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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경기침체를 넘어 금융위기로 옮아가고 있는 유로존 재정위기

박현진
세계경제 가 3년 전 리먼 브라더스 파산 때보다 더 깊은 침체의 터널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08년 리먼사태 때와 달리 미국과 유럽의 재정긴축으로 인해 쓸 수 있는 정책수단이 바닥 난 데다가 재정위기는 경기침체를 넘어 금융위기로 옮아가고 있다. 2년 여 동안 신흥국으로 몰려 들었던 글로벌 자본은 달러 등 안전자산을 찾아 본격적인 이탈을 시작했다. 신흥국은 외국인 자 금의 엑소더스로 환율이 급상승하면서 초비상 상황에 들어갔다.
 
이런 가운데 9월 22일부터 잇달아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회의와 국 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서는 선진국과 신흥국을 막론하고 유로존 국가들이 위기수습책에 서둘러 나서줄 것을 강력하게 압박했다. 이에 대해 유로존 국가들은 여러 가지 위 기수습책의 검토에 들어갔지만 각국의 입장이 조금씩 엇갈리고 투입할 재원이 워낙 막대해 쉽게 합의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 세계경제 침체국면 진입
국제금융기구 수장들과 세계 각국의 정상, 금융시장 최고경영자(CEO)들은 글로벌 증시가 예외 없이 급락세를 이어가자 일제히 세계경제가 위기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위기의 진앙지인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 더 이상 문제를 끌지 말고 수습에 나서도록 사실상 최후 통첩을 던지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9월 22일 열린 IMF 연차총회 때“현 경제상황은 위험한 국면으 로 들어가고 있다”며 각국의 협력을 촉구했다. 로버트 졸릭 WB 총재도“선진국에서 일어난 위기 가 개도국의 위기로 퍼질 수 있다”면서“유럽과 미국은 자신들이 나머지 나라에 더 큰 골칫거리가 되기 전에 중대한 경제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책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의 채권펀드를 운용하는 핌코의 엘 에리언 공동 CEO는 비슷한 시기에“유럽은 재정위기 확산을 적절히 제어 하지 못했다”며 유로존과 G20 국가들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공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도 유엔 총회기간 동안 만난 유럽 정상들에게 더욱 단호하고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 유럽, 실탄 쏟아부어야
세계경제 전문가들과 각국 정부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그리 스의 재정위기 전염을 차단하라는 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대 책을 유로존에 요구하고 있다. 재정위기보다 훨씬 파괴력이 큰 유럽은행의 부실을 공적자금을 투입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생지난 9월 16일 있었던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 미국 재무장 관으로는 처음 참석한 티모시 가이트너가 참석했다. 유로존 국 가들을 독려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리먼사태 때 미국이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에 7,000억 달러(810조 원)를 긴급 투입했던 부실자산 구제프로그램(TARP)을 유로존도 시 행할 것을 강력 권고했다. 딕 보베 로치데일증권 애널리스트와 신현송 프린스턴대 교수(경제학) 등 오피니언 리더들도 같은 처방을 내놓고 있다. 신 교수는 9월 중순 미국 뉴욕 맨해튼에 서 열린 글로벌금융리더스 포럼에서 기자들과 만나“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은행들이 2008년 미국 정부가 했던 것처 럼 신속하게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이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라고 말했다. IMF는 유럽은행의 부실이 3,000억 유로에 이를 것이라고 적시했다.
 
이 같은 요구에 일단 유로존 국가들은 추진하겠다는 의사는 밝힌 상태다. G20 재무장관들은 9월 22일 회의를 마친 뒤 공동 선언문(코뮤니케)을 통해“유로존 국가는 10월 파리 재무장관· 중앙은행총재 회의 때까지 유럽금융안정기금(EFSF)의 운용상 유연성을 강화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 다”고 발표했다. 운용상 유연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EFSF자 금을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사들이는 데 쓰는 것뿐만 아니라 유 럽은행의 자본투입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재 4,400억 유로인 EFSF로는 그리스와 유럽 금융 회사 지원으로도 부족해 추가 증액을 놓고 또 유럽 각국이 골 머리를 앓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9월 23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셸 바르니에 EU 역내시장 담당 집행위원은“유럽은 행‘2차 스트레스테스트’를 간신히 통과한 16개 은행도 자본 확충이 요구된다”며“가능하면 (스스로) 자본시장에서 차입하 길 바라지만 이것이 힘들 경우 국가지원에 기댈 가능성도 배제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유럽은행의 신용등급을 잇따라 내리고 있다. 결국 유로존 국가 정상들이 구두 약속에서 나아가 실제 자금투입을 실행에 옮길지가 관건이다. 마이클 에반스 골드만삭스 부회장 은“현재 세계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는 유럽 지도권의 리더십 부재”라고 비판했다. 유로존에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면 세계 경제는 내년에도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 불길은 신흥국으로 급속하게 번져
이제 경제위기는 대서양 양단의 미국과 유럽의 두 선진경제 권을 벗어나 급속하게 신흥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진정한 글로 벌 경제위기 국면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신흥국들은 선진 경제의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성장 원동력이었던 수출이 줄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국인 투자 자의 이탈도 본격화되고 있다.
 
리먼사태 이후 약 2년 동안 높은 수익률을 노리고 신흥국으 로 들어왔던 자금들이 7월부터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해 9월 하순부터 자금유출이 피크를 이루면서 신흥국 환율시장을 뒤 흔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속도와 규모가 급격한 자금유출을 떠 올릴 정도로 가파르다고 분석하고 있다. 파블로 골드버그 HSBC 이머징마켓담당 애널리스트는 WSJ과 인터뷰에서“신흥 국 자금은 한 번 방향을 틀면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브라질 레알화는 7월 이후 20% 가까이 하락했으며 인 도네시아, 홍콩, 브라질, 멕시코 등 신흥국 증시는 선진국 증시 의 하락폭보다 더욱 크다. 문제는 아직까지 유출된 외국인 자 금이 2010년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 해 앞으로 더욱 빠져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2010년 외국인의 채권투자 비중이 15%에 불과했으나 올 8월 36%까지 치솟은 뒤 최근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33%에 이른다. 앞으로 더욱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인 도네시아 정부는 본격적인 시장개입에 들어갔다. 브라질 정부 도 최근 2년 간 외국인 자금이 급속히 몰려들자 토빈세까지 물 리면서 유입을 막았지만 이젠 거꾸로 급속히 유출되는 자금을 막기 위해 개입에 나섰다.
 
국가부도가 났을 경우를 대비해 국채를 산 투자자들이 내는 일 종의 보험료인 CDS프리미엄도 신흥시장에서 급속히 치솟고 있 다. 9월 26일 기준 한국의 5년 만기 국채의 CDS는 210bps(2.1%) 로 한 달 전에 비해 0.83% 포인트가 뛰었다. 특히, 세계경제의 구세주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었던 중국마저도 성장세 둔화가 가시화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당국의 고위 관계자는 외신과의 인터뷰에서“중국이 유로존의 국채를 매입해 세계경 제의 침체를 막아주기를 기대하는 것 같은데, 당장 우리 앞가 림하기도 바쁜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현진 (granblue2010@gmail.com)

* 출처 : 월간전경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