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반대로 '산토끼 잡으려다가 집토끼도 놓친다.' 라는 말도 있지요. 집에서 키운 집토끼와 산에서 잡는 산토끼가 있는데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탐내면 결국 제대로 잡지 못합니다. 무리하게 양립할 수 없는 것을 탐내기보다는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는 뜻이 담겨있지요.
선택을 해야할 때 우리는 가장 좋은 것만을 택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입시를 앞둔 수험생에게는 어떤 선택지가 주어질까요? 힘들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가는 길과 편하게 지내다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는 길이 있습니다. 편하게 지내면서 동시에 원하는 대학에 가는 선택지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런 길이 있기를 바라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은 비교적 많은 편입니다. 선진국인 OECD 국가 평군 수준이 1776시간인데 우리나라는 2090시간 수준입니다.
이렇게 많은 근로 시간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너무 많은 일을 하게 되면 지치게 됩니다. 여유가 없게 되면 문화생활도 힘들고 가족들을 돌볼 여유도 없어집니다. 따라서 세계적으로도 적정 근로시간을 설정하고 그 기준에 맞게 근로시간을 줄이려 합니다. 근로자의 과로는 각종 산업재해의 원인이 되고 과로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선진국의 근로시간이 작은 이유는 바로 이런 점 때문입니다.
선진국이 된 한국도 마찬가지로 과다한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10대 대선공약 중 하나로 '근로자 삶의 질 올리기'를 제시했습니다. 장시간 일하는 관행을 바꾸기 위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 시간에 포함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1월 11일 대통령직 인수위는 이를 법제화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어떨까요? 법정근로시간은 1일 8시간, 1주일에 40시간입니다. 연장근로는 1주일에 12시간이 넘어설 수 없도록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휴일에 일하는 시간은 연장근로에서 제외됩니다. 따라서 모든 휴일에 전부 일할 경우에 최대 근로시간은 1주일에 52시간(8시간*5일 + 12시간)을 넘을 수도 있습니다.
박 당선인은 오는 2020년까지 연평균 근로시간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단축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전체적으로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1. 근로시간을 줄이면 임금도 줄어듭니다.
문제는 근로시간만 줄어드는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보통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초과근로를 원하고 있습니다. 기업은 초과근로에 대해 높은 할증률을 적용합니다. 따라서 근로자들은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연장근로, 휴일 수당을 포함한 총액기준으로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이것이 비교적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시켜 줍니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휴일근로를 제한하게 되면 해당되는 근로자의 한 사람당 월평균 임금이 13퍼센트 정도 줄어듭니다. 연간급여로 따지면 466만원 정도에 해당됩니다.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일을 적게 하는 것은 좋지만 이 정도의 수입을 선뜻 포기하기는 어렵습니다.
노조에서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감소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근로시간 단축 자체는 찬성할 수도 있지만 그 결과로 임금이 줄어드는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주야 2교대제를 주간 2교대제로 바꿀 것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노조는 근로시간이 줄어들더라도 실질임금은 보장해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근로시간 단축에서도 비슷한 입장을 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노동시간만 줄이고 임금은 유지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요? 하지만 이것이 선뜻 실현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반대편인 경영계에서 선뜻 받아들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장시간 일하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추가 임금을 받는 제도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일하지 않는 상태에서 추가수당을 받겠다면 합의를 이끌어낼 명분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2. 사회적 합의가 불충분한 이유는?
이것을 위에서 말한 토끼에 비유해 보지요. 근로자에게 초과근로임금은 이미 잡아놓은 집토끼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근로시간 단축은 산토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목표입니다.
왜 아직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을까요?
1) 우리가 규정된 근로시간을 넘어 일할 경우, 높은 할증률의 임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요선진국의 초과할증률은 25퍼센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50퍼센트입니다. 즉 근로시간을 넘어서 일하면 1.5배의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장시간 근로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2) 외국에서는 탄력적 근로시간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이 그다지 없는 기간에는 하루 6시간 일하다가 일이 많아지는 기간에는 하루 10시간을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간을 1년 단위로 종합해서 전체 규정 근로시간에 맞추면 됩니다.
외국은 대부분 주 40시간제 도입과 함께 1년 단위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물론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있습니다. 하지만 최대적용가능기간이 3개월 밖에 되지 않아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근로자 입장에서 일이 별로 없는 데 회사에 남이있기 보다는 일감이 많을 때 집중적으로 일하는 것이 좋겠지요.
3) 기업 입장에서 근로자의 해고나 전환배치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시장의 수요가 크게 늘어나게 되더라도 불안정한 수요 증가라면 정규 근로자를 더 뽑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대응할 수단은 근로시간 연장 이외에는 없게 됩니다.
이렇듯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새로 근로자를 뽑는 것보다는 초과근로를 시키는 것이 나은 경영계와, 높은 할증률의 초과근로임금을 통해 소득을 더 끌어올리려는 근로자의 이해관계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근로시간이 길다는 것만을 강조하며 근로시간만을 단축하면 균형이 무너지게 됩니다.
3. 근로시간 단축, 합의가 바람직합니다.
아무래도 이 문제는 직접 일을 하는 근로자의 입장이 가장 중요합니다. 보완하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는 상태에서 바로 근로시간만 단축하게 되면 근로자들은 그에 따른 임금감소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집토끼와 산토끼를 동시에 노려서 잡을 수는 없으니까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는 매우 힘듭니다.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수준 유지는 모두 삶의 질과 바로 관련된 중요한 요소입니다. 물론 가능하다면 우리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을 것입니다. 근로시간은 단축하고 임금수준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을 테니까요.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근로시간 단축, 임금유지'를 실현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당사자인 노사간 합의가 가장 필요합니다.
현재 시스템에서 근로시간 단축을 협의 없이 실행하면 기업 경쟁력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생산성 향상, 임금 체계 개편 등을 먼저 충분히 논의하고 노사정간 심도있는 논의와 검토를 거쳐 구체적 시행방안을 마련해야만 제대로 유익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장시간 근로환경으로 인해 굳어진 기존 관행을 깨뜨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정시퇴근을 기피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또한 직장분위기나 관행등으로 인해 휴가사용을 자제하는 문화도 있지요. 우리나라 근로자의 연차휴가 사용률은 61.4퍼센트입니다. 근로시간을 규정대로 지키는 문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임금수준 유지와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두마리를 모두 잡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현명한 선택을 해야합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무리해서 양립할 수 없는 것을 탐내기보다는 하나에 집중하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집토끼부터 확실히 잡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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