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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칼럼노트

[이신우 칼럼] 지당한 말씀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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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당하신 말씀입니다만

- 이신우 서울경제 논설실장


  직장 상사와의 대화에서 가장 현명한 처신은 어떤 것일까. 상사의 말이나 업무 방침에는 일단 긍정적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조건 따지거나 비판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그렇다고 “지당한 말씀입니다”로만 직장생활을 때울 수는 없는 법이다. 좋든 싫든 간언(諫言)이 필요한 때가 오게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 ‘회장님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 씨가 조선일보(4월 4일 자)에 쓴 칼럼 ‘알고 있나, 상사를 비판하는 기술…’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는 상사에게 간언하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면서 대략 10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중 9번째인 ‘상사가 천장만 쳐다보고 있으면 그쳐야 한다’는 백미 중 백미다. 참으로 얄밉게 그리고 절묘하게 표현한 문구다.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부분도 간언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이다.

  반면 그가 제시한 10가지 중에는 '과연 현실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대목도 있어 이를 잠시 열거해보겠다. 반박 논리는 물론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의 가르침을 통해서다.


상사가 천장만 쳐다보고 있으면 그쳐야 한다


  한비자에 따르면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은 설득하려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려 내가 말하려는 것을 그에게 맞출 수 있느냐 하는 점에 있다. 여기까지는 강원국 씨도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의견을 올리는 법도가 올바르다고 해서 반드시 들어주는 것은 아니며, 도리상 완전하다고 해서 반드시 채택되는 것도 아니라는 데 있다.

  우선 상사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설득하려는 상대가 속으로는 이익을 좇지만 겉으로는 높은 명예를 따르는 척한다면 어떻게 하나. 상사에게 명예가 높아진다는 식으로 설득하면 겉으로야 그의 말을 환영하겠지만, 마음속으로 부하를 멀리할 게 분명하다. 거꾸로 이로운 바를 들어 설명하면 속으로는 그의 말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의 제안을 속되다고 할 것이다.


똑같은 행동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


  ‘머리 아닌 가슴으로 말해야 한다’는 권고도 어떤 것이 머리고 어떤 것이 가슴으로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한비자에 송나라 부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비가 내려 부잣집 담장이 무너졌다. 아들이 “담장을 수리하지 않으면 반드시 도둑이 들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목격한 이웃집 노인도 똑같은 말을 했다. 과연 그날 밤 부잣집에 도둑이 들어 많은 재물을 훔쳐갔다.

  그러자 부자는 아들을 매우 지혜롭다고 여겼고, 이웃 노인에 대해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똑같은 행동도 사랑받을 때와 사랑받지 못할 때 정반대의 해석을 낳을 수 있다.


무엇보다 충정으로 포장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상사와 회사를 향한 충정으로 포장되어야 한다’는 권고 역시 수많은 충신과 현신이 지도자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역사의 가르침 앞에선 색이 바랠 수밖에 없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과 영의정 류성룡은 조선 시대를 대표할 만큼 어질고 현명하며 충직하고 도덕과 법술을 갖춘 보기 드문 인재였다. 그럼에도 병적인 권력 집착증과 어리석은 판단력의 주군을 만나 불행한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하긴 그런 신하들이 하나둘이었겠는가. 충신, 현신의 간언도 현명하고 어진 군주가 아니면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법이다.


두괄식으로 말해야 한다


  7번째 ‘두괄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대목은 객관적으로 말해 옳은 지적이다. 정신없이 바쁜 CEO 앞에서 서론-본론-결론을 따지는 것도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드는 처사일 뿐이다. 하지만 요지만 꼬집어 간략히 말하고 수식을 덧붙이지 않으면 말재주가 없다고 여겨질 수 있고, 모래알처럼 상세하게 주장을 펴면 말만 많고 조리가 없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한비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난언편(難言篇)’이나 ‘세난편(說難篇)’ 등에서 간언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설파했던 한비자는 성공했을까? 그렇지 않다. 비록 진시황이 ‘한비자’를 읽고 나서 “이 글의 저자와 만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감탄했을 정도지만 그 역시 동문수학했던 옛 벗인 이사(李斯)의 모함으로 진나라에서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세상엔 상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료도 있고 선후배도 있다.

  말이란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는 CEO나 상사에게 올바른 소리를 한다는 것은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오해나 미움을 받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


직장인의 현명한 처세술은 '본질에 충실하는 것'


  직장인으로서의 현명한 처세술은 본질에 충실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말의 기교에나 탐닉하기보다, 누가 보든 말든 열심히 일하면서 자기만의 실적을 쌓아 올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인정받으면 받은 만큼 그의 ‘말’ 또한 위로부터 응분의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신우 서울경제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