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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스퀘어/요즘뜨는이야기

정조의 흔적을 찾아서- 수원 화성으로 떠나는 나들이

 

1. 역사 속 인물 정조


역사 유적(遺蹟)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때로는 어떤 사람이 그 유적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남아있는 많은 유적지 역시 모두 나름대로 어떤 인물의 사연이 담겨 있기 마련이죠.

 

유명한 유적의 사연을 알아가다 보면 대체로 과거 어느 왕조의 왕과 관련한 유적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왕조로 일컬어지는 조선은 그 역사가 오래됐을 뿐 아니라 마지막 왕조였다는 측면에서 많은 유적을 남겼지요. 그리고 조선의 여러 왕은 많은 이야깃거리와 볼거리, 생각할 거리를 후손인 우리에게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중 우리에게 드라마 이산으로 유명한 정조는 경기도 수원에 수원 화성(華城)을 남겼습니다. 수원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아름답고 과학적인 유적 중 하나이죠. 그리고 화성을 말할 때 화성을 만든 왕 정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원 화성, 성벽길, 북동포루

수원 화성 성벽길 북동포루

 

여정의 시작은 수원 화성 박물관. 그다음 화성행궁으로 갔다가, 갈비를 먹고 난 뒤 화성 성벽길을 걸었습니다. 성벽길을 걷다 보면 용주사라는 사찰로 향할 수 있는데요. 용주사에 들렀다가 정조와 장조(사도세자)의 무덤인 융릉과 건릉으로 향합니다.

 

map ⓒ DaumKakao Corp.

 

2. 수원 화성, 정조의 흔적을 찾아 떠난 나들이

 
일기 예보에서는 포근한 오후라고 했지만, 생각만큼 포근하지는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처음 수원 화성을 찾은 건데요. 수원 화성 그리고 조선 22대 왕 정조의 흔적을 찾아 나선 첫 나들이를 시작한 곳은 수원 화성 박물관입니다. 화성 박물관에서 박물관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화성의 축조 과정과 그 당시 사람들의 삶, 정조의 행적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화성, 화성 박물관, 정조

 

화성 박물관 1층에 있는 화성 축소 모형입니다. 앞에는 여러 관람객이 모여 설명을 듣고 있었습니다.

 

화성행궁, 수원 화성, 신풍루


박물관에 견학 온 유치원생들에 떠밀려 화성 박물관을 이리저리 부유하다가, 그곳을 빠져나와 발걸음을 옮긴 곳은 화성행궁입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수원 화성에 왔을 때, 쉬면서 집무를 보던 곳입니다. 이 사진은 화성행궁의 입구 신풍루의 모습입니다.

 

화성행궁, 봉수당

 

여기는 화성행궁의 봉수당입니다. 행궁의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정조는 이곳에서 자신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진찬례를 열었다고 합니다.

 

수원왕갈비

 

화성행궁을 둘러본 후에는 수원 명물 갈비를 먹었습니다. 수원에 오면 소갈비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소갈비가 유명해진 데는 나름 역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수원 화성 축조 후, 정조는 백성들이 수원에 정착하여 살게 하려고 소를 제공하고, 농사짓게 했는데요. 사람들은 국가에서 소를 받는 대신, 세금으로 송아지를 바쳐야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화성에서는 소가 주요했죠. 그래서인지 지금도 소로 만든 대표적 음식 소갈비가 유명한 듯합니다. 직접 먹어 보니 맛도 정말 좋았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듯 모든 여정은 배를 든든히 하고 시작해야 더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원 화성 성벽길

 


화성 성벽길을 걷고 난 뒤, 차를 타고 향한 곳은 경기도 화성시 화산동. 수원 화성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는 용주사라는 사찰에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곳은 정조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인데요.

 

용주사, 정조, 화성

 

용주사 입구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홍살문이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붉은색 창살 모양의 구조물 보이시죠? 이는 용주사가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넋을 위로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어진 사찰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사도세자와 정조, 혜경궁 홍씨의 위패가 모두 모셔져 있습니다.

디자이너로 유명했던 앙드레 김도 이 사찰의 다녔다고 해요. 그래서 그의 위패도 사찰에 있다고 하네요.

 

대웅보전

용주사, 연등, 앙드레김

 

용주사의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대웅보전과 그 앞에 걸린 연등의 모습입니다. 파란 하늘 아래 살랑살랑 흔들리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대웅보전, 불교그림

 

대웅보전 벽에 걸려있는 탱화(불교 그림)입니다. 여기에 걸려있던 원래 그림은 안타깝게도 도난당했다고 해요. 그러다가 2002년경, 새로운 그림을 그려 걸었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새롭게 그림을 그리면서 불교 그림 속에 축구공을 넣었다는 겁니다. 사진에 보시면 오른쪽 흰옷을 입은 사람 오른쪽에 축구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수원 화성 나들이의 마지막 여정으로 건릉과 융릉을 찾았습니다.

 

건릉, 융릉, 조선왕릉

 

여기는 건릉과 융릉으로 들어서는 입구입니다. 이 조선 왕릉도 수원 화성과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습니다. 건릉은 정조의 묘, 융릉은 장조(사도세자)의 묘입니다.

 

건릉, 융릉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에 건릉이 있고, 오른쪽에 융릉이 있습니다.

 

 

저는 융릉을 보러 향했습니다.

 

 

저 뒤로 능(陵)이 보이죠? 융릉에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함께 묻혀 있습니다.

 

3. 역사와 사실


정조는 단명(短命)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세의 많은 사람이 정조의 죽음을 안타까워합니다. 그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만큼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던 왕이지요.

 

그리고 효심이 지극했던 왕이기도 합니다. 정조는 세손 시절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어린 나이에 지켜봤고, 그런 아버지를 위해 묘를 옮겼으며, 그 옆에 아버지를 위한 사찰까지 지어 제사를 지냈습니다.


역사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정조의 삶과 행적을 통해 많은 분이 '긍정적인 삶의 가치'를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느끼는 데 수원 화성보다 완벽한 곳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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