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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경제가 산수(算數)처럼만 된다면...(권혁철 자유기업원 시장경제연구실장)

[요약]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토·일요일 휴일근무를 법정 허용 근로시간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근로시간을 단축시켜 일자리를 나누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도는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와 시장의 움직임은 간단한 산수식이 아닌 복잡계(complex system)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2004년에 근로시간 강제단축의 경험을 갖고 있다. 당시의 장밋빛 전망은 현재 어두운 잿빛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또 다시 대기업의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내세우는 것은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전형적인 '대기업 때리기’로 보인다.
 
또 다시 등장한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Job Sharing)가 다시 등장했다. 1997년 경제위기, 그리고 2004년 주당 근로시간 4시간 단축 때 논의 되었던 이후 6-7년 만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주 25일 “대기업의 근로시간을 단축해서 일자리를 나누는 좋은 일자리 만들기를 적극 검토해 본격적으로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린 후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법정 허용 근로시간은 법정근로시간 40시간+연장근로시간 12시간, 총 52시간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휴일은 토·일요일 각각 8시간씩 근로가 가능하도록 하되 법정 허용 근로시간에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런데 정부가 이번에 추진하려는 방안에 따르면 바로 예외로 되어 있는 이 휴일근무를 법정 허용 근로시간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은 주당 52시간으로 엄격한 제한을 받게 된다. 고용유연성이 세계 최하위인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근로시간 유연성까지 제한받게 된다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이는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늘려보려는 정부와 정치권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경제와 시장이 산수식처럼만 움직인다면...
 
근로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의 기본 발상은 현재 근무하고 있는 근로자들의 근로시간을 줄이면 남게 되는 시간이 생기고 이를 다른 근로자들을 채용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다음과 같은 아주 간단한 산술식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총생산=근로자의 수 x 근로시간>, 즉 일정규모의 산출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일정량의 노동단위(=근로자의 수 x 근로시간)가 필요하며, 이때 근로시간을 단축하게 되면 근로자의 수가 자연히 증가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계적이고 단순한 발상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제와 시장은 이런 식의 단순한 산수(算數)가 아니라 우리의 이성(理性)의 한계를 초과하는 복잡계(complex system)의 세상이다. 이것을 간과하는 순간 시장의 역습은 시작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늘어난 인건비는 근로자 채용을 줄일 수도 있고, 위축된 경쟁력으로 인해 총생산 자체가 축소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로시간을 강제적으로 단축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이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 대통령은 “근로시간을 단축하면 삶의 질도 향상되고 일자리가 늘 뿐 아니라 소비도 촉진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만일 이 말처럼 근로시간을 단축해서 삶의 질이 향상되고 일자리도 늘고 소비도 촉진되는 등 선순환이 이루어진다면 왜 이제까지 이런 쉽고 좋은 길을 외면해 왔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2004년의 근로시간 단축은 어찌되었나
 
정부와 정치권은 2004년 법정근로시간을 주당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할 당시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4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으로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추가로 늘어날 것이며, 잠재성장률도 상승한다는 등 온통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다. 불과 6-7년 전의 일이다. 그 장밋빛 전망이 현실에서는 무슨 빛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부터 진지하게 검토되어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는 자신들의 무능과 실패, 부패에 대해 쏟아질 수 있는 비난과 비판의 화살을 용케도 잘도 피한다. 듬직한 우산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바로 대기업 '재벌’이다. 외환위기도 재벌 탓, 양극화도 재벌 탓, 실업자가 많아도 재벌 탓, 중소기업이나 재래시장이 어려워도 재벌 탓이다. 이렇듯 손쉬운 때리기 대상인 대기업을 치는 동안 정작 책임을 통감해야 할 정치권은 쏙 빠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더하여 인기도 얻고 당선까지도 가능하다. 이처럼 쉬운 방법이 또 어디에 있는가? 몇 년을 주기로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권혁철 자유기업원 시장경제연구실장

* 출처 : 자유기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