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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자유광장은 지금!

일본 - ‘수출 왕국 일본’은 이제 끝난 것인가


2012년에 접어들자마자 일본 경제계는 지난해 일본의 무역수지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았다. 믿었던 수출이 이제 수입에도 못 미치는 시대가 됐다는 현실에 당혹하는 모습이 여실하다.
 
일본 재무성이 발표한 2011년 무역적자 규모는 2조 4,927억 엔(약 36조 원) . 31년 만의 적자다. 무역수지는 수출액에서 수입액을 뺀 수치로, 일본이 무역적자를 기록한 것은 제2차 오일쇼크로 유가가 급등해 수입액이 크게 늘었던 1980년(2조 6,000억 엔) 이후 처음이다. 일본이 무역적자로 돌아선 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먼저, 사상 유례없는 수준의 엔화 강세다. 지난해 10월 말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유로화 대비는 11년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엔고현상은 일본산 제품값을 상대적으로 비싸게 만들었고 매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본 기업들은 현지 생산보다 해외로 생산시설을 이전하는 등 고육지책을 쓸 수밖에 없는 사정으로 몰렸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일본의 대표적인 기계장비업체 모리 세이키(森精機)를 예로 들었다. 모리 세이키는 1948년 설립 이래 일본 내에서만 생산을 계속해 왔던 우량회사. 엔고의 파고에 견디지 못한 이 회사는 올해 처음으로 해외에 공장을 열 예정이다. 모리 마사히코 회장은 “일본 밖에서 만드는 기계장비의 매출을 앞으로 전체의 40%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엔고로 인한 직접적 타격으로 인해 일본의 수출은 지난해 2010년에 비해 2.7% 감소했다. 엔고가 수출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면, 지난해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수입을 크게 늘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수입이 전년대비 12%나 증가한 점을 보면 수입의 대규모 증가가 이번 31년 만의 무역적자 사태를 초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원인은, 먼저 일본에 있던 제조업 공장들이 동일본대지진으로 대거 파괴되고 물류가 차단되면서 단기적으로 부품공급에 차질이 빚어졌다. 대지진 사태로 후쿠시마 제1원전 사태가 터졌고, 일본에 있는 총 54기의 원전 중 49기가 사고와 정기점검으로 가동을 중단할 정도의 원전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회의감이 높아지자 원전 대신 화력발전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이로 인해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입액이 37 .5%나 급등했다. 천연가스와 원유의 가격이 같은 시기 크게 올랐던 점도 수입액 상승을 부추겼다. 사실 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입원자재 의존도가 높아 에너지가격이 오르면 제품생산 비용도 상승하게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문제는 이런 추세가 일시적인 게 아니라 장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일 경제산업상은 최근 WSJ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무역수지 적자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아가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한국과 중국에 추월당하는 분야가 다수 나오고 있고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인구감소도 제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2060년에는 일본의 인구가 현재보다 30% 가량 줄어든 8,674만 명이 될 것이란 추산치가 정부 통계로 나와 있을 정도다. 또한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오는 3월 끝나는 2011 회계년도의 성장 전망치를 당초 0.3%에서 마이너스 0.4%로 조정했듯 세계경제의 침체와 엔고 지속으로 인해 일본경제의 성장은 벽에 부딪힌 상태다.
 
게다가 도쿄전력은 오는 4월쯤 기업용 전기료를 17% 인상할 계획이라 기업들 입장에선 말 그대로 ‘죽어라 죽어라’하는 상황의 연속이다. 이른바 ‘일본의 기적’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수출왕국을 건설하며 미국이나 유럽의 견제를 받았던 시기를 생각하면 ‘아, 옛날이여’를 외치고 싶은 것이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폐허더미 속에서 수출주도형 경제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에서 일본산 자동차가 큰 인기를 끌면서 미 정부가 1981년 일본에 자발적인 수출제한조치를 취하도록 압박했을 정도였다. 반도체에 대해선 반덤핑 혐의를 씌우기도 했다. ’85년에는 ‘프라자 합의’를 통해 미국 등이 엔화 강세를 종용, 일본산 상품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려고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98년 14조 엔의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등 자동차와 가전제품, 반도체 등을 전 세계에 수출하며 수출왕국으로서 그 지위를 확고히 다져온 ‘일본의 시대’는 과연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31년 만에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했다고 해서 일본의 경제력이 바로 고꾸라지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먼저, 일본의 경상수지는 아직 큰 흑자를 기록 중이다. 정확한 추정치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무역수지 외에 소득수지(일본이 해외로부터 벌어들인 이자· 배당수입에서 일본이 해외에 지출한 이자· 배당수입을 뺀 액수)까지 포함한 개념인 경상수지는 10조 엔 내외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해외로부터의 이자· 배당 수입이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를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벌어둔 251조 엔에 달하는 막대한 돈을 해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해 놓은 것이 이제 큰 결실이 돼 일본경제의 새로운 샘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일본 정부와 상당수 전문가들은 무역수지 적자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지는 않다. 한 마디로 “지난해 무역적자는 예외적 상황이 겹쳐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도 무역적자 발표가 있은 직후 회견에서 “(무역적자는) 동일본대지진 · 엔고 · 태국홍수 등의 여러 요인에 의한 것이다. 오히려 최근 수년 간 무역수지는 축소되는 반면, 소득수지가 확대되어 온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일본의 무역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간접적으로 ‘문제없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미스터 엔’으로 불리며 한때 국제금융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교수는 “무역수지가 적자를 보이는 추세는 사실이지만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는 한 크게 문제될 게 없다”며 “일본은 여전히 세계 상위권의 부자나라”라고 강조했다. 일본은행(BOJ)의 시라카와 마사아키 총재는 “(무역수지 적자는) 대지진 여파로 원유와 천연가스 수입이 증가했기 때문에 나타난 일시적인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역수지 적자 사태가 향후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질 경우다. 그렇게 되면 당장 해외로부터 일본에 유입되는 자금이 줄어들어 방대한 규모의 일본 국채를 일본 국내 자금만으로는 사들이지 못하게 되는 사태로 번지게 된다. 이는 곧 재정운영의 비상사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일본은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바탕으로 1,000조 엔 규모의 나랏빚을 대부분 국내에서 소화해 왔다. 경상수지가 적자로 바뀌면 외국 투자가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들이 재정적자 규모가 큰 일본 국채를 선호하지 않을 경우 금리를 올려야 한다. 이는 기업의 설비투자 감소와 가계부담 증가로 즉각 이어지는 악의 순환고리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31년 만의 무역수지 적자 사태가 일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예외적 상황’으로 끝날지 혹은 경상수지 적자로 가는 중간 정거장이었는지는 일본뿐 아니라 한국·중국의 아시아 경제 역학구도를 재편성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