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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간 거래 규제, 신중해야 할 이유는?


요즘 경제민주화가 사회적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감몰아주기’란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약간은 부정적인 어감을 지닌 이 단어를 좀 더 중립적으로 ‘계열사간 거래’란 용어로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리고 이 계열사간 거래란 무엇인지, 과연 일부에서 공격하는 것처럼 무조건 나쁜 것인지, 지금부터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계열사간거래


1. 계열사간 거래, 왜 생길까요?


계열사간 거래는 같은 그룹-대기업집단에 속해있는 회사끼리 재화나 서비스를 거래하는 것을 말합니다. 2011년, 46개 대기업집단의 계열사간 거래는 전체 매출액의 13.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매출은 아닙니다. 하지만 의미 있는 비율이기도 합니다.

정부에서는 대기업들이 계열사가 쉽게 돈을 벌 수 있도록 일감을 몰아주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우리 사회의 경제력 집중이 심해지고 중소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간다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이를 강력히 규제하기 위해 각종 법안을 발의하고 행정력을 동원하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어떤 현상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위해서 우선 그것이 왜 일어나는지 알아야합니다. 계열사간 거래는 왜 일어나는 것일까요? 



수직계열화


사람들은 단순하게 생각하기 좋아합니다. 계열사간 거래가 어떤 시스템에 의해 일어나는 지 생각해보려는 사람은 적습니다. 보통은 그저 대기업이 특정 계열사를 밀어주기 위해 계열사간 거래를 하는 것이라고 간주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어떤 것도 알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알아보면 진실은 따로 있습니다.


계열사간거래(사진출처:조선비즈)


우리나라 대기업 집단은 저마다 주력 산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삼성은 전자, 현대는 자동차, SK는 석유화학 같은 분야가 주력산업입니다. 이런 주력산업은 생산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수직계열화를 구축해 놓았습니다.

수직계열화는 원료를 가져오는 과정부터 완제품의 생산 및 유통과정까지 생산활동 전체에 관련된 기업들로 그룹을 구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끔 대기업 집단이 계열사를 늘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새로 생긴 계열사 대부분은 주력산업과 연관된 분야입니다. 원료와 부품 생산 같은 부분이지요. 때문에 계열사간 거래는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 10대 그룹의 수직계열화 현황을 한번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신규계열사의 85%가 수직계열화 기업입니다. 이들 기업은 주력계열사와 거래비중이 높습니다. 특히 중간단계에 있는 기업은 주력계열사에 대해서만 매출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석유회사인 SK에너지는 SK해운을 통해 중동지역으로부터 원유를 수입합니다. 그리고 수입한 원유를 휘발유나 경유로 정제하여 SK네트웍스를 통해 유통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을 특정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을까요? 이것은 그저 수직계열화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입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도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의 특성


계열사간 거래의 이유는 단지 수직계열화만이 아닙니다. 각 산업에는 그 특성에 의해 계열사간 거래가 많을 수밖에 없는 분야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광고의 경우 그룹 전체의 일관된 브랜드 이미지나 홍보전략을 공유해야 합니다. 따라서 계열사마다 따로 외주를 주기 곤란합니다. 또한 신제품 개발과 관련된 경우에는 외부에 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단단한 보안 유지가 필요합니다.

사내 통합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하는 SI(시스템 통합관리)사업 역시 계열사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전산망 업데이트를 자주 해야하는 필요에 빠르게 대응하고 경영전략이 해킹 등으로 흘러나가지 않게 하는 보안 유지의 중요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룹 전체의 시스템 관리는 한개 업체가 전담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광고, SI 등의 계열사는 기존 회사의 사업부서가 별도 법인으로 독립한 경우가 많습니다. 계열사 별로 존재하던 광고, SI, 물류 사업부 등을 따로 떼어낸 후 업무분야 별로 결합시켜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것입니다. 기존에는 사내에서 이뤄지던 거래가 형태만 계열사간 거래로 바뀐 경우입니다. 따라서 이런 업종은 계열사간 거래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요. 이 경우를 일감몰아주기라고 말하는 건 무리한 단정입니다.  



2. 계열사간 거래 규제, 신중해야합니다.


물론 모든 계열사간 거래가 결백한 것은 아닙니다. 서두에 설명한 것처럼 계열사에게 부당한 이득을 주려고 하는 경우가 실제로 벌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명백한 ‘일감몰아주기’가 있습니다. 입찰 과정에서 비싼 가격을 책정해 주기도 하고, 경쟁력이 있는 다른 기업을 배제하고 계열사만을 상대로 거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현행법에서도 이런 비정상적 거래행위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대규모기업집단에 대해서는 계열사간 거래 금약, 거래행위 유형 등을 상세하게 공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공시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계열회사의 이익을 위해 가격이나 수량 조건을 현저하게 유리하게 적용하는 계약행위는 공정거래법에 의해 처벌받게 됩니다. 또한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한 총수 일가의 부당한 이익을 막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 과세도 부과하고 있습니다. 아래 표를 보시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는 막아야 합니다. 분명한 불법행위는 처벌해야겠지요. 하지만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공정거래법과 상법, 상속증여세법 등을 통해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미 일감몰아주기는 충분히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일감몰아주기가 아닌 모든 계열사 간 거래를 잠재적 범법행위로 규정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와 기업내부 사정과 얽혀있는 계열사간 거래가 많기 때문입니다. 계열사간 거래는 효율성과 안전성 때문에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과 해외기업도 하고 있는 거래형태입니다. 모든 계열사간 거래를 규제한다면 기업의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고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미 국내 SI 업체들은 상당한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계열사간 거래를 규제하려는 정부의 움직임 때문에 공공사업 입찰이 제한되고 계열사간 거래가 위축되었습니다. 이렇듯 기업활동과 관련된 결정에는 신중함이 요구됩니다. 부당한 일감몰아주기는 현행법으로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계열사간 거래를 규제하려는 것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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