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춰있다
- 정운갑 MBN 수석논설위원(앵커)
대한민국의 시계는 분명 멈춰있다. 온통 정치적 논쟁 뿐이다. 반면 전 세계는 분, 초를 다투며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최근 국제적 시선을 끈 사건은 미·일 신 밀월 시대를 연 것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미·일, 중·러 간의 역학 관계는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국빈 방문에 준하는 예우를 받으며 지난 26일 미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여러 족적을 남겼다.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미국과 일본이 전 세계에서 군사적 연합작전이 가능하도록 한 군사 협력 관계다. 벌써부터 미·일, 중·러 간의 새로운 냉전체제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한국 외교는 미·일, 중·일 관계개선 모색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여기에 남북문제는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경직, 그 자체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압박이 거센 상황에서 윤병세 외교장관은 “고립 외교는 비약”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자 여권 안에서조차 외교안보 라인의 인적 쇄신 요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장관 한두 명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 대통령이 현재의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떻고, 이에 걸맞은 새로운 전략은 무엇인지 많은 전문가들은 다시 묻고 있다.
21세기 외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게 실리 외교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적대국 쿠바와 손을 잡고,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은 중국 주도의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에 미국의 견제를 뚫고 57개국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시 주석은 지난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도 손을 잡았다. 역사 갈등과 협력 분야를 분리해 다루는 투 트랙 전략인 셈이다.
아베 총리도 우경화 행보를 계속하며 최근 6개월간 중·일 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성사시키는 등 실리 외교를 펴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외교에 대해 원칙의 과잉이라고 지적한다. 한·일 관계 기조를 급변시키기 어렵다면 가까운 곳, 남북문제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 당국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금 이대로’에서 크게 변할 것 같지 않다.
정치권은 세계 조류의 변화와는 더욱 동떨어져 있다. 지난 28일 원·엔 환율은 7년 2개월 만에 900원 선이 붕괴되면서 수출기업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여의도에서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듣기 어렵다. 4월 임시 국회가 끝났지만, 서비스발전 기본법, 의료법, 관광진흥법 등 주요 6개 경제 활성화법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4월 9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소위 성완종 리스트를 남기고 자살한 이후 정치권은 서로 네 탓 공방만 벌이고 있다. 여야가 합의했다고 내놓은 공무원 연금 개혁안은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4.29 재·보궐 선거 이후 정치권은 벌써부터 내년 총선, 차기 대선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혁명이라는 세계의 흐름을 놓쳐 굴욕과 침략의 역사를 되풀이했다. 1769년 영국의 리처드 아크라이트의 수력을 이용한 방적기 발명,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와트의 1778년 증기 기관의 혁신적 개선, 18세기 말 영국기업들의 제철 대량 생산, 이런 것들이 산업혁명의 배경이 됐다. 그 시절 우리나라는 어떠했는가? 임금의 눈치를 살피고 당파싸움에만 몰두했다. 그러다 보니 먼저 세상의 흐름을 이해하고 도전해 나간 나라들의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우리의 슬픈 역사가 그것이다.
지금 한·일 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과거사 문제도 사실은 당시 세계의 흐름을 놓친 데 따른 결과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가? 산업혁명의 흐름을 놓쳐 200년 뒤 혹독한 시절을 보낸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김대식 KAIST 교수는 “세상은 이미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또다시 새로운 산업혁명을 시작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2015년 우리가 인공지능 기반의 2차 산업혁명을 인식하고 준비하지 못한다면 또 한 번 긴 비극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 우려한다.
서울 충무로에 50여 년의 전통을 갖고 있는 칼국수 집이 있다. 고즈넉한 공간에 지금도 80세가 넘은 고령의 사장님이 직접 육수를 만들고 면을 삶는, 혼이 담긴 ‘맛집’이다. 하루는 평소 안면이 있던 노 사장이 땀을 닦으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참으로 분하다”는 것이다. 이유를 묻자 “자신도 그 나이에 국가에 세금을 내려고 이렇듯 열심히 일하는데, 국민 세금으로 일하는 공직자,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뭐 하고 있느냐”는 질타였다.
“뇌물 받고 나쁜 짓 하고...도대체 일은 안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나라의 주인이 누구냐?”고도 했다. 평소 말수가 적은 노(老) 사장님의 외침에는 미래 대한민국에 대한 불안, 우려도 그대로 실려 있었다.
“먹고 살기 편해진 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러다가는 정말 우리나라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는 대한민국 상황에 대한 그 누구의 설명보다 가슴에 와 닿았다. 칼국수 집 사장님의 아주 평범한 외침, 2015년 5월 신록의 계절에 커다란 죽비 소리로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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