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의 시장 가격
- 이용식 문화일보 논설주간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성공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미국 등의 방어 태세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우리나라의 레이더 및 미사일 요격체계는 모두 북쪽을 겨냥하고 있는데, 이제 동·서·남쪽도 지켜야 한다. 핵추진 잠수함과 미사일 요격 능력을 갖춘 이지스함 등 '해상 킬체인' 구축이 더 시급해졌다.
문제는 돈과 기술이다. 한 세트 갖추는데도 수조 원이 든다. 미국이 관련 기술과 무기 이전을 해 줄 때 그렇다. 스스로 개발한다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북한의 위협이 예상보다 빨리 현실화하는 만큼 시간을 앞당기려면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그만큼 안보는 곧 ‘돈’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개별 국가와 체결하고 있는 유일한 상호 방위조약이다. 6·25 전쟁 직후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미국을 강력히 설득해 얻어냈다. 상대 국가에 대한 무력공격을 자국의 위협으로 인정하고 행동한다는 제2조가 핵심이다. 미국과 일본 사이의 안보조약은 '일본에 대한 침략'만을 양국의 위협으로 규정(제5조)한 '일방향'으로, 한미 간의 '쌍방향'과는 다르다. 한미 방위조약에는 자국 헌법 절차를 거쳐 개입하도록 한 '유보'조항이 있는데, 유사시 미국이 자동 개입할 수 있도록 보완한 것이 주한미군, 특히 서울 북쪽의 인계철선(trip wire) 지역의 미군 주둔이다.
이런 한미동맹이 없다면 북한에 맞서기 위해 당장 국방비를 2배 이상 늘려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견해다. 일본 중국 등의 잠재적 위협까지 고려하면 훨씬 더 필요하다. 올해 국방부 예산은 39조 원에 조금 못 미치는데, 내년 예산은 40조 원가량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계산하면 매년 40조 원 정도의 추가 지출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여기다 군 복무 기간을 늘리고, 이스라엘처럼 여성도 병역 의무를 부담해야 할지 모른다. 국가 신인도 역시 떨어질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발언권도 줄어든다. 정확히 계량하긴 어렵지만 이런 간접적 영향에 따른 기회비용까지 합치면 40조 원의 몇 배로 늘어날 수도 있다. 이것이 한미동맹의 시장 가격이다.
이처럼 동맹의 경제적 가치는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자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이 20년도 되지 않아 일어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방비 0'가 있다. 전승국이던 영국도 미국에게 유럽 안보를 맡겼다. 그 결과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이고, 지금도 사령관을 미군이 맡고 있다. 스팸 통조림을 가장 즐기는 세 나라가 한국, 영국, 러시아라는 얘기가 있다. 2차 대전과 그 직후 미국의 대표적 원조 식품인데, 여기에 입맛이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소련도 미국의 무기와 경제 원조를 엄청나게 받았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잊고 있다. 대한민국의 번영 역시 한미동맹에 따른 ‘국방비 경감’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고, 앞으로도 최소한 수십 년은 그럴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한국에 '동맹의 가격'을 제대로 지불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노골적으로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확대를 주장하고, 한미 군사동맹,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파기까지 거론한다. 대선 결과와 무관하게 미국 주류 사회에서 그런 주장이 높아지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어느 일방이 1년 전에만 통보하면 언제든 폐기될 수 있다. 거저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한미동맹 없이도 우리 안보가 지켜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한중 경제동맹'이 아무리 깊어진다 해도 '한미 안보동맹'을 대체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선택은 자명하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사드를 들여와 자국 비용으로 운용하려 하는 데 반대 목소리가 높다. 한미동맹에 대한 거부감도 깔려 있다. 정부의 잘못이든, 안보 님비 현상이든, 이성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사드에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수십조 또는 그보다 훨씬 비싼 '동맹의 가격'에 대해서도 알고 주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기고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상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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