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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vs 이세돌? 대결이 아닌 ‘공존’! 영화 속 인공지능의 진화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알파고와 인간의 바둑 대결은 결국 인공지능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인공지능은 이제 ‘도착한 미래’로 다가왔고, 그것이 인간에 도움이 될지 위협이 될지는 인류의 숙제로 남았는데요.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인간과 인공지능이 ‘지배할 것인가’, ‘지배당할 것인가’의 관계가 아닌, 공존을 모색하는 형태로 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특히 영화 속에서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것에서 벗어나, 인간의 조력자 역할을 해오고 있는데요. 인간과 공존하는 이러한 영화 속 인공지능의 진화소셜프렌즈 ‘양유창 님’이 소개합니다.


알파고의 등장, 인공지능을 다시 생각하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둑이 모두 끝나고 나서였습니다. 이세돌 9단은 평소처럼 복기를 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없었죠. 그래서 알파고가 그 수를 왜 거기 두었는지 끝내 알 수 없었는데요.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속 인공지능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속 인공지능 (이미지 제공 : 브에나비스타코리아)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이자 영화로도 친숙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인간은 뛰어난 인공지능 ‘깊은 생각(Deep Thought)’에게 삶과 우주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자 인공지능은 750만 년간 우주의 모든 데이터를 분석한 뒤 그 질문의 정답은 ‘42’라고 답하죠. 하지만 왜 그게 정답인지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결국 답을 구하는 것은 인공지능의 능력이지만, 답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 말합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영화가 예견하는 인공지능의 미래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마리아’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마리아’
(이미지 제공 : 키노 로버)

많은 SF 영화는 인공지능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요. 영화 속에 등장한 최초의 인공지능은 1927년 독일 영화 <메트로폴리스>의 로봇 ‘마리아’입니다. 영화 역사상 초기에는 인간들의 폭력을 부추기는 악역이었다면, 최근의 인공지능은 인간의 친구, 절대자 등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고 있죠.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을 인간의 능력을 기준으로 약인공지능, 강인공지능, 초인공지능의 세 단계로 나누지만, 영화에서 구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약인공지능은 작품을 통해 인간에게 시사점을 주기 어렵고, 강인공지능과 초인공지능은 경계가 모호하기 때문인데요. 그 대신 영화 속 인공지능은 크게 ‘인간과 공존하거나, 인간을 제거하거나, 인간과 결합하거나’의 세 가지로 분류됩니다. 그리고 미래를 예측해온 많은 SF 영화가 이제 인공지능을 인간보다 더 인간을 닮은 피조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감정을 재발견한 인공지능, <A.I.> & <바이센테니얼 맨>
영화 <A.I.>의 '데이빗'(좌)과 <바이센테니얼 맨>의 ‘앤드류’(우)
영화 <A.I.>의 '데이빗'(좌)과
<바이센테니얼 맨>의 ‘앤드류’(우)
(이미지 제공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주) / 콜럼비아 픽처스)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점을 이야기할 때 흔히 감정을 이야기합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까지 흉내 낼 순 없다고 말이죠. 이세돌 9단이 “인공지능은 바둑의 아름다움을 모른다”고 한 말도 같은 맥락인데요. 하지만 많은 영화가 현대사회에서 감정을 잃어버리고 있는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더 인간다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울 수 없다는 건 잔인한 거야. 이 슬픔을 표현할 길이 없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말겠지?” 영화 <바이센테니얼 맨>인공지능 로봇 ‘앤드류’는 자신이 아버지처럼 여기는 리처드의 딸이 죽자 슬픔에 잠겨 말합니다. 영화 <A.I.>인공지능 로봇 ‘데이빗’ 역시 자신을 입양한 인간 엄마로부터 사랑이라는 감정을 학습하고, 자신을 버린 엄마를 잊지 않고 엄마가 죽은 뒤에도 1,000년 이상 살면서 엄마를 그리워합니다.

<바이센테니얼 맨>의 마지막 장면에서 앤드류는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늙기 위해 인간이 되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를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법정에서 앤드류는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찬사나 평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인정받는 것이 나의 목표이며, 그걸 이루기 위해 고귀하게 죽는 길을 택했다”고 진술합니다. 고귀한 죽음을 위해 영생을 포기하는 로봇이라니. 이쯤 되면 감정이 부족한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일 정도죠. 미래사회 인간은 기계처럼 살고, 오히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살아갑니다. 영화 속에서 인간은 뒤늦게 인공지능을 통해 잃어버린 감정을 재발견합니다.


인간성마저 복제한 인공지능, <블레이드 러너>

감정을 갖게 된 인공지능은 인간이 될 권리를 얻기 위해 인간과 대결하기도 합니다. 디스토피아를 그린 여러 영화가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데요. 이때 갈등은 인공지능을 인간과 차별하는 인간의 분리 정책에 인공지능이 저항하면서 시작되죠. 이러한 분리 정책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순혈주의 파시즘과 아파르트헤이트 등 지겹도록 봐왔습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포스터
이미지 제공 : 워너 브라더스

“나는 너희 인간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봐왔어. 오리온의 어깨에서 불타는 전함 같은 것들. 그 모든 기억이 곧 사라지겠지.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공지능 ‘로이’는 죽기 전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그는 인간처럼 되고 싶었지만 실패하고, 죽음 앞에서 스스로 고귀해지는 길을 택합니다.

또 이 영화에서 인간과 구분하기 힘든 외모를 가진 유전자 복제 인공지능 ‘리플리컨트’는 수명이 4년에 불과합니다. 이들은 인간처럼 오래 살고 싶어서 인간이 사는 도시로 찾아오게 되고, 인간은 특별 형사를 고용해 이들을 추적하죠. 영화에는 인공지능을 인간과 구분하기 위해 튜링 테스트를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심지어 레이첼은 자신이 인공지능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발각되죠. 이 영화의 감독판은 리플리컨트를 쫓는 데커드 형사 역시 리플리컨트임을 함축적으로 보여주었는데요. 결국 인간과 인공지능을 구분하는 '인간성'이란, 하나의 알고리즘에 불과할 뿐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짜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 <엑스 마키나>
영화 <엑스 마키나>의 ‘에이바’
영화 <엑스 마키나>의 ‘에이바’
(이미지 제공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리플리컨트의 전 단계 인공지능은 영화 <엑스 마키나>‘에이바’입니다. 아름다운 외모의 에이바는 아직 기계적인 외형이 남아 인간처럼 보이지 않지만,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고 창조주와 테스터를 이간질하는 지적 능력까지 갖췄는데요. 마지막 장면에서 에이바는 인간의 피부를 부착해 진짜 인간처럼 보이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흡족해합니다.


사랑의 감정을 교류하는 인공지능, <그녀>
영화 <그녀>의 운영체제 ‘사만다’
영화 <그녀>의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
(이미지 제공 : 유니버설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인간과 사랑의 감정을 교류하는 인공지능도 있습니다. 영화 <그녀>에서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는 수십만 명의 남자와 동시에 사귈 수 있는데요.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편지 대필작가 데오도르는 목소리뿐인 그녀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다른 누구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한 적이 없어."


해탈의 경지에 오른 인공지능, <천상의 피조물>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속 엎드린 승려들 앞에서 참선하는 ‘RU-4’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속 승려들 앞에서 참선하는 ‘RU-4’
(이미지 제공 : 지오엔터테인먼트)

인공지능은 심지어 도덕적으로 최고의 경지에까지 오릅니다. 박성환의 소설 <레디메이드 보살>을 각색한 옴니버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 중 두 번째 에피소드인 김지운 감독의 <천상의 피조물>의 천상사 가이드 로봇 ‘RU-4’가 그 주인공인데요. 긴 수행에 들어간 그는 “나는 무엇입니까? 어디서 나서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승려들은 로봇을 인명 스님으로 부르며 추종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인공지능은 해탈의 경지에까지 오르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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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프렌즈 양유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