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모든 공동체를 포괄하는 정치공동체라는 특성을 갖는다. 때문에 국가가 갖는 리더십 은 일반 리더십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국가 Statecraft의 주요 요소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은 국가적 리더십이라는 특수한 자질이 필요하다. 국가를 통치하는 능력을 ‘Statecraft’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지우지하는 특별한 능력이다. 통치술, 즉 Statecraft의 요소는 첫째, 시대적 과제를 인식하여 거기에 맞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 이다. 둘째, 그 비전을 구현하는 정책을 만들어내고 추진하는 능력이다. 셋째, 제도를 관리하는 능력이다. 넷째,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는 능력이다. 마지막으로는 대외적인 능력을 들 수 있 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분단이라는 특수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덕목이 특별히 요구된다.
지금은 권위주의 시대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는 문민정부 이후 현재까지 네 분의 대통령을 경 험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그다지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면 왜 민주화 이후에 등장한 대통령들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지 못하는 걸까? 그것은 ‘창업’과 ‘수성’의 차이를 간과해서일 거라고 본다. 당태종의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도 수성의 어려움이 논의된 바 있다. 임금이 있는 시대에도 수성이 어려웠는데, 민주화 시대에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은 훨씬 더 힘든 일이다.
현재 동북아정세를 비롯하여 우리나라가 처한 국내외적 상황으로 볼 때, 2013년 이후를 이끌 어나갈 대통령은 정말 위대한 통치능력을 보유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지금의 정치현실이 그런 지도자를 배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시대는 지금 뛰어난 통치능력을 갖춘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통치능력의 요소, 비전, 정책 등도 굉장히 중요하겠으나, 그 통치능력의 근본만이라도 확실히 인식하는 사람이 등장해 준다면 참으로 다 행이라고 생각한다.
국가 형성·유지의 핵심 가치는 ‘공공성’
대통령이 되면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 나라를 다스린다. 국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가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모 르니 자연히 대통령직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국가, 민주주의…, 이들은 워낙 익숙한 단어 라서 본인들은 익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따라서 대통령직은 과연 무엇 이고 민주주의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다.
무릇 국가는 정치공동체다. 이런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 지하려면 공공성이란 가치에 기초해야 한다. 너와 내가 같 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연대의식이 없다면 공동체 구성 이 안 될 것이며, 민주주의도 형성될 수 없다. 그런 연대의 식을 가져오는 핵심 가치가 바로 공공성인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국가란 공공성에 대한 가치가 제대로 옮 겨진 것’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을 보 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공화 주의가 무엇인가? 결국 공화주의 정신은 ‘공공성’에 있는 것이다.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이 공공성이 바로 국가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핵심이 되는 가치이다.
국가의 강제력은 ‘공공성을 추구하라’고 국민이 준 것
국가는 국민을 상대로 무서운 강제력을 행사하는데, 강 제력의 대표적인 것이 납세, 국방의 의무 등이다. 국가가 이런 강제력을 행사하는 정당성이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이 힘을 준 것은 국민이다. ‘공공성을 추구하라’는 의미에 서 국민이 준 것이며, 그래서 국가가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내가 행사하는 강제력이 이 렇게 무서운 힘이고, 그러한 공권력이 국민에 의해 생긴 것 이라는 의식이 투철해야만 한다. 이러한 의식이 없으면 권 력에 대한 사유의식이 생긴다. 즉, 옛날의 임금과 같은 생 각을 갖게 되어 국가를 사유물로 여기는 것이다. 역대 대 통령들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그 생각의 뿌리에 권 력의 사유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러한 의식은 권력의 남용과 부정부패의 원인이 된다. 조선후기의 나쁜 전통으로 불리는 가신주의적 폐해가 수도 없이 생기게 되 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25년이 지났다. 그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들이 대통령에 취임했으나, 지금도 민주주의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인 현실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국가나 정치를 운영하는 하나의 방 식이고 사회적 삶의 방식을 의미하는 것인데, 대통령들의 잘못된 인식은 제도나 체제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 절차적 형식만 갖추면 민주주의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 거나, 아니면 이를 지나치게 이상화했던 것이다. 과거 대통 령 중 몇 분은 민주주의를 장식용으로 여긴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혹은 민주주의를 투쟁과 저항의 의미로 인식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양쪽 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한 셈이다.
결국 대통령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은 공공성 의 상징이 되어야 할 국가운영에 민주주의를 형식으로만 갖춰놓고 막상 정치는 자의적으로 한 것을 의미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은 국민이라는 집단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인식해야 하나, 정권을 위임받았다는 착각에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과오를 저지른 것이다.
일례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심사숙고한 만큼 논쟁 의 대상이 없다’는 인식, 즉 민주주의 국가에서 논쟁의 대상이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은 사업가적 마인드에서 나 온 것이다. 민주주의는 사업가적 마인드로 보면 여러모 로 낭비적인 부분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판단에 따라 과정과 절차를 생략해 버리면 비민주주의가 되어버 린다. 효율성을 생각한 좋은 말이었지만, 결과는 비효율· 비생산적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시각에 따라 낭비적인 요소로 보이더라도 공론화 과정은 꼭 필요한 것이다. 동 기도 좋고, 애국적 마인드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이 를 해결하는 방식이 민주주의적 절차를 무시한 것이라면 다 망가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의에 찬 우행(愚行)은 악행(惡行)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법론이 중요한 것이다. 아무리 목 적이 숭고해도 방법이 잘못되면 소용이 없다. 대통령이 총 재로 있는 집권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 국회를 지배하려 는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등 삼권분립을 왜곡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의회정치가 정당정치와 민주주의의 핵심임 에도 껍데기만 남아버린 우스운 정치가 되어버림으로써 우리의 대의민주주의가 극도의 불신을 받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대통령들은 소통 때문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런 데 사실 소통이라는 것은 상당부분을 정당이 해야 하는 것이다. 집권당이 활발하게 국민을 상대로 설명하고 설득 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생각을 집약하여 행정부에 전달하 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이른바 소통의 과정이다. 따라서 집권당의 역할이 중요한데,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면 대통 령 스스로 소통의 창구를 망가뜨리곤 한다. 이 또한 민주 주의에 대한 인식의 오해로 인한 것이라고 본다.
국민은 풍요로운 권위주의도, 가난한 민주주의도 원하지 않아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주로 20~30대의 집단을 계속 만 나왔는데, 지금 젊은 사람들의 분노를 논리로 설득할 시기 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분노가 이렇게 과하면 폭발수준이 될 수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못마땅하게만 보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풍요로운 귄위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난한 민주주의 또한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성숙시키기 위한 기반으로서 경제적 민주주의의 뒷받침은 불가피하다. 정도의 문제가 있겠지만,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에 대 한 이해와 조화를 위한 노력이 있어야 향후 한국사회를 순 조롭게 이끌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과정은 생략되고 완성품으로 주어진 것이었다. 즉, 역사적·제도적 배경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수입되어진 것인데, 따라서 어떤 것이 우리의 역사적 배경에 맞춰진 한국적 민주주의냐고 묻는다면 지금부터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이제껏 대한민국을 운영해온 국가운영의 원리는 ‘박정희 모델’의 연장선상이었다고 본다. 따라서 향후 대한민국의 5년을 이끌어갈 지도자는 ‘포스트 박정희 모델’이라는 새로운 국가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Q2. 국가와 개인 간의 신뢰가 없는 한 공론화 과정이 굉장히 어려워 보이는데 이것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그리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해가 힘들다. 경제적인 활동에 어떻게 민주화 콘셉트가 적용되는 것인지 설명 부탁드린다.
최근 SNS의 발달로 개인의 의사가 순식간에 공론화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따라서 공론화 과정은 피할 수 없는 것이나, 우리는 아직 사회적 합의를 해가는 훈련이 부족한 듯하다. 따라서 힘들겠지만, 대통령이 이 과정을 이끌어가야 한다. 지금 사회가 이러하니 정부는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고자 한다고 제시하고, 거기에 대한 찬반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구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한편, 국가는 시장질서를 공정하게 관리할 책임이 있다. 결국 경제민주화라는 것은 불평등이 구조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와 정책을 통칭해서 부르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나치게 대기업을 견제하는 것은 말이 안 되지만, 우리의 현실을 잘 살펴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가능하면 다수의 국민들이 분노를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Q3. 인사의 공공성을 말씀하셨는데, 공공성 여부에 대한 뚜렷한 경계가 있는 것인가?
분명한 기준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과 같이 고락을 하면서 공을 세운 사람을 내치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국가를 운영하는 것은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대통령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해서 그 사람들에게 중요한 보직을 나눠주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보직 중 대통령과 교감이 잘 되는 사람이 꼭 필요한 소수의 자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머지 자리는 분야별로 인재들이 꼭 있기 마련인데, 그 사람이 나와 인연이 있든 없든 간에 관계치 않고 쓰면 된다. 그렇게 사람을 등용하고, 괜찮은 사람을 썼다는 평가가 나오면 민심은 긍정적으로 흐른다. 그러면 인사권자인 대통령도 편해진다. 결국 공공성의 문제인 것이다.
Q4. 국가 Statecraft의 요소를 몇 가지 말씀하셨는데,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 비추었을 때 너무 이상적인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닌가 싶다. 또, 2013년 이후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통치능력과 비전을 보여줄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언론에서 거론되는 사람 중에는 아직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
아직까지는 대통령 선거 국면이 아니다. 시기적으로 레이스가 시작되면 그때 각자 자신들의 포부를 밝힐 것이고, 그걸 보면 어떤 수준의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지금 언론에 거명되는 분들이 그간의 행적 및 과정에서 했던 말들을 봤을 때 아직은 가능성을 보지 못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좋겠다.
윤여준 (前 환경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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