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스토리/자유광장은 지금!

법원 판결, 기업 경영 현실을 반영해야 합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기업가 정신(Spirit of Entrepreneurship)'을 강의하는 하이디 로즌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일관성이라고 말합니다. A라는 상황에서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B라는 상황에서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지 않을 때, 비로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거지요. 굳이 인간관계만 놓고 보지 않아도 그렇습니다. 일관성이란 요소는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요소임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법원에서 내려진 판결은, 한국 사회의 많은 관계에서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판별점이 되기에 더더욱 남들이 납득할 수 있고, 일관성 있는 결론을 가져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법원은 그렇게 판결을 내리고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 경영판례에 관해서 만큼은, 확실히 불만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12월 10일(목).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는 경영판례연구회(회장 전삼현 숭실대 교수)가 개최되었습니다. 경영판례연구회는 전삼현 회장을 중심으로 총 6명의 연구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법원 판례 중 기업 경영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판결을 판례평석하여 개선 의견을 제안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날 경영판례연구회에서는 법원이 일관성 있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제공하여야 한다는 점과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행정부의 유권해석을 바로 잡고, 범죄 행위에 대한 법조항대로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 제기되었습니다. 기업들의 경영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판결, 그때그때 다른 판결로 인하여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는 것이죠.

 

경영판례연구회는 총 3회에 걸친 발표로 진행됐는데요. 첫 번째 발표는 행정지도로 인한 라면값 인상에 관한 정보교환의 위법성, 두 번째 발표는 계열사 부당지원과 업무상 배임죄, 세 번째 발표는 사내하도급 불법파견 판단 기준의 점입가경식 전개와 문제를 주제로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경영판례연구회 공개세미나에서 발제된 내용을 살펴볼까요?

 

첫 번째 주제는 행정지도로 인한 라면값 인상에 관한 정보교환의 위법성. 숭실대학교 전삼현 교수가 발표를 맡았는데요. 전교수는 여기서 행정지도로 인한 기업 가격담합 처벌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공정거래법에서는 행정지도가 부당한 공동행위의 원인이 되더라도 부당한 공동행위는 원칙적으로 위법하고 다만, 그 부당한 공동행위가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의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하여 법 적용이 제외된다고 정하고 있는데요.

 
전삼현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 정부의 행정지도는 실질적으로 규제와 같이 작용하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으며, 결국 기업은 담합행위라는 이유로 법적 분쟁에 휘말리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안 따라도 처벌이고 따라도 담합으로 처벌된 사례도 있고요.

 

 

이에 대한 대안으로 ➀실질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행정지도에 대하여 상법상의 업무집행 지시자에 대한 책임과 유사한 규정을 신설하여 ➁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사업자가 면책되거나 책임을 감경할 수 있는 근거규정을 두어 행정지도로부터 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어진 발표는 단국대 이정민 교수가 계열사 부당지원과 업무상 배임죄를 주제로 발제했습니다. 이교수는 배임죄 구성요건에 있어 ‘손해’개념에 ‘손해 발생의 위험’을 포함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됨을 지적했습니다. 우리나라 법률에서 배임죄는 ‘손해 발생’을 요구하고 있으나, 법원에서는 손해 발생 없이도 처벌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바로 아래 사례처럼 말이죠.

 

 

이에 대해 이정민 교수는 우리나라 배임죄에는 미수범 규정이 있으므로 손해 발생 위험만이 존재하는 경우 배임죄의 미수범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손해 발생의 위험’만으로 배임죄를 묻기 위해서는 입법을 통해 법을 개정하거나 적어도 재산상 실해 발생의 위험은 현실적인 재산상의 손해와 동일한 정도의 법익침해로 평가될 수 있는 경우로 엄격하게 제한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죠. 이어 검사는 그 ‘재산상 실해의 위험성’이 ‘현실화된 재산상 손해’와 동일한 정도에 이르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발제자는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이상희 교수. 발표 주제는 사내하도급 불법파견 판단 기준의 漸入佳境(점입가경)식 전개와 문제’입니다.

 

 

최근 연속공정 전체를 파견으로 낙인찍는 것은 자칫 통상임금 소송과 같이 전국적인 불법파견 소송 대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는데요. 이상희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상 하도급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과 정부 사내하도급가이드라인에 맞춘 원청의 배려를 파견 요소로 보는 것은 정부 정책의 불신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개별공정별로 보지 않고 전체 공정을 통째로 파견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은 산업현장에서 도급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의심스럽게 하여 불법파견 소송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또한 도급의 전문성, 기술성 등을 요구하는 것은 오늘날 분업과 산업도급체제가 일반화되어 있는 산업사회에 맞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상희 교수는 상급심에서는 독일이나 일본 등 해외의 안정적이고 구체적인 사내하도급 불법파견 판단 경향을 고려하는 등 공정별 구체적 심리를 통한 판단 방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지금까지 경영판례연구회 공개세미나에서 나온 주제발표 내용을 살펴봤는데요. 기업 경영환경에 전체적으로 혼란을 주는 사례가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발표에 제시된 내용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판례가 많이 있을 텐데요. 이에 대해 전삼현 교수(회장)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경영판단이 개입된 사건의 경우에는 사법부의 판단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한 시대’ 라며 법원이 기업의 경영환경을 고려한 판결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으로는 실질적인 기업 경영 환경을 고려한 판례가 늘었으면 좋겠는데요. 경제 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업의 경영환경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부디 기업 경영환경을 저해하는 골든타임을 놓치는 법원의 실수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본 포스팅은 전경련 경제교육실 이민구 연구원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