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중국에서 대한민국의 강인함을 확인하다
- 중국 사적지 탐방을 통한 대한민국 돌아보기 -
13년 7월 7일부터 15일까지 전경련에서 후원하고 '이범석 장군 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하는 <해외 사적지 탐방>에 참석하였습니다. 위 탐방은 독립군들의 혼이 담겨있는 역사적 유적지와 고구려 역사가 숨 쉬고 있는 유적지들을 방문하는 것을 목적으로 계획되었다. ‘해외 사적지 탐방’은 이번 탐방을 기준으로 벌써 8회 차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탐방입니다.
“중국으로 가는 첫 걸음, 어색한 만남과 가슴 설레는 기대”<7월 7일>
7월 7일 방화동 국제청소년 센터에서 독립군 유적지 탐방단의 사전교육이 실시되었습니다.
처음 만난 대원들은 어색함과 해외여행이라는 들뜬 마음에 약간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흘렀습니다. 하지만, 곧 우리가 가야할 유적지들의 역사적 내용과 선조들의 아픈 역사를 접하면서, 여행에 대한 설렘은 바른 역사를 알아야한다는 열정과 선조들의 아픔이 분함으로 바뀌면서, 탐방에 임하는 태도는 진지하고 차분하게 바뀌었습니다. 이후, 광복군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담긴 ‘광복청년의 노래’를 익힘으로서, 하루를 마무리 했습니다.
“뜨거운 가슴을 안고 중국으로” <7월 8일>
새로운 사람들과의 첫날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습니다. 공식적, 우리의 첫 목적지는 현충원. 현충원에 도착한 대원들은 나라를 위해 순국하신 분들께 헌화를 함으로써,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다시 한 번 애국심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으로, 6·25전쟁 당시, 위기에 빠져있던 한국을 인천 상륙작전을 통해 구해낸 맥아더 장군의 동상에 헌화를 했습니다. 첫날 들었던, 맥아더 장군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엄숙한 분위기 속 묵념을 통해, 감사함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중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웠으나, 가슴에 품은 애국심으로 마음만은 무겁게, 단동으로 향하는 배에 올라섰습니다.
“동북공정에 대해 직접 느끼다”<7월 9일>
압록강 단교, 그곳을 거닐면서 앞쪽에 보이는 북한과 점점 가까워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국인들은 압록강에서 수영을 즐기면서, 건너편 북한 땅에 쉽게 다다를 수 있으며, 실제로 북한 사람들과의 접촉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면서, 북한이 그렇게 멀기만 하진 않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엔 끊어진 다리와 새롭게 세워진 다리, 이렇게 2개가 나란히 서 있었는데, 연결된 다리는 현재도 이용되고 있으며,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호송하고, 또한 수많은 자원을 주고받는 중국과 북한 간 연결 통로로서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교에서 바라본 압록강은 조용히 흐르며, 민족 간 만남을 단절시키고 있었습니다. 쉽게 건널 수 있는 잠잠한 압록강이 오히려 야속하고, 밉게 느껴지는 단교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졸본성이였습니다. 사면이 모두 절벽으로 구성 되어있는 졸본성은 999계단을 오르고서야 만날 수 있는데, 고구려의 첫 도읍지였습니다. 그 기세는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위풍당당했으며,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졸본성은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런 졸본성이, 동북공정으로 인해 오녀산성이라 불리고 있단 현실을 직접 체험한 대학생들은 비탄을 금치 못했습다.
졸본성에서 몇 시간을 달려 용두에 도착했습니다. 용두는 명청전쟁 중 심하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명나라의 요청을 받고 간 약 5,000명의 조선군들께서 잠든 장소입니다. 때문에 광복청년아카데미에서는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조선군 전몰장병들에게 진혼제를 지내고, 진혼무를 올림으로서 전몰장병들의 원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다”<7월 10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도착한 곳은 신흥무관학교 터였습니다.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중국 공안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공안과 동행해야 했습니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이회영 선생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이후 수많은 독립군 장교를 배출해 냄으로써,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독립군들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곳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그 어떠한 표식도 없이, 드넓은 옥수수밭에 덮여, 이곳이 신흥무관학교의 터일 것이라는 추측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를 이동해 도착한 곳은 고구려 유적지, 광개토대왕 비, 광개토대왕릉, 장수왕릉을 방문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영향을 받은 그곳은 이름이, 호태왕비, 장군총 등으로 낮춰 불리고 있었으며, 광개토대왕 비는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 아래 사진촬영을 금하고, 밖에선 공안들이 지키고 있어,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었습니다. 중국이 자신들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고구려 유적은 허술한 관리를 통해 점점 파괴되고 있었는데, 장수왕릉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 돌을 없어진 상태로 버려두면서 장수왕릉은 점점 무너져가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가 듣던 것보다 이미 많은 곳에서 행동으로 이루어졌으며, 훗날 우리의 역사를 중국에 빼앗기는 것은 먼 일이 아닌, 현재의 일임을 지각하고, 원통했습니다.
“천지의 아름다움, 청산리대첩의 위대함”<7월 11일>
탐방단은 이른 아침 백두산을 찾았다. 버스를 타고 백두산의 전경을 감상하며 한참을 올라간 후, 1441개의 계단을 올라, 드디어 천지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지! 맑은 하늘 아래, 천지를 우리 가슴 속에 담을 수 있음은 행운이었으며, 그 누구도 천지의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청산리대첩비를 방문했습니다. 청산리대첩은 1921년 10월 엿새 동안 청산리 일대를 옮겨 다니며, 일본 정규군과 독립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입니다. 4개월 전 봉오동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이를 보복하기 위해 조선인촌에서 무자비한 살육행위를 저지르며 다고오고 있었습니다. 이에 독립군 대장 김좌진과 홍범도는 각자 자기가 거느린 군대를 거느리고 청산리에 숨어들어 지세를 이용해 승리하게 된다.
대학생들은 이곳에서 선조들을 자랑스러워하며 광복청년의 노래를 합창하며 그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묵념을 했습니다.
“같은 언어, 같은 생각, 같은 생활, 다른 국가”<7월 12일>
한중대학생 토론회, 한국 학생들과 연변대학교 학생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토론시간을 가졌습니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교류할 수 있음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중국에서 크게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국가에 살면서도, 같은 뿌리로 연결된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였습니다. 토론회를 마치고, 신규식 선생의 기념비가 있는 용가미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그곳을 둘러보고, 같이 점심을 먹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원들은 연변대 학생들과 대화를 주고받고, 사진을 찍으며, 서로 이해하고, 친해지는 시간을 보낸 후 짧은 만남을 아쉬워하며,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섰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도착곳은 윤동주 시인의 모교 대성중학교. 그가 쓴 ‘서시’를 낭독함으로써, 그의 생각을 공유하고, 우리도 모를 뭉클함을 느끼며,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가 써내려간 시는 우리의 역사의 한 부분 이었으며, 지금도 우리의 가슴속에 작은 불꽃으로 살아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의 생가를 둘러보면서, 맑게 갠 하늘과 어우러지는 풍경에 감격하고, 옹기종기 모여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가깝지만 먼 그곳, 잡힐 듯 잡힐 듯 멀어지는 그곳, 분단이란 아픔을 남기고”<7월 14일>
중국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전날 저녁, 수료식을 마치고 나니, 끝을 향해 달리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단동으로 돌아가는 여정 중 만난 박작산성. 박작산성의 모습은 작은 산성이면서도, 고구려의 기세를 등에 업은 당당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박작산성을 만리장성의 시작점이라 강조하고, 관광상품화 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거짓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역사를 왜곡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중국의 만리장성을 보고, 크고 멋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중국이 만리장성을 세운 이유가 우리의 조상인 고구려인들이 두려워 세운 장벽임을 알아야 하고, 그것들이 역사적으론 멋있을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짧은 시간 박장산성에서 머문 우리는 첫날 마주하였던, 압록강 단교로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중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한 우리는 아쉬운 인사를 남기며, 인천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아쉬움을 단동 페리에 남겨둔 채”<7월 15일>
배에서의 12시간이 지났다. 처음 단동행 배에 부푼 기대를 안고 승선한 것이, 지금은 인천으로 돌아오는 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대원들의 손에 들려있는 수료증. 단순한 종이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8박 9일간의 여정에서 나눈 정과 우리가 느낀 감정들이 담긴 소중한 무엇으로 존재합니다. 돌아오는 배에서의 하룻밤은, 아쉬움을 달래는 우리에겐 너무 짧은 시간으로 다가왔다. 밤새 못 나눈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다가올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인천에 도착, 해단식이 진행되었다. 마지막임을 실감 못하며, 어디론가 다시 떠나야할 것 같은 기분으로 인사를 하고, 서울역으로 향하였습니다. 중국에서 보낸 시간들과 사람들을 기억하며, 훗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기쁨은 기쁜 그대로, 슬픔은 슬픈 그대로, 서운함은 서운한 그대로, 아쉬움은 아쉬운 그대로 남겨둔 채 중국탐방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짧지만 긴 여정을 마친 탐방. 탐방에서의 모든 것을 이 종이 위에 모두 표현할 순 없었지만, 조금이나마 다른 이들에게 우리가 느꼈던 뜨거웠던 감정과 가슴 뭉클했던 서러움, 순간순간 만날 수 있었던 기쁨을 같이 나누고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으며, 지금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8일 동안의 강행군은, 우리들을 힘들게 했지만, 그 힘듦은 그곳에서 겪었던 모든 것들로 인해 사라졌으며, 지금은 가슴 한편에 따뜻한 무엇인가로 자리 잡아, 앞으로의 우리 삶에 하나의 버팀목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 자소서 2기 멘토 김소정, 성병관 -
* 본 게시물은 자유광장 서포터즈 학생들의 제작물로 전경련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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