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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일감 몰아주기 규제, 바람직한 방향은?



신석훈 박사, 경제민주화 특강, 한국경제연구원



작년부터 경제민주화 정책으로 제시되었던 것들이 최근 법제화 작업을 거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계열사간 ‘부당 내부거래(일감 몰아주기)’ 규제강화를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논의가 진행중입니다.


하지만 논란이 많습니다. 계열사간 거래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우리나라는 사적자치원칙과 계약자유원칙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누구와 어떠한 내용의 거래를 할지는 계약 당사자의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아무리 계약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라도 공익(公益)을 훼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공법인 공정거래법(제23조1항7호)에서는 ‘부당한’ 계열사간 거래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공정거래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은 ‘공정경쟁보호’이므로 여기서 의미하는 ‘부당한’ 거래란 ‘공정경쟁을 훼손’하는 거래일 것입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계열사간 지원행위 자체가 공정경쟁을 훼손한다고 보는 듯 합니다. 대기업집단 소속 계열사들은 서로 지원하며 활동합니다. 따라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는 일반 기업과의 경쟁에서 항상 유리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집단 오너가 지배하는 계열사 A, B 가 있다고 할 때 A가 일감 몰아주기 등의 방법으로 B를 지원을 할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는 B의 경쟁업체인 甲과의 경쟁에서 항상 우위를 차지하게 되므로 계열사간 지원행위는 공정경쟁을 훼손한다는 것입니다.


직관적으로 보면 맞는 말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습니다. 만일 계열사 A와 B를 개별회사 형태가 아닌 C 라는 회사의 a사업부와 b사업부 형태로 운용하면서 a사업부에서 b사업부로 일감을 몰아주어 지원할 경우는 어떨까요? 법적 형태만 바뀌었을 뿐 경제적 실질은 동일하므로 경쟁업체인 甲이 경쟁에서 불리한 지위에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a사업부가 b사업부를 지원하는 것을 두고 규제해야 한다는 사람은 없고 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계열사 A가 다른 계열사 B를 지원하는 행위 역시 경쟁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규제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물론 지원을 받은 계열사가 지원에 힘입어 생산가격을 원가 이하로 낮춰 자신의 경쟁사를 시장에서 몰아냈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경쟁을 훼손하는 행위이므로 규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원행위를 했다고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을 받은 계열사가 별도의 경쟁제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규제하는 것입니다.


부당내부거래,신석훈 박사, 경제민주화 특강, 한국경제연구원(사진출처: SBS뉴스)


‘지원행위 자체’가 경쟁을 훼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원받은 회사가 별도의 경쟁제한 행위를 했을 경우 경쟁제한성 여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추가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며 규제하면 됩니다. 만일 지원한 회사와 서로 공모하여 이러한 행위를 했다면 담합으로 처벌하면 됩니다. 굳이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금지 규정에서처럼 ‘지원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부당성(공정경쟁제한성)’여부를 판단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그래서는 제대로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규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계열사간 ‘지원행위’를 규제해서 ‘공정경쟁’이 훼손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다른 나라들처럼 지원받은 회사가 구체적으로 경쟁제한행위를 했을 때 규제하면 될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의 핵심은 더욱 강도가 세졌습니다. 아예 지원행위가 경쟁제한성을 초래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필요 없이 ‘지원행위’만 있으면 바로 규제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왜 경쟁을 제한하지도 않는 계열사간 지원행위를 규제하려는 것일까요? 혹시 공정거래법상 ‘지원행위’를 규제하려는 목적이 다른데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금지 규정은 공정거래법 본연의 임무인 ‘공정경쟁’이라는 공익 보호보다 오히려 대기업집단 오너가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득하는 것을 막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최근 국회의 개정논의도 이러한 행위를 좀 더 손쉽게 규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오너가 특정 계열사로 이익을 빼돌리기 위해 이 회사로 다른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주도록 지시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를 통해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엄격히 규제해야 합니다. 회사의 가치가 일감 몰아주기 형태로 유출되어 일감을 몰아준 계열사들의 소수주주들이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너의 사익추구행위를 규율하는 것은 보통 사법(私法)인 회사법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공법(公法)인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 금지규정이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고  최근에는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여 이러한 역할을 더욱 강화하려는데 있습니다.

소수 주주들에게 피해를 주는 부당 지원행위를 규율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지, 그 수단이 공정거래법이든 회사법이든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정당국의 사전적이고 획일적인 규제를 중심으로 하는 공법과 피해를 입은 이해당사자가 사후적으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손해를 배상받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사법은 서로 다른 기능을 수행하며 구분됩니다.


회사의 이해당사자가 회사법 규범에 근거를 두고 기업집단의 최종 의사결정자를 규율할 경우, 사전적 행정규제와 달리 자동적이고 획일적으로 규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해관계 당사자가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며 스스로에게 가장 이득이 되도록  선별적으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합니다. 이런 점에서 시장기능을 활용한 오너 행위통제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먼 법원에서의 소송과정을 통해 행위의 부당성을 심도 있게 분석함으로써 정당한 계열사간 거래의 위축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회사법상 경영진의 충실의무 규정, 자기거래금지 규정, 회사기회유용 금지 규정 등이 바로 계열사간 거래를 통한 오너의 사익추구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른 나라 회사법보다 강화된 형태로 우리나라 회사법에 제도화 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시장메커니즘을 활용한 오너 행위통제, 즉 회사법을 통한 규율이 아직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지원행위 금지규정에 근거해 오너의 사익추구행위를 감시할 필요성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열사간 거래로 오너가 개인적 이익을 취득했는지, 그래서 소수주주들이 피해를 입었는지를 제대로 밝히지 않고 규제해 왔다는 것입니다. 계열사간 거래가 시장가격과 다르게 이루어지면 당연히 문제가 있는 거래로 보며 규제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거래라는 것은 모름지기 거래 당사자들간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이상적인 하나의 가격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여기서 벗어나는 거래를 비정상적인 내부거래로 보며 규제해 온 것입니다. 최근에는 시장가격에 거래를 했더라도 물량을 몰아주면 비정상적인 거래로 보며 규제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획일적인 기준으로 규제하며 개별거래의 특수성과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다보니 효율적인 계열사간 거래까지 규제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본연의 업무인 경쟁제한행위 규제가 아닌 오너의 사익추구행위에 이용되는 계열사간 지원행위를 규제할 경우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이것은 원래 회사법에 기초해 법원이 해야 하고 모든 나라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회사법적 규율 메커니즘이 잘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하에서 불가피하게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하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부당내부거래, 신석훈 박사, 경제민주화 특강, 한국경제연구원(사진출처: 파이낸셜투데이)


따라서 소수주주들에게 피해를 주는 계열사간 ‘부당’ 내부거래행위를 규명하여 회사법적 규율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오너의 사익추구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마치 공정거래위원회의 본업인 것처럼 인식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러나 최근 공정거래법 개정논의는 이러한 인식의 바탕위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오너의 사익추구행위를 강력히 규제할 수 있도록 명시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계열사간 거래가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오너의 사익추구를 위한 것인지, 이러한 거래로 누가 이득을 보고 손해를 보았는지에 대한 판단은 누가 해야 할까요? 기업에 대한 정보와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고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주주들이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 내부거래를 조사하여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줌으로써 주주들의 판단과 감시를 도와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열사간 부당내부거래를 근절하겠다며 전면에 나서 강력히 규제하려고 할 경우 정상적인 계열사간 거래마저 광범위 하게 규제할 위험성이 커지게 됩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계열사간 거래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제반 손익을 감안하여 면밀히 검토 후 선별적으로 판단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그래왔듯 시장가격과 차이가 나는 거래, 일정한 물량을 넘어서 일감을 몰아주는 거래 등 획일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여기서 벗어나는 거래를 강력히 규제하려고 할 것입니다.      
                         
미국 속담 중에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이까지 버리지 말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잉규제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엄마(국가)가 더러운 목욕물(부당한 일감 몰아주기)을 버리는 가장 효율적이고 신속한 방법은 목욕탕을 들고 뒤집는 것입니다. 목욕물은 말끔히 비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목욕하고 있던 아기(정상적인 계열사간 거래)도 함께 바닥으로 내동댕이쳐 질 것입니다.


아기가 목욕탕에서 평화롭게 놀 수 있도록 해 주면서 목욕물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국회에서의 공정거래법 개정논의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계열사간 거래가 정말로 경쟁을 훼손하고 소수주주들에게 손해를 주는 ‘부당한’ 거래인지를 공정거래위원회가 명확히 밝히지 않고도 손쉽게 규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목욕탕을 뒤집어 목욕물을 버리는데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목욕탕을 지나치게 흔들지 않고도 목욕물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나가는 것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정책의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헌법 제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이념이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헌법 제119조 1항)’라는 ‘창조경제’의 이념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신석훈 박사(한국경제연구원)

신석훈 박사, 경제민주화 특강, 한국경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