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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 법제화의 문제점과 과제 (한선옥 전경련 산업본부 산업정책팀장)

최근 국회에서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조기 안착과 실효성 담보를 위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대한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노영민 의원은 중소상인 적합업종을 중기청장이 지정하고,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대기업이 해당사업을 중소상인에게 강제적으로 이양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중소상인 적합업종보호 특별법’을 발의(7.1)하였고, 김재균·장제원·강창일 의원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적합업종의 법제화를 위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보호 촉진법’ 개정안을 국회에 각각 발의하였다. 이에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에서 위의 4개 법안을 통합·심의하여, 위원장 대안으로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의결하였다. 주요 내용으로는 동반성장위원회의 법적 기구로 개편, 적합업종에 대한 대기업의 인수·확장·개시 금지,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형사처벌조항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산업계는 민간자율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적합업종 제도가 제대로 시행해보지도 못하고 좌초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고 있다.
적합업종의 법제화는 민간의 자율적 노력에 대한 심각한 훼손
현재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은 민간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 주도로 대·중소기업 간 자율적인 협의로 진행 중에 있다. 지난 5월 총 234개의 품목을 접수받은 이후, 업종별 자율협의체를 운영하여, 현재까지 총 42개 품목에 대해 적합업종 선정결과를 발표하였다. 향후 올해 안에 나머지 품목에 대한 협의를 마치고, 12월 중 이를 발표할 예정이다. 선정된 품목에 대해서는 내년 1월 1일부터 협약내용을 실시토록하고, 합의내용의 이행여부를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처럼 현재의 적합업종 선정은 민간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진행되고있다. 물론 일부 품목에 대한 쟁점이 여전히 남아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업종에서 합의를 도출해 내었다. 이러한 대·중소기업 간 자율적 노력이 실행에 옮겨지기도 전에 법제화를 통해 강제하는 것은 민간의 자율적 노력에 대한 심각한 훼손일 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기조와도 배치한다.
 
정부는 ’10년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대책 발표에서, ‘적합업종 선정은 민간주도로 진행하고, 대기업의 자율적인 진입자제와 사업이양을 유도한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안은 실제 현실에서 적용 불가능
또한, 현재 논의되고 있는 개정안이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한 개의 업종(또는 품목)이라 하더라도 대·중소기업 간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역할이 분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인위적인 적합업종 지정은 건전하게 정착된 산업생태계의 교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자율협의체에서도 일방적인 사업이양이 아닌 가격에 따른 시장분류, B2B-B2C 시장으로 분류, 민수·조달시장 분류 등 다양한 형태의 시장분할 및 사업범위의 조정으로 대·중소기업 간 합리적인 역할 분담을 유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정부분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여 중소기업의 성장기반을 마련하고 대기업도 일정 시장에서의 사업영위를 허용함으로써 자율적인 동반성장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법제화가 이루어지면 이렇게 업종별 특성을 감안하여 지정 또는 협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업종에 대해 일률적으로 인수·개시·확장을 금지하게 되어 오히려 산업생태계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법제화가 이루어질 경우 국제규범과의 충돌도 불가피해보인다. 최근 통과된 한·미 FTA에는 서비스의 경우 일부 투자개방이 유보된 분야를 제외하고는 모두 개방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선정결과에 따라 FTA 위반 가능성이 높다. 제조업의 경우도 특정 업종에 이미 투자한 외국투자자가 적합업종 선정으로 피해가 발생하면 분쟁제기가 가능하다. 한·EU FTA에서는 우리나라가 제조업과 서비스업 모두에 광범위하게 투자개방을 양허하고 있어, 적합업종으로 선정될 경우 협정위반이 될 소지가 매우 높다. 외교통 상부도 보도자료(2011.10)를 통해 적합업종 법제화는 FTA 등 국제규범에 상충되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실패한 정책인 ‘고유업종 제도’의 부활
과거 고유업종 제도는 이미 진출한 사업의 계속적인 사업 유지는 허용하되, 제도적으로 신규진입을 금지시키고, 위반 시 징역형 등 벌칙을 부과했었다. 이번 개정안도 대기업의 신규진입을 금지하고, 기존 대기업의 사업이양을 권장하는 등 영업제한 범위가 유사하고, 고시위반 시 징역형 등 강한 벌칙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고유업종 제도’를 사실상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하지만, 고유업종 제도는 중소기업에 대한 보호취지와 달리 중소기업의 자생력 저하, 산업경쟁력 저하 등 많은 폐해로 인해 ’06년에 폐지된 실패한 제도이다. 고유업종으로 보호받았던 12년 동안 고유업종에 속하던 산업은 평균적으로 사업체수 1.3% 감소, 생산액 비중 4.3% 감소, 월평균 종사자수 비중 2% 감소, 부가가치 3.9% 하락 등 경제적 비효율성이 드러났다(중소기업 고유업종의 실효성에 관한 연구, 중소기업학회, 2004). 또한,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고유업종 제도가 오히려 글로벌기업의 시장잠식을 키운 것으로 나타났다. 조명산업의 경우 현재 글로벌 기업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70%가 넘는 등 시장이 대부분 잠식당한 상황이다. 전국 10개 월드컵 구장 전부가 외국기업 조명이 적용되었으며, 최근 대구 육상경기장도 외국계 기업의 제품이 사용되었다.
적합업종 선정, 민간자율에 맡겨야
지금 상황에서는 적합업종 선정을 법으로 강제하는 것보다는 산업·시장 특성에 맞도록 민간자율로 추진해야 진정성과 지속성이 있는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이 가능할수 있다. 대·중소기업이 자율적으로 합의하고, 이에 대한 이행실태 점검 및 공표를 통해 자발적 준수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 자율적 민간합의 방식을 일정기간 시행한 후 문제가 있을 때 민간차원에서의 제도개선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섣부른 법제화는 규제에 의한 시장통제일 따름이다. 지금은 동반성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대·중소기업들에게 정부, 국회, 국민 모두가 박수와 격려를 보내야 할 때다.
 
한선옥 (전경련 산업본부 산업정책팀장)

* 출처 : 월간전경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