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그런 가게 있으신가요? 친구들에게 소개하고픈 가게. 혹은 여행을 떠날 때마다 꼭 한 번씩 들려보는 가게. 가끔 별다른 이유 없이도, 그 가게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문득 솟아나서 설레는 가게.
제게는 그런 가게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일본의 도큐핸즈입니다.
도큐핸즈를 처음 만난 것은 2002년. 월드컵이 열렸던 그해 여름, 처음 떠난 일본 도쿄 여행에서였습니다. 신주쿠부터 시작해 천천히 걸어서 시부야까지 내려오는 코스를 잡고 여행을 시작했는데, 바로 그 신주쿠에서 도큐핸즈를 처음 만났습니다.
첫인상이요?
신기하고 정신없었죠. 백화점 같은데 백화점은 아닙니다. 1층부터 8층까지였던가요? 건물 전체에 평소에 보기 힘들었던 상품, 예쁘고 아기자기한 상품들, 기발한 아이디어를 담은 상품들이 가득 차 있었으니까요. 옷과 화장품, 식당과 식품으로 가득한 어느 평범한 매장들과는 달리, 그곳에는 뭔가 눈이 반짝일만한 상품들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덕분에 거기서 노느라 여행 일정은 2시간 가까이 뒤로 밀렸지만요. (그리고 더 큰 도큐 핸즈가 시부야에 있었습니다 ㅜ_ㅜ)
도큐핸즈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그렇다면 도큐핸즈는 어떻게 태어났을까요? 재밌고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는 이런 매장이,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일까요?
도큐핸즈의 시작은 1976년. 예. 생긴지 벌써 30년도 훨씬 넘었습니다. 현재 점포는 일본 내 29개이며, 직원은 2,800명 정도 됩니다. 취급하는 물건의 개수는 무려 30만여개. 그리고… 이 매장은, 어떤 유통이나 판매 전문회사가 아닌, 건설 회사가 만들었습니다.
예? 도큐핸즈 같은 매장을 무슨 건설 회사가 만드냐구요? 그게 그러니까요… 정확하게 도큐핸즈를 만든 회사는 도큐 부동산이란 회사입니다. 땅을 사서 건물을 지어서 파는, 그런 회사죠.
이 회사가 현재 시부야 도큐핸즈가 위치한 땅을 매입한 것이 1972년입니다. 그런데 1973년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나면서 경제가 조금 혼란해집니다. 게다가 이 회사가 매입한 땅은 당시 만들어진 시부야 번화가에선 좀 동떨어진 곳. 결국 이 땅을 팔기가 어려워지자 그냥 회사에서 직접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만들어진 매장이 바로 도큐핸즈입니다.
...문제는 이들이 부동산 회사 사람들이었다는 것. 일단 매장에서 취급할 물건은 ‘부동산 회사’이니 ‘주택 관련 상품(D.I.Y & Home Improvement)’을 팔자고 정했지만, 소매 사업을 해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라 어떤 제품을 어디서 사서 어떻게 팔아야 할지 알고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일일이 전화번호부를 뒤져가며 업체를 찾아서 하나하나 물건을 매입해서 만들었던 것이 시작할 때의 도큐핸즈.
고객이 원한다면, 수요를 창조하라
조금 황당한 탄생 비화인가요? ^^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지금의 도큐핸즈는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기존 유통망과 판매 전문가들의 마인드, 잘 팔리는 물건만을 찾는 것에서 벗어나,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쓸 수 있는 모든 상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전문가 용품을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판매하는 만큼, 그 제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열정적인 전문 판매 사원을 둘 수가 있었구요.
지금은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그러다 보니 생긴 도큐핸즈의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객이 원한다면 어떻게든 구해서 판다는 것. 예를 들어 전문 업체에 공급되는 작은 부품들은 다량으로만 판매됩니다. 하지만 그런 부품 한두 개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있습니다. 그럼 도큐핸즈가 다량으로 매입, 하나하나 소량으로 재포장해서 판매합니다.
다른 하나는 고객이 원할 것 같은 제품을 판매한다는 것. 스티브 잡스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기 전에는 자신이 그 제품을 원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리고 판매자들은 고객에게 많이 팔리는 상품만을 갖다놓고 싶어 합니다. 새로운 상품들은 그래서 시장에 진입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도큐핸즈의 직원들은 소비자의 눈으로 제품을 찾습니다. 그래서 소비자가 필요할 것 같은 상품을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들여와 선보입니다. 다른 매장에선 볼 수 없는 재미있고 창의적인 상품들을 도큐핸즈에선 잔뜩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크리에이티브 라이프 스토어. 도큐핸즈가 자신의 이름 앞에 그런 모토를 가져다 붙인 것이 괜히 그런 것이 아닌 이유입니다.
한국에도 도큐핸즈 같은 창의상품 유통채널이 필요하다
지금 제 곁에는 ‘어른의 연필’이란 펜이 놓여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즐겨 쓰던 연필을 새롭게 디자인해, 샤프처럼 쓰기 편하면서도 연필같이 부드럽게 써지는 제품입니다. 지난번에 도큐핸즈에 갔다가 우연히 만났고, 작년 일본 필기구 대상을 받은 제품이라기에 사왔는데 역시 좋아서 계속 쓰고 있는 제품입니다. 그런데 과연 한국에는, 이런 멋진 아이디어 제품이 없을까요?
아뇨. 분명히 존재합니다.
당장 상상마당이나 HIT 500 Plaza만 가봐도 사고 싶은 예쁜 상품들이 넘쳐나니까요. 하지만 그 매장을 아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알아도 쉽게 찾아가기엔 매장도 적고 위치도 좋지 않습니다. 막상 좋은 상품을 만들어도 팔 곳이 없다는 창의상품 개발자들과 좋은 상품을 사고 싶어도 살 곳이 없다는 소비자의 불만은 바로 이 지점에서 만납니다. (이런 창의상품 개발자들의 고민은 "아이디어 상품, 만들어도 팔 곳이 없다?"에서 이미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도 도큐핸즈 같은 창의상품 유통 채널이 필요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많은 회사에선 홈쇼핑 방송 한번 나가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소기업엔 그만한 홍보·유통채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창의 상품들은 더 심각할 겁니다. 아이디어는 좋지만, 이런 상품을 팔아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그런데 좋은 상품이라고 인정받고 매장에 입점하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고 팔 기회가 주어진다면, 창의상품을 개발하는 분들이 점점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당장 도큐핸즈같은 대형 매장을 개설하는 것은 무리지만, 지하철역 등에 소형 가게 형태로 들어가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마트에 샵인샵 형태로 선보인다거나, 큰 휴대폰 대리점이나 가전제품 양판점에 소규모 형태로 입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정말 홈쇼핑에 창의 상품 전용 시간대를 개설하는 것도 가능하겠지요. 물론 이렇게 창의상품 유통 채널에 동참하는 회사에겐 별도의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아까운 상품들이 묻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많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상품을 소개하고 싶다는 열정이고, 소비자의 눈으로 상품을 대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샵들이 많이 생겨나면, 내수도 진작되겠지만…. 우리 삶도, 조금씩 바뀝니다. 좋은 상품은 정말, 삶을 바뀌게 만드는 힘이 있으니까요.
어떠세요? 이런 가게, 만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혹시라도 창의상품 유통에 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신 분들은 댓글로 알려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창조경제에 필요한 것, 한국형 도큐핸즈에 대한 아이디어 함께 고민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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