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올여름 뮤지컬 중 가장 관심을 끌었던 무대에 관해 묻는다면, 아마 많은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뮤지컬 <데스노트>라 할 겁니다. 소문만큼 티켓 전쟁도 상당했죠. 티켓이 오픈되자마자 순식간에 마감되었으니까요. 당시 인터넷 티켓 예매창의 좌석 배열표가 하얗게 변해가는 순간은 정말 '장관'이랄 수밖에요. 전국이 메르스 때문에 시끄러웠고, 공연 관람객이 반 토막 났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만, 이 데스노트만큼은 비켜간 것 같습니다.
무려 서울 시내 공연장도 아닌 '성남아트센터'였는데도 말이죠.ᅠ 어렵사리 티켓을 예매하여 객석에 앉았더니, 다국적 관객들이 이미 객석을 빼곡하게 메우고 있더라고요. JYJ 김준수의 출연
때문이기도 하겠고, 한국 뮤지컬 자체의 인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왠지 소문난 잔치에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과연 먹을 것이 많을지 없을지는 곧 이야기해보도록 하지요.ᅠ
관람객의 고민을 줄여준 '원 캐스팅 시스템'
뮤지컬 마니아들은 표 하나씩 품어두고 이 작품을 보고 왔더군요. 여러모로 화제가 된 작품이라 그랬을 겁니다. 원작이 워낙에 유명하기도 하고요. 출연 배우들의 면면이 너무나 화려하거든요. 이 작품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자면 바로 '원 캐스팅 시스템'입니다. 어느 회차에 가든, 그 배역은 한 배우가 연기하게 됩니다. 실제 브로드웨이 등지에선 많이 시도되지만, 우리나라에선 언제나 더블, 트리플 심지어 쿼드러플 캐스팅이 빈번하니까요. 그거 골라가는 것도 고역이거든요. 공연장은 아무래도 제한된 시간에 가야 하니, 내 스케줄과 공연스케줄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요. 예전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시도된 바 있습니다만, 그 이후 한참 뜸했는데, 이렇게 핫한 공연에 제대로 시도된 적은 참 드문 것 같아요.ᅠ
데스노트 vs. 데스노트 vs. 데스노트
원소스멀티유즈를 가장 잘하는 나라는 바로 이웃 나라 일본이 아닌가 싶습니다. 데스노트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는 작품의 '원소스'는 만화책입니다. 이후 일본에서 영화가 나왔고요. 뮤지컬로도 제작되었죠. 그리고 그 뮤지컬이 우리나라에서 라이센스 버전으로 제작된 것이 지금 무대에 올라있는 뮤지컬 <데스노트>입니다. 그리고 현재 일본에서 연속드라마로도 이 작품이 방영되고 있습니다. 원작 만화가 2003년에 나왔다고 보면, 여전히 그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놀랍습니다. 아마도 '데스노트'라는 소재 자체가 워낙에 매력적이기 때문일 겁니다.ᅠ
영화 <데스노트> 포스터
장르를 옮겨가더라도 캐릭터와 스토리의 기본 골자, 그리고 결말 정도는 유지하고 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만, 이 <데스노트>만큼은 예외라고 해야겠습니다. 만화, 영화 그리고 뮤지컬 모두 결말이 다르거든요. 물론 팬들 사이에선 원작인 만화를 넘지 못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만, 각각의 장르 나름의 장점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ᅠ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전 원작 만화>영화>뮤지컬 정도의 순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뮤지컬의 결말은 만화의 마지막 결말과 비슷합니다만, 좀 더 급하고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사실 가장 차이가 있던 것은 영화였지요. 결말 자체가 완전히 달랐거든요. 이렇게 일본에서 계속 재창작되고 있는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뮤지컬로 만들어진 건 <데스노트>가 처음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캐스팅은 꽤 의미가 깊지요.ᅠ
범상치 않은 행보로 공연계가 주목한 아이돌 출신 배우, 김준수
현재 김준수는 우리나라 뮤지컬 마당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입니다. 그가 출연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공연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요. 단지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스타가 한 분야의 흐름을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줬던 좋은 예입니다. 많은 아이돌이 뮤지컬계에 진출했지만, 모두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득보다는 실이 많았더랬죠. 그러한 와중에 김준수의 등장은 분명 공연계에서 눈여겨 봐야 할 지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도적으로 공연을 기획하기에 이르렀네요(뮤지컬 <데스노트>는 김준수가 속한 기획사가 제작한 공연). 이번 <데스노트>의 향방이 앞으로 뮤지컬계에 미칠 파장을 지켜보는 것도 꽤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뮤지컬 <데스노트> 뮤직비디오, 배우 김준수의 곡 'The Game Begins'
동방신기에서 JYJ, 그리고 뮤지컬. 분명 범상하지 않은 행보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이번에 저는 처음으로 그의 공연을 지켜봤어요. 전 팬이라기보다는 순수한 공연 마니아이자 관찰자의 입장이었는데요. 기대 이상의 감흥을 느꼈던 것이 사실입니다. 대형 아이돌이 뮤지컬 배우로서 갖는 가장 큰 장점을 손꼽는다면, 무대 장악력이라고 하고 싶어요. 솔직히 무대나 연기가 전문 배우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하긴 힘듭니다. 그게 김준수는 극대화되어 있더군요. 혼자 무대에 서 있어도 꽉 차는 느낌. 무대 자체를 장악하고 스스로 통제하는 느낌이 무척이나 강했습니다. 그걸 흔히들 '아이돌의 오오라'라고 하던데, 그걸 여실하게 볼 수 있었네요. 저음이나 딕션이 썩 좋지 않았던 게 흠이라면 흠입니다. 하지만 이 캐릭터에는 너무나도 잘 맞는 개성을 갖고 있어서 그런 아쉬움은 상쇄할 수 있었어요. 너무 욕심내지 않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캐릭터를 맡는다면, 한동안 김준수를 막을 존재는 없겠다는 생각이 드네요.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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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배우, 홍광호와 정선아
김준수에 맞서는 상대로 홍광호가 등장한 것은 어쨌거나 대단한 선택입니다. 아마도 현존하는 뮤지컬 배우를 노래만으로 순위를 매긴다면, 홍광호는 확실한 메달권이겠죠.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저음과 고음, 감정을 싣는 기술과 다양한 기교까지... 홍광호는 음역이 넓고 풍성한 성량을 가진 멋진 배우입니다. 성대는 정말 국보급으로 보존해야 할 만큼 대단하지요. 또한, 오래전 배우 조승우는 홍광호의 노래는 자신의 것보다 낫다며 굉장한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자신도 결코 노래를 못하는 배우가 아님에도 말입니다.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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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데스노트> 뮤직비디오, 배우 홍광호의 곡 'Death Note'
라이토의 역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도 영국에서의 경험 덕택인지(얼마 전까지 홍광호는 영국 무대에 진출해서 뮤지컬 <미스사이공>의 투이 역을 했었더랬죠) 한결 성숙미를 더해서 왔더라고요. 도덕관념이 너무 투철하여 신의 영역을 넘보는 라이토 역을 꽤 잘 소화하더군요.ᅠ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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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데스노트> 뮤직비디오, 배우 정선아의 곡 'I'll Only Love You'
무엇보다 이 뮤지컬 <데스노트>는 원캐스트 작품인 만큼 캐스팅에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사실 미사 역의 정선아는 결정되고 나서 솔직히 좀 의아하긴 했었어요. 원작이나 영화에서 미사는 좀 더 뭐랄까요. 백치미 넘치는 어린 소녀 느낌의 인물이었거든요. 그런데 정선아는 좀 더 섹시하고 육감적인 느낌이니까요. 실제 도는 소문도 미소녀 아이돌이기보다는 '디바'의 느낌을 살릴 거란 내용이었고요. 근데 막상 뚜껑을 여니 그냥 미소녀 아이돌이었습니다. 하하하. 근데 정선아는 워낙 여우같이 잘하는 배우라 그런지 잘 어울리더군요. 첫 데뷔 시절 <렌트>의 미미가 연상되는 그런 모습이었죠. 정선아 역시 한결같이 믿어지는 배우임엔 분명합니다.ᅠ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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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중견 신진 강홍석과 박혜나
근 1, 2년 동안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남녀 배우를 꼽는다면, 아마도 강홍석, 박혜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각각 뮤지컬 <킹키부츠>와 <위키드>의 히로인이죠. 탄탄한 실력을 갖추고 차근차근 올라온 배우들이 이렇게 관심을 끄는 건 정말 신나는 일 같습니다. 이들이 제 역할을 해주면서, 작품이 더 탄탄해졌거든요. 둘이 사신의 역할을 하는데, 무척이나 중요한 역할이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영화보다도 훨씬 좋았고, 만화 원작보다도 훨씬 입체적인 캐릭터가 되었습니다.ᅠ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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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데스노트> 포스터
역시 공연의 힘이란 음악과 실물 캐릭터가 되겠죠. 그 장점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 바로 이 강홍석과 박혜나의 힘이라 생각했습니다.ᅠ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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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풀한 음악, 그러나 다소 단조로운 무대 활용
선공개된 뮤직비디오가 한참 이슈가 되었던 것처럼, 뮤지컬 <데스노트>의 장점은 솔로가 매우 위력적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각 배우가 가진 역량이 매우 훌륭하기 때문이겠죠. 어쨌거나 노래가 귀에 속속 박히는 느낌이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킬링 넘버가 많다는 이야기죠.
뮤지컬 <데스노트> 하이라이트 영상
그러나 안무나 무대 사용 측면에서는 좀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야기가 후반부부터는 너무 확확 진행되다 보니, 중간중간 흐름이 끊기는 느낌도 들었고요. 뭐, 이건 어쩔 수 없는 한계란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어쩐지 '키라'라는 이름도 좀 어색하긴 했어요. 물론 의미 없이 들어도 되긴 하지만, 그건 일본어 발음으로 '킬러'거든요. 뭐, 어쨌든.ᅠ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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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며
양질의 원 콘텐츠가 다양하게 변용되어 사용되는 건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르가 변환되면서 느낄 수 있는 매력도 다르니까요. 뮤지컬 <데스노트>는 성남에서 공연된다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순항 중입니다. 최근 공연계에는 공연 관련 상품을 활발히 제작, 판매하고 있는데요. 무대 한편에 전시장을 만들어 놓고 온라인 판매를 하는 것도 퍽 인상적이었어요. 프로그램을 바로 구입할 수 없었던 건 아쉬웠습니다만, 다양한 엠디를 집에서 받아볼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더군요. 주로 공연장에 가야만 살 수 있어서 그건 매번 좀 아쉬웠거든요.ᅠ ᅠ
가능하면 뮤지컬을 보는 분들은 원작인 만화나 영화도 챙겨보시길 바랍니다. 지금 방영 중인 일본드라마는 여러모로 원작과 또 다른 모습이라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은데, 저도 종영 후에 몰아서 챙겨볼까 생각 중이에요.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악인을 처단한다는 주제는 어쨌거나 꽤 매력 있고 신선하지요. 그리고 천재들이 나누는 두뇌게임을 보는 재미도 삼삼하고요. 법이 가지는 빈틈이 이 작품의 원동력이 된다는 건 어찌 보면 참 씁쓸한 일인 거 같습니다. 아마도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고, 불합리하게 풀려나는 범죄자가 없었다면, 똑똑하고 정의로운 마음을 갖고 성장하던 라이토가 그런 엄청난 살인을 기획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렇게 보면, 이 획기적인 작품의 이면은 참 어둡다고나 할까요.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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