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성장은 기업 혼자만의 노력 때문이 기업의 성장을 사회로 나누어야 한다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사옵니다. 기업이 만들어낸 상품을 백성들이 팔아주었고, 그러한 소비로 인하야 기업이 돈을 번 것이기에,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내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응당 맞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옵니다. 기업은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백성들에게 제공하고, 백성들은 기업이 만들어낸 생산물을 선택하고 소비하면서 기업의 흥망성쇠를 가늠해주고 있사옵니다.
백성들에게 선택을 받아 크나크게 성장을 한 기업은 백성들에게 선택을 받은 기업이요, 기업의 경쟁력을 반증하는 것이옵니다. 기업이 노동자를 착취하여 이윤을 얻는다 말하는 일부도 있사오나, 노동자를 착취하는 비효율적인 기업은 결코 성장을 이룰 수가 없는 법이옵니다.
허나 우리는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의 이름으로 그들이 남긴 이윤을 또 다시 사회로 돌려내라 하고 있사옵니다. 이는 세상에 흐르고 있는 경제의 흐름에 역행하는 관점이요, 기업의 이해가 미비한 탓이라 강하게 피력하고 싶사옵니다.
세상은 기업의 분배만을 강조할 뿐, 생산의 효율에 관하여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사옵니다. 기업은 언제나 영원하고, 어제의 이윤이 내일도 이어지리라 생각하고 있사오나, 이 또한 기업에 대한 몰이해가 낳는 편협한 생각이라 사료되옵니다.
타고난 힘과 뛰어난 체구를 바탕으로 고교시절 ‘4연타석 홈런’ 이라는 진기록을 달성하매, 프로야구 선수의 길로 들어선 박병호라는 선수가 있사옵니다. 그러나 프로의 세상에 들어와서는 그의 실력을 마음껏 뽐내지 못하였으매, 다른 팀으로 이적을 하게 되었고 연봉은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되었사옵니다.
허나, 올 한해 가공할 만한 타격을 선보이며 홈런왕이 되었고, 시즌 최고의 선수로 선정이 되었사옵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6200만 냥이었던 그의 연봉은 무려 250%가 상승한 2억 2천만 냥이 되었사옵니다.
야구 선수의 성적은 혼자만의 성과가 결코 아니옵니다. 야구는 단체 운동이기에 홀로 고군분투를 한다 하여 성적이 뛰어나게 오르지 않습니다. 팀 동료들이 함께 활약을 해주었기 때문이며, 감독과 코치,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며, 무엇 보다 비싼 표 값을 내고 야구장을 찾아 팬들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박병호 선수에게 ‘우리가 당신의 성공을 도왔으니 야구계와 팬들을 위하여 의무를 다하라’ 고 말하지 않사옵니다. 그는 묵묵히 열심히 야구를 하여 훌륭한 성적을 내고, 팬들을 즐겁게 해주면 그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옵니다.
백성들은 그가 전해주는 야구의 감동을 보기 위하여 표 값을 내고 야구장을 찾은 것이며, 팀 동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뿐, 박병호 선수를 위하야 야구를 한 것은 아니옵니다. 코치와 감독도 선수를 도와야 한다는 책무를 다한 것일 뿐 자선을 베푼 것이 아니옵니다.
개인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한 결과, 괄목한 만한 성과와 더불어 팀의 성적이 좋아졌으매, 더불어 야구팬들의 마음도 울리게 된 결과를 만들어 냈사옵니다. 오래전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기적이란 이와 같은 결과를 두고 한 말인 것이옵니다.
노력한 만큼이 더해지고, 세상의 보이지 않는 것들이 누군가의 성공을 도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자본주의 세상’의 묘미가 아닐까 생각되나이다.
오늘날, 유난히 엄격한 잣대로 기업을 재단하고 있사옵니다. 기업이 사회의 책무에 대하여 냉정하라고 촉구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서, 강요를 하고, 나아가 강제를 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을 올리고 싶사옵니다. 내가 제품을 사주었으니 사회에 베풀라는 논리로 기업의 역할을 제 조명하고,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쏟아 내는 것을 멈추어 주시옵소서.
우리는 배분적 효율에만 관심을 갖고 있사오나, 생산적 효율도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배분적 효율에만 국한되어 기업을 본다면 기업을 처벌하고 옥죄는 일만 해야 할 것입니다. 허나 배분적 효율과 더불어 생산적 효율을 고려한다면 기업의 여러 역할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옵니다.
기업은 기업 본연의 역할이 있사옵니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비자들로 하여금 냉정한 평가를 받는 것이 기업이옵니다. 기부와 책무도 서비스의 일종임은 맞사오나 그것을 강제한다는 것은 ‘경제의 영역’ 에 또 다른 규제를 가하는 결과와 다름 아닙니다.
경제의 영역에 ‘도덕’ 이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그 누구도 합의할 수 없는 다툼의 장이 되고야 맙니다. 최대의 복지는 기업의 일자리 창출이요, 소비자들에게 훌륭한 생산을 해 내는 것이옵니다.
운동선수들이 매 시즌 승승장구를 하면 좋겠으나,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다시금 연봉은 감봉이 될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게 된다 한들 누구도 연봉이 깎인 선수에게 안쓰럽다하여 돈을 쥐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기업이 망한다 한들 누구도 그 기업에 투자를 하지 않고, 주식도 사주지 않으며 자선의 돈을 쥐어주지도 않습니다.
실패 앞에는 그렇게도 냉정하면서, 성공 앞에서는 왜 이렇게 강한 잣대를 들이 대는 것이옵니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이치이옵니까? 감정이 움직여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감정과 이성을 적절히 종합하여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요, 마음대로 된다 한들 그것이 최선의 결과를 보장해 주지도 않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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