뜩이나 불안한 현 국면을 더 위태롭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중국경제의 경착륙 가능성과 신흥국 성장률의 하락, 그리고 가계발 금융불안 우려와 총선·대선으로 이어지는 선거정국은 정책의 불확실성을 높일 게 확실합니다. 이에  ‘2012년 한국경제 주요 변수 점검’을 특집 주제로 삼아 세계경제 화약고로서 유로존의 위기, 미국경제 침체 장기화 및 중국경제 경착륙 등 현단계 G2 경제의 문제점, 이란 리스크, 그리고 가계부채 뇌관 등 한국경제를 둘러싼 주요 변수들을 점검해보고자 합니다.


3대 국제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S&P는 1월 13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로존 9개국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강등하고, 독일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또한 S&P는 1월 16일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신용등급도 AAA에서 AA+로 한 등급 강등하였다. 무디스와 피치도 유로존 국가들의 신용등급에 대한 리뷰작업을 하고 있어 머지않아 유로존 국가들의 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이 높다. 유로존 국가들의 경기가 악화되고 채무상환능력이 취약해지고 있어 신용등급의 추가하락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악재에도 유럽 채권시장 안정적
 
이와 같은 신용등급 강등으로 유럽 국채시장은 요동칠 것으로 예상되었다. 하지만 신용등급 강등에도 불구하고 유로존 국가들의 국채금리가 오히려 하락하고, 신규 국채발행도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재정위기의 중심에 있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1월 9일 각각 7.16%와 5.56%를 기록하였으나, 1월 25일에는 각각 6.23%와 5.40%로 낮아졌다. 이번 신용등급 강등으로 AAA 등급을 상실한 프랑스의 국채금리도 3%대 초반에서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악재에도 유럽 채권시장이

안정을 보이는 이유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동성 공급 확대에 기인한다. ECB는 지난해 12월 22일 523개 은행에 대해 4,892억 유로를 3년 만기 1%의 저리로 공급하였다. 오는 2월 말에도 ECB는 약 4,000억 유로에 이르는 유동성을 추가로 공급할 예정이다. ECB의 유동성 공급 확대로 그동안 자금난에 허덕이던 시중은행들은 자본확충은 물론 국채매입 여력이 생겨 국채금리가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불안 해소 위한 다섯 가지 과제
 

 

그렇다면, 이제 유럽 재정위기는 해소되는 것일까? 아니다. 시장불안이 해소되려 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스 구제금융 지원
 
첫째, 가장 시급한 것은 2차 그리스 구제금융 지원이다. 1,300억 유로의 2차 구제금융이 제때 이루어지지 못하면 그리스는 3월 20일에 만기가 도래하는 145억 유로의 국채를 상환하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할 수밖에 없다. 이는 그동안의 위기극복 노력이 수포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무질서한 디폴트 위기를 피하기 위해서는 2차 구제금융 지원의 전제가 되는 민간채권단의 손실규모가 확정되어야 한다. 현재 그리스 정부와 민간채권단은 3,600억 유로의 그리스 전체 국가채무 중 민간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는 2,060억 유로에 대해 50%를 탕감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 최대 쟁점은 기존 국채와 교환하는 30년 만기 국채의 금리다. 그리스 정부는 신규 국채금리를 평균 3%대로 낮출 것을 원하고 있다. 이 경우 연간 40억 유로의 이자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민간채권단은 적어도 4%의 금리를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민간채권단 중에서 헤지펀드가 완강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어 타협점을 쉽게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파국을 원치 않으므로 벼랑 끝에서 합의점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역할 설정
 
둘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역할 설정이다. 유럽안정메커니즘(ESM)이 출범하기 전까지는 EFSF가 시장안정을 위해 제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 EFSF는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의 구제금융(437억 유로) , 그리스 2차 구제금융(1,300억 유로) , 은행자본 확충 등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주요 출자국인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실질 대출여력이 크게 줄고, EFSF마저 AAA 등급을 상실함으로써 자금조달비용의 상승은 물론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따라서 EFSF의 실질 대출여력을 보강하는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독일, 핀란드 등은 EFSF의 추가 재원확충에 부정적이어서 EFSF의 역할이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유럽안정메커니즘의 출범
 
셋째, 유럽안정메커니즘의 출범이다. ESM은 한시적 기구인 EFSF와 달리 항구적인 위기해결기구로서, EFSF의 역할을 대체하게 된다. 당초에는 2013년 7월에 출범할 계획이었으나, 방화벽 강화 차원에서 1년 앞당겨 오는 7월 1일에 출범할 예정으로 있다. 다만, 출범을 위해서는 유로존 국가의 90% 이상이 비준을 마쳐야 한다.
 
EFSF는 회원국의 보증을 바탕으로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채권을 발행해 자본을 조달하다보니 회원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자본조달능력이 약해지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ESM은 IMF처럼 유로존 국가들이 납입하는 자본금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ESM을 ‘유럽판 IMF’라 부른다. 현재 총 자본금은 7 ,000억 유로, 실질 대출여력은 5,000억 유로로 규정되어 있다. 자본금은 납입자본금, 요구불자본금, 보증으로 구성되는데, 납입자본금 규모는 800억 유로에 이른다. 17개 유로존 국가들은 7월부터 할당된 납입자본금을 5회에 걸쳐 분할 납입해야 한다.
 
EFSF의 역할이 제약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ESM의 자본금 규모가 시장불안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7월 ESM의 공식 출범에 차질이 없으려면 증액에 대한 합의와 함께 유로존 국가들이 비준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유럽중앙은행의 국채매입 확대
 
넷째, 유럽중앙은행의 국채매입 확대이다. ECB는 채권시장의 안정을 위해 회원국 국채를 한시적이고 제한된 범위 내에서 매입해왔다. ECB가 보유한 회원국 국채규모가 2012년 1월 20일 현재 2,190억 유로에 달한다.
 
오는 2~4월에 국채만기가 대거 도래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채권시장 안정(국채금리 하락)을 위해서는 ECB의 국채매입 확대가 절실히 요구된다. PIIGS 5개국만 하더라도 만기도래 국채규모가 2,255억 유로에 이른다. 이러다보니 시장에서는 ECB가 미 연준과 같이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적극 수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CB가 미 연준이나 영란은행 수준(GDP 대비 18~20%)으로 양적완화정책을 시행할 경우 약 1. 4조 유로의 국채 매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ECB는 국채매입 확대에 있어 법률적 제한이 없으나, 신용위험 부담, 회원국의 모럴해저드(재정건전화 유인 약화) ,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구분 모호, 인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인해 국채매입 확대를 주저하고 있다.
 

 

새로운 재정협약의 비준과 이행
 
다섯째, 새로운 재정협약(Fiscal Compact)의 비준과 이행이다. 현재 유럽 재정위기의 해법을 둘러싸고 ‘긴축이냐, 경기부양이냐’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독일을 비롯한 재정부담국들은 강도 높은 긴축을 요구하는 반면, 긴축으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재정취약국들은 경기부양이 절실한 상황이다.
 
2012년 다보스포럼에서도 조지 소로스 등 전문가들은 유로존의 위기탈출을 위해서 긴축 대신 경기부양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최대 전주(錢主) 역할을 하는 독일이 칼자루를 쥐고 있으므로 유로존 국가들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강도 높은 긴축이 불가피하다.
 
유로존 국가들은 2014~2015년까지 재정적자를 GDP 대비 3%로 축소하고, 정부부채를 GDP 대비 60%로 감축해야 한다. 하지만 재정 취약국들은 국민반발과 정권교체 등으로 재정긴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EU는 재정적자 감축 의무화를 각국의 헌법에 명시하도록 규정한 신재정협약을 추진하고 있다. 신재정협약은 연간 구조적 적자가 명목 GDP의 0.5% 이내가 되도록 재정건전화를 헌법에 명시하고 위반 시 자동조정메커니즘을 작동하며, 안정성장협약(SGP)을 위반한 유로존 국가는 회원국들이 반대하지 않을 경우 자동적으로 경제적 제재가 이뤄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ECB가 국채매입 확대에 나서기 위해서는 17개 유로존 국가뿐만 아니라 영국을 제외한 다른 EU 회원국들이 신재정협약을 신속하게 비준하고 이행할 필요가 있다.
 
극복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가 위기극복을 가능케 할 것
 
이들 5개 요건을 충족한다면, 유로존은 국채만기가 집중 도래하는 2~4월의 최대 고비를 무사히 넘기고, 시장불안도 점차 진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극복하고자 하는 정치적 의지만 있다면 유로존은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으므로 위기극복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정치상황을 보면 결코 만만치가 않다.
 
2012년에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유로존 국가들로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위기 극복을 위한 과감한 역내공조가 쉽지 않다. 독일과 함께 위기극복을 주도해온 프랑스의 경우, 4~5월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대로 사회당 정권이 등장할 경우 문제가 복잡해진다. 정치적 색채가 다른 독일의 기민당 연립정부와의 정책조율에 상당한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있다. 신속한 대응이 요구되는 현 시점에서 정권교체로 인한 정치적 공백은 시장불안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그리스의 정권교체로 인한 갈등 가능성이다. 현재 파파데모스 과도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민간채권단과의 채무탕감 합의가 도출되어 EU-IMF의 2차 구제금융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과도정부의 기한이 끝나는 4월 총선 이후가 문제다. 현재로서는 총선에서 EU-IMF의 강도 높은 재정긴축 요구에 줄곧 비판적 입장을 취해온 신민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신민주당이 집권하면, 과도정부가 추진해 온 긴축정책이 지속될지 미지수다. 총리가 유력시되는 사마라스 신민주당 당수는 세금인상 대신 경기부양을 위해 세금인하를 주장해왔기 때문에 EU-IMF와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신정부는 디폴트 선언 및 유로화 탈퇴라는 최종 카드를 내세워 구제금융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그리스가 여전히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유로존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설령 유로존 국가들이 역내공조를 통해 위기해소에 성공하더라도 유로존이 재정위기 이전상태로 복귀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모든 유로존 국가들이 충분한 경제성장을 통해 독자적인 채무상환능력을 갖추거나, 미국과 같이 완전한 재정통합을 이루기 전까지는 유럽 재정위기의 불씨가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유럽 재정위기는 무역 및 금융연계를 통해 세계경제와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유로존과의 무역 및 금융연계의 정도에 따라 국가별 · 지역별로 경제적 충격의 강도가 다를 것으로 예상된다. 선진국 경제는 물론 신흥국 경제도 유럽 재정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김득갑 /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 연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