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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대-중소기업간 거래규제, ‘경쟁자 보호’아닌 ‘경쟁보호’가 바람직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 교수)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은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중간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과 납품계약을 맺고 거래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중소 납품업체를 착취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우월적 지위를 갖고 그것을 남용하는지는 완제품 시장과 중간재 시장이 경쟁적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완제품 시장이 비경쟁적이라면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우월적 지위를 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우월적 지위를 가질 수 없다. 오히려 중간재 시장이 비경쟁적이면 중소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갖게 된다. 2011년 5월, 엔진 부품인 피스톤링의 시장 점유율의 약 70%를 차지하는 유성기업의 불법파업으로 인해 현대차, 기아차,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 완성차 업체들이 겪은 생산차질 사태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대기업과 중소 납품업체 간의 관계를 일방적인 착취·피착취 관계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하도급법 개정, 상생 법, 대규모 소매업법 시행 등은 대기업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규제가 특정집단인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쪽으로 강화되고 있다. 이처럼 한 쪽에만 유리하도록 정부가 개입할 경우, 자칫 시장경쟁을 저해하거나 반경쟁적 기업행위를 적법한 것으로 오판할 우려가 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을 방해하고 가장 중요한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키게 된다.
 
기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시장에서 오랫동안 생존하는 것이다. 기업의 생존은 소비자가 반복적으로 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해 줄 때 가능하므로, 기업은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양질의 제품을 생산·공급하려 노력한다. 이 때 필수요건은 품질이 좋은 부품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은 품질이 좋은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을 찾고, 그 중소기업과 계약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 따라서 대기업은 기본적으로 납품업체를 착취하려 하기보다는 장기적인 동반성장 관계를 형성하려고 한다.
 
만약 정부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채 일방적으로 중소 납품업체에 이롭게 법제도를 시행하여 대기업에 부담을 준다면, 대기업은 이것을 피해가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기업 내에 중간재를 생산하는 계열사를 만들거나 국내 기업 대신 외국의 중소기업과 계약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판로를 상실한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문을 닫든가, 아니면 다른 판로를 개척하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보호는 중소기업의 기술혁신, 경영혁신에 대한 의지를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또한, 이미 대기업과 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중소기업들만 이롭게 하여 기업 간 경쟁을 제한하는 일종의 진입규제로 작용함으로써 소비자 후생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물론 대·중소기업 간 계약이 완전하지 못하여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남용,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등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현재 민법상의 계약법으로 통제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하도급법 개정, 상생법, 대규모소매업법 시행을 통해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것은 대기업에 대한 이중, 삼중의 과잉규제다.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 결과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키고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등의 부작용을 낳을 공산이 크다.
 
따라서, 대·중소기업 간 거래규제는 ‘계약법’과 함께, 경쟁자가 아닌 경쟁 보호를 통해 소비자 후생을 증진시키는 ‘경쟁법’ 체계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우월적 지위를 남용할 가능성이 있는 비경쟁적 시장에 대한 진입규제를 완화하여 시장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
 
안재욱 경희대학교 경제학 교수 
 
* 출처 :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 Monthly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