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을 한 60대 아버지가 임시직을 얻어 출근한다. 아버지의 성화에 할 수 없이 일어나 같이 아침밥을 먹은 30대 아들은 눈을 비비며 아버지를 배웅한다. 아버지는 한탄한다. “내 아버지는 일제로부터 독립운동을 했고, 나는 가난과 싸워 이겨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됐다. 내 아들은 나보다 미래가 더 밝을 줄 알았는데 이제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야 하나?” 젊은이는 일이 없어 놀고, 늙은 부모가 일해 자식을 먹여 살리는 이런 풍경이 우리 주변에 흔해졌다.
청년들의 일자리 부족이 심각하다. 지난 2월 청년(15~29세) 실업률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15년 7개월 만에 최고치인 11.1%였다. 체감 실업률은 그 두 배가 넘는다는 관측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청년 고용률은 4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0%포인트나 낮은 수준이다.
‘청년 실신(실업자+신용불량자)’과 ‘오포세대(연애·결혼·출산·집 장만·인간관계를 포기한 세대)’란 자조적 유행어가 젊은이들의 좌절감을 보여준다. 6·25전쟁 이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1955~1963년 출생한 사람)들은 배고프고 힘든 시절을 보냈지만 노력하면 잘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지금 20, 30대 젊은이들은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사회에 나와 보지도 못한 채 좌절하고 있다. 어렵사리 일자리를 구해도 ‘열정페이(열정을 구실로 무급이나 아주 적은 급여로 착취하는 것)’나 ‘미생(비정규직)’이 청년들을 두 번 울린다.
청년 일자리는 청년들만의 일이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2030년이면 생산가능인구(15~64세) 2.7명이 65세 이상 노인 1명을 먹여 살려야 한다. 지금 중장년 세대의 노후가 뜨듯하려면, 그리고 나라 경제가 순조롭게 운용되려면 청년들이 자신들에게 적합한 일을 찾아서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청년 일자리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이유다.
청년 일자리에는 현재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의 문제점들이 집약돼 있다. 기업들이 예전처럼 많은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일자리의 미스매칭을 심화시키며 교육이 직업 현장에 필요한 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 이 모든 사회적 혼돈을 해결할 정치적 리더십은 실종된 지 오래다. 그만큼 단숨에 해결하기 힘든 문제다.
최근 노동시장이 급변하면서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꺼리고 있다. 내년부터 정년이 60세로 늘어나는 데다 성과급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라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노사간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휴일 근무도 근로시간에 포함시켜 1주일에 총 52시간으로 제한하라는 판결 역시 대법원 최종심을 앞두고 있다. 선진국으로 가려면 거쳐야 할 관문이지만 모두 기업의 부담을 크게 늘리는 사안들이다. 기업들은 잔뜩 움츠러들어 30대 그룹들은 올해 투자를 16.5% 늘리면서도 신규 채용을 작년보다 6.3% 줄일 계획이다.
기득권 세력이 양보해야 청년 일자리에 숨통이 트인다. 한국 대기업 근로자들의 연봉은 선진국과 비슷하거나 더 높지만, 중소기업 근로자들의 연봉은 선진국에 크게 못 미친다. 대기업 노조원들에게 몰려있는 혜택을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청년 미취업자들에게 나눠야 한다. 선진국들은 20년 근속 직원이 1년 차 직원의 평균 1.19~1.33배를 받지만, 한국은 2.4배(제조업 생산직 기준)를 받는다. 선진국들처럼 유연한 임금체계로 바꾸면 단순히 계산해도 현재 20년 근속 사원 1명의 봉급으로 청년 1명을 더 고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하고는 이처럼 연공서열에 따라 봉급을 받는 나라가 거의 없다. 한국도 연공서열이 아니라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편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연봉 6,000만 원 이상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을 향후 5년간 동결해 협력업체 근로자 처우개선과 청년 고용에 활용하자는 제안을 했다. 당장 한국노총은 “수조 원에 이르는 재벌 대기업의 배당 잔치와 관련한 국민적 비난 여론에 대한 물타기”라며 반발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협력업체 노동자가 저임금에 시달리는 것은 대기업이 불공정거래로 하청업체가 가져갔어야 할 이윤을 가로챘기 때문인데 정규직 노동자의 지갑을 털어서 협력업체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자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필자가 황희 정승은 아니지만, 양쪽 모두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들은 협력업체와 동반성장 노력이 부족했고, 중소 협력업체들도 저임금에 의존해 국제 경쟁력을 기르지 못했다. 아이 2명을 기르는 50대 근로자에게 6,000만 원의 연봉은 많은 금액이 아니다. 사교육비를 고려하면 체감으로는 중산층도 못 된다. 정부가 약속대로 교육개혁을 통해 사교육비를 줄여주고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 것 같은 제도적 뒷받침 없이 근로자들에게 희생하라고만 할 수는 없다. 대기업 경영자들부터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경총의 제안도 현재 교착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시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세계 산업 구조의 급변으로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고 한국 주력 기업들의 위기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대기업 근로자들도 무조건 자기 몫을 고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재계와 노동계가 서로 상대방 탓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청년 일자리 부족은 풀리지 않는다. 힘들더라도 상대방을 인정하고 조금씩 의견 접근을 이룰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 문제는 법과 제도로 다 해결되지 않고 각 사업장에서 노사관계로 풀어나가야 할 경우가 많다.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라는 두 가지 기적을 동시에 이룬 우리 사회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지수를 높이고 소통의 기적을 이루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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