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의 가장 강력한 추진력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아마도 대기업에 대한 증오에서 나올 것입니다. 대기업의 탐욕 때문에 중소기업과 서민의 설자리를 잃는다는 생각이 대중의 분노를 이끌어내고 정치인을 움직입니다.
(사진출처: SBS)
그런데 과연 대기업과 서민의 삶이 서로 대립관계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대기업을 묶기 위한 경제민주화는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립관계가 아니라면 경제민주화도 정당성을 잃습니다. 중요한 것은 팩트, 즉 사실 관계입니다. 과연 경제력집중은 심화되고 있을까요? 그리고 대기업의 이익과 서민, 중소기업의 이익은 서로 대립 관계일까요?
아래 그림을 한번 살펴볼까요?
(김정호, 다시 경제를 생각한다, 21세기북스, 2013에서 인용)
이 그림에서 막대부분은 전체 기업(금융업 제외)의 매출액에서 30대 그룹의 매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숫자는 오른쪽 축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파란 꺾은선 그래프는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이며 숫자는 왼쪽 축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먼저 지니계수를 살펴볼까요?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가구를 측정의 단위로 하는데 이 수치가 낮을수록 평등하고 높을수록 불평등한 소득분포를 의미합니다. 이 계수는 1997년까지 0.27 이하의 낮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외환위기 기간인 1998년 이후 급격하게 높아집니다. 그러다가 2000년 잠시 낮아진 후 다시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이 그래프를 통해서 우리는 지난 15년간 소득불평등도가 대체로 높아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과 대기업으로의 경제력집중은 어떤 관계일까요?
먼저 경제력집중 그 자체의 추세를 살펴보겠습니다. 붉은 막대그래프가 보여주듯이 1998년 외환위기 이전에 전체기업에서 차지하는 30대 그룹의 매출액 비중은 55~60% 수준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떨어지기 시작해서 2003년에는 35%이하까지 내려갔습니다. 이후 2010년까지 35~38% 사이를 오르내리고 있지요.
전체 기간을 놓고 본다면 경제력 집중 정도는 현저히 낮아졌고, 외환위기 이후만을 보면 거의 큰 변동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가 경제력집중이 심해졌다고 믿게 된 것은 어째서일까요? 이것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라는 뛰어난 두 글로벌 기업의 성과가 너무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전체로 본다면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경제력 비중이 현저히 떨어진 것입니다.
요약해보겠습니다. 지난 15년 동안 소득불평등이 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기업으로의 경제력집중은 오히려 낮아졌습니다. 경제력집중 때문에 소득불평등, 양극화가 심해졌다면 오히려 경제력 집중 정도는 높아졌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한국인의 믿음이 틀렸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진출처: 이미지투데이)
지니계수로 대표되는 소득불평등과 대기업의 비중이 밀접한 관련이 있을까요? 사실 둘 사이의 인과관계가 규명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필자가 시도해볼까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소득불평등은 사람을 단위로 해서 측정되고 경제력 집중은 기업을 단위로 하는 개념이어서 둘 사이에 어떤 관계인지 추측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비중이 커지고 대기업 직원의 숫자와 소득이 높아질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일반적 믿음과 반대로 소득불평등도는 오히려 낮아질 수 있습니다. 대기업 직원의 소득과 고소득 중소기업 사장의 소득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대기업 직원과 중소기업 직원 사이의 격차가 벌어져서 소득불평등도가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지난 15년간 소득불평등은 심해졌는데 대기업 비중은 줄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면 오히려 역관계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격차에 대한 일반적 믿음도 틀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보통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이라면 대기업과 거래를 하는 중소기업의 이익률은 대기업과의 거래관계에 없는 중소기업의 이익률보다 낮아야 합니다. 그런데 경제개혁연대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위평량, 대기업과 중소기업(하도급기업 및 일반중소기업)간의 경영격차 분석과 시사점, 경제개혁연구 2011-26, 경제개혁연구소)
위의 표를 살펴볼까요? 2000년 이후 10년간 일반 중소기업의 순이익률은 2.4%입니다. 그런데 대기업과 하도급 관계인 중소기업은 4.65%로 두 배나 높습니다. 4.65%는 대기업 원사업자의 순이익률 4.74%와도 거의 차이가 없는 숫자입니다.
물론 대기업 가운데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곳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를 전체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왜곡입니다. 평균적으로 보면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힘든 것이 아닙니다. 대기업으로 인해서 돈을 버는 중소기업이 많은 것입니다.
본래 이분법적 세계관은 인간의 본성에 잘 들어맞습니다. 흥부와 놀부, 다윗과 골리앗, 콩쥐팥쥐 이야기가 모두 그렇지요. 그러나 실제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지니계수를 보면 대기업과 서민은 서로 적이 아닙니다. 이익률을 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도 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친구 관계입니다. 이처럼 사실과 통계를 통해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하겠습니다.
김정호(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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