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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스토리/자유광장은 지금!

공든 탑 무너질라, 배출권 거래제가 망칠지 모를 예상 피해 사례들

밑장을 빼다 잘못하면 공든 탑이 무너집니다. 공든 탑이 무너질 것이 뻔하다면, 설령 좋은 의도라고 해도 그 밑장을 빼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최소한 어떻게 빼면 좋을지 고민을 한 번 더 해봐야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에 대한 당연한 해답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해답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인,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공든 탑, 이미지투데이, 배출권거래제

 

배출권거래제는 업체별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해지는 제도입니다. 할당량보다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배출권거래제가 국내 산업에서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시행 시기를 연기하거나 할당량을 늘려야 합니다.

여기서 조금 궁금해지실 겁니다. 대체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될 경우 국내 기업이 어떤 타격을 받게 되길래 이런 말을 할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전경련은 주요 업종별 단체와 공동으로 배출권거래제 시행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①국내 생산물량의 해외 이전 ②위기기업 경영악화 ③국내 사업장의 생산 제약 ④新기술 개발 및 新시장 선점 지연 등이 우려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예상 가능한 피해 사례들을 모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국내 생산물량의 해외 이전

 

① 우리나라와 외국에 생산기지가 있는 반도체 기업 A사는 배출권 부담비용으로 국내 생산량 조정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해외 사업장은 배출권거래제 미시행 국가여서 국내 사업장과 제품원가 차이가 더 벌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배출권거래제 1차 계획기간(`15~`17년)동안 부담예상액을 자체 분석한 결과, 최대 약 6,000억 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가격이 핵심 경쟁력인 반도체시장에서 이는 분명 엄청난 부담입니다. 온실가스 감축노력도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이미 에너지효율이 높은 설비를 갖췄을 뿐 아니라, 정부의 업종 감축목표 자체가 세계 최고의 모든 감축기술과 방법을 적용하더라도 달성이 불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美•中 등 해외 경쟁국은 온실가스 관련 규제도 없는 데다 투자에 대한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어 국내 투자가 매우 제한될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습니다.


※사례별 배출권 부담예상액 산출근거: 배출권 과징금 상한선 10만 원 적용.

 

② 최근 중국 등에 사업장을 확충한 디스플레이업체 B사도 비슷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체분석 결과, 배출권거래제 시행으로 중국 경쟁업체의 제품 판매가격과 비슷해질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입니다. 1차 계획기간 동안 약 6,000억 원의 배출권 비용부담으로 기존 LCD 생산면적 1㎡당 7,000원이나 벌어졌던 중국 기업과의 가격 격차는 약 300원가량으로 좁혀질 것으로 우려됩니다. B기업은 향후 국내 생산제품의 가격우위 확보가 어려워진다면 중국으로 생산기반 이전이 점차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디스플레이 공장 신설에 투자되는 3~4조 원가량의 투자금액이 고스란히 다른 나라로 흘러들어 갈 수도 있어 대응이 시급합니다.

 

③ 철강업체 중 석탄을 원료로 사용하는 일관제철 공정을 가진 2개 기업의 경우는 더 심각합니다. 공정 특성상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아 1차 계획기간 동안 2개 기업 배출권 비용부담 총합이 최대 2조 8천억 원에 달합니다. 게다가 중국을 비롯해 글로벌 경쟁이 심해 배출권 비용으로 인한 가격 인상분을 철강재 가격에 전가할 수 없어 ‘사면초가’인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또한 ‘14년 철강업 조강생산 예상물량은 7천2백만 톤이나, 정부의 할당계획안에 맞춰 생산한다면 ’15년 이후에는 연간 6천5백만 톤 이상은 생산이 불가한 상황이라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에 따라 부족한 국내 생산물량은 경쟁국에서 수입할 수밖에 없어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은 그대로 유지되는 반면, 국내 철강업만 고사될 가능성도 큽니다. 특히 업체 중 하나인 C사의 경우 8,000억 규모의 신규투자를 추진 중이나, 배출권거래제로 인해 신규사업의 경제성 확보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한, 매년 온실가스 감축의무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돼 더 이상의 신규투자사업 추진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됩니다.

 

④ 외투기업 D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본사에서 생산원가에 따라 생산규모를 결정하기 때문이죠. D사 관계자는 “만일 배출권 비용부담으로 생산원가가 증가하면 본사에서는 생산원가가 낮은 다른 해외공장과 계약해 국내 사업장의 생산량을 줄일 수도 있다”며 염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2. 위기기업 경영악화

 

① 시멘트기업 A사는 사업영위가 불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3,500억 원 정도 순손실을 기록한 가운데 1차 계획기간 동안 배출권 비용 예상액이 약 700억 원 규모로 파악됐기 때문입니다. 시멘트업계는 클링커(시멘트 반제품) 1톤 생산 시 온실가스 0.9톤을 배출하는데,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할 수단이 없는 상황입니다. 수백억 원의 배출량 비용을 물지 않으려면 생산량을 줄여야 하지만 수익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생산량 확대가 필요하기에 A사는 경영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② 지난해 순손실을 기록한 반도체 기업 B사는 배출권거래제가 더 부담스럽습니다. 1차 계획기간 동안 약 100억 원 이상 추정되는 배출권거래 부담비용으로 인해 제품 경쟁력을 높여 수익구조를 개선하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배출권 관련 지속적인 비용증가로 경영개선이 지연돼 투자•고용 환경이 나빠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③ 조선해양플랜트업계도 배출권거래제가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향후 해양플랜트 분야 수요물량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시운전부문은 조선회사의 관리범주를 넘어, 선주 측의 요구에 따라 예상범위 이상의 시간과 연료소모가 빈번하게 발생돼 온실가스 배출량을 예측하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게다가 주요 경쟁국인 중국, 일본은 배출권거래제가 강제되지 않고 있어, 우리나라 핵심수출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됩니다.

 

3. 국내 사업장의 생산 제약

 

① 기업 A는 지난해 순이익 400억여 원을 기록했으나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1차 계획기간 동안 배출권 비용 예상액이 약 2,700억 원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할당계획이 수정 없이 강행될 경우 생산물량 감축으로 4개 조업라인 중 1개 라인을 폐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또, 이로 인해 연간 250만 톤에 달하는 수출물량의 약 50%를 취소해야 하고요. A기업은 “국내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되지 않도록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한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3조 7항을 강조했습니다.


② 생산량을 확대하는 일도 가시밭길입니다. 기존 시설 가동률을 높여 생산을 확대하면 배출권 비용 증가를 피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신•증설시설임을 인정받으면 추가 할당량을 활용할 수 있지만, 공장 가동률 조정으로 생산량을 확대하는 것은 신•증설에 해당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경영위기에서 최근 벗어나고 있는 자동차기업 B사도 가동률을 높여 생산량을 약 50% 이상 확대하려 하나 그만큼 배출권 비용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고심하고 있습니다. B사는 사양 업체는 배출권 판매로 불로소득을 얻는 반면, 성장 업체는 엄청난 배출권 구매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4. 新기술 개발 및 新시장 선점 지연

 

① 화학섬유기업 A사는 탄소섬유, 슈퍼섬유 등 신소재를 통해 도약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소재 관련 제품군은 기존 섬유제품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높아 생산량이 조금만 증가해도 에너지 소비가 상당해 배출권거래제가 큰 부담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원가가 높은 신소재의 특성상, 원가절감이 제품상용화의 핵심이지만 배출권 비용으로 상용화가 더 지연될 수도 있습니다. A사는 신소재 개발이 초기 온실가스 배출량은 많지만, 상용화된다면 환경에 더 이로울 수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단적으로 1,375kg짜리 자동차의 차체•부품 20%를 탄소섬유로 교체하면 중량이 30% 감소돼 연간 온실가스 0.5톤을 감축시킬 수 있습니다.

 

② 자동차기업 B사도 친환경차 개발에 배출권 비용을 내야 합니다. 친환경차 개발을 위해 신축할 연구소 건물 약 10개동과 신규 시험장비 도입으로 전력사용량이 증가해 간접배출* 비용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B사는 1차 계획기간 동안 최대 250억여 원까지 배출권 부담비용을 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간접배출의 경우, 전기시설의 신•증설은 인정받기가 어려워 예비분을 활용해 부담을 줄이려 해도 힘든 상황입니다.


* 간접배출: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급된 전기 또는 열을 사용함으로써 온실가스가 배출되도록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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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출권거래제 시행으로 국내 산업과 기업은 위 사례처럼 상당한 경제적 손실과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전경련 유환익 산업본부장은 “배출권거래제는 기업규모에 따라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천억 또는 조 단위의 추가비용이 예상되고 있어 국내 투자•고용환경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경영위기 기업에게는 맹독이 될 수 있다”며, “새 경제팀이 출범돼 경제 재도약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만큼, 배출권거래제 시행시기를 연기하거나 과소 산정된 할당량을 재검토해 국내 투자의욕이 꺾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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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시행할 경우 우리 경제에 엄청난 손실을 줄 우려가 있는 배출권거래제. 우리 산업계도 이에 적응하고 대비할 충분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당장 내년으로 성큼 다가온 이 제도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밑장을 빼도 곱게 빼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 본 포스팅은 전경련 미래산업팀 김태형 연구원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